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몰랐는데, 봄은 이미 와 있었다 (130)

by Jace

어제 퇴근길이었다.

늦은 시간, 아직 겨울의 기운이 남아 있는 거리였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사이로 가느다란 초승달이 걸려 있었다.

차갑고, 고요했다.



그 장면을 몇 초쯤 바라봤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같은 길을 다시 걸었다.


어제와 똑같은 자리였는데,

풍경은 전혀 달라져 있었다.


하얀 목련이 가지마다 환하게 피어 있었고,

그 옆으로 노란 개나리가 봄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하루 사이에 계절이 바뀐 것은 아닐 텐데,

그제야 알았다.


봄은 이미 와 있었고,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계절은 늘 그렇게 온다.

요란하게 도착을 알리지 않는다.


어느 날 공기가 조금 달라지고,

길가의 나무가 슬며시 색을 바꾸고,

우리는 한참 뒤에야 알아챈다.


아, 봄이 왔구나.


시간도 비슷하다.

바쁘게 살다 보면 하루하루는 비슷하게 흘러간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잠깐 멈춰 서게 되는 날이 있다.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길가의 꽃을 한참 바라보게 되는 그런 순간.


그때서야 깨닫는다.

시간이 얼마나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흘러왔는지를.


오늘은 조금 천천히 걷기로 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많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봄이 왔다는 것,

목련이 피고 개나리가 피었다는 것,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끼며 걷고 싶었다.


초승달이 지고, 목련과 개나리가 피는 사이.
우리의 봄도 그렇게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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