오래 살았던 곳으로 돌아온
밤을 보내고 맞이한 아침
온 하늘이 무너져 있는 듯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먼 산을 만나고 있다
거기에 분명히 그것이 있었는데
거기에 분명 그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침의 내 눈에 낀 자욱한 안개
그들을 마음으로밖에 만날 수가 없다
때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 선명한 듯
내 마음의 언저리에는
그리운 얼굴과 아늑한 공간이
계곡물처럼 다가와 앉는다
20년 가까이 살았던 공간
아이들이 심신을 키우며 머물렀던 곳
삶의 의미가 가장 뜨거운 시간으로 남았던 자리
다시 돌아보는 마음에 안개가 끼어든다
인생의 한때를 놓아둔
숱한 그림으로 채색해 놓은
아늑한 공간에 다시 찾아와 머물고 있는 마침
그래 그러면 되리라 새김질한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더욱
삶과 세상을 잘 조명하는 듯해
비우고자 애를 쓰지 않아도
시간이 주는 뜻이 기쁨으로 다가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