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씩 다시 걷자

by 이성진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 아득한 시간들이다. 바이러스로 모든 생활이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집안에 큰 일로 있었지만 일반적인 모습으로 보내지 못했다. 재능기부를 원하는 요구도 더러 있었는데, 모두 시간을 미루었다. 어떻게 시간을 잡을 수 없는 시간들이 흘러갔다. 호흡기가 어릴 적부터 그리 좋지 않았기에, 2020년 한 해는 그야말로 숨죽이고 살았던 해다. 가능하면 움직이지 않았다. 스스로 움직임을 만들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환경이 되면 움직이고, 그렇지 않으면 집에 있었다.

가끔씩 시골에 들렀다. 시골에 작은 밭이 있기에 채소들과 고구마 등을 재배했고, 그것을 손 보는 시간들이 있었다. 식물들은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던데, 우리는 발소리를 그렇게 들려줄 입장은 되지 못했다. 자차로 집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쉽게 가지지 않았다. 쉽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러기에 채소를 심어 놓고 잘 돌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가끔씩 들러 고추, 가지, 오이, 파 등을 심고, 자잘하게 자란 것을 무공해 식품이라고 수확하여 먹는 호사를 누렸다. 고구마도 심어 캐서 먹기도 하고, 다른 과일들도 한두 그루씩 심어 맛보는 정도로 함께했다. 시골에 가면 주로 아내와 둘이 간다. 본가가 아니고 처가 쪽이기 때문에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친가를 멀어서 갈 수가 없고, 아이들 외가에 그렇게 시간을 내는 일이 가끔씩 있게 되었다.

시골 농장에 들리면 점심은 가까운 읍에 나가 중국 음식을 먹는다. 맛이 좋고 싱싱해 꼭 그곳에 가서 먹는다. 한 달에 한 번 꼴은 들리기에 음식점 주인도 우리를 알 만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눔을 가지는 것도 복된 일이다. 코로나 19 시기에 쉽게 갈 수 있는 음식점도 아닌데, 그렇게 우리는 함께 산다는 마음에 시간을 내었다. 그런데 하루는 일이 조금 늦게 끝이 나서 때를 놓치고 그 음식점에 들렀다. 평소와 같은 음식을 시켰고 비교적 빨리 나왔다. 그런데 면이 쫄깃함이 없었다. 아마 이미 삶아 놓았던 것을 버리지는 못하고 재가공한 것이라 여겨졌다. 먹기가 상당히 힘이 들었다. 조그만 음식점이고 면이 있는 상황에서 뭐라고 말하기도 그래서 꾸역꾸역 먹었다. 그러면서 아내와 맛에 대해 얘기를 했다. 다 먹고 난 후, 주인과 약간의 말을 섞었다. 이렇게 신의를 저버리면 장사를 할 수가 없을 듯하단 생각을 했기에 말이다. 주인은 변명을 한다. 아!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 나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물렀다. 그 뒤는 그 집에 가기가 쉽지 않았다. 단골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신의와 배려를 마음에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퇴직을 하고 집에서 이렇게 시간을 꾸리고 있다. 가볍게 운동을 하고, 시골에 가서 일손도 거들고,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하지 않아도 그만인 일들이다. 신년이 되면 무엇인가 손에 잡히는 일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진 능력을 가지고 재능기부라도 하는 시간을 가꾸어봐야 하겠다. 주어지는 기회가 있으면 무조건 잡고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경제적인 활동은 하지 않더라도 내가 사회에서 받은 사랑을 되돌려 주는 일은 찾아봐야 하겠다. 그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 되리라.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자의 마음이 되리라.


만남


타인에게 손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은

미로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다


타인에게 마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은

밭에서 과일을 따는 것과 같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도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게다


타인과 손을 맞잡을 수 있다는 것은

눈이 내려 발걸음을 지우는 것과 같다


올해는 움직이는 일을 좀 해야 하겠다. 코로나 19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타인들과 만남을 이루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좀 해야 하겠다. 그것이 글을 쓰는 일이 되어도 좋고, 일손을 도우는 일이 되어도 좋다.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두루두루 찾아도 봐야겠다. 퇴직한 곳에서 재능기부 부탁이 오면, 평생 한 일이기에 마음이 내키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은 가져봐야 하겠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손을 펼쳐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손을 건넬 수 있다는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그동안 무척 많은 시간 휴식을 가졌다.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봐야 하겠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기에. 타인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자체가 평안이요 화평이며, 생활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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