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차이 — 운전 스타일과 개인적 거리 (35)

by Jace

어제 저녁,

오랜만에 대학 동기 친구들과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도로 위와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차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운전 습관에 담긴 도시의 얼굴


대화의 시작은 자연스럽게 운전 습관이었다.

계획적으로 도로가 설계된 서울에 비해,

지방 도시—특히 부산—에서 운전이 더 난폭하게 느껴진다는이야기였다.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인 부산의 한 대학교에

서울 태생의 마케팅 교수인 대학 동기가 처음 부임했을 때의 경험담이 인상적이었다.

부산에서 직접 운전을 하거나 택시를 탔을 때,

깜빡이 없이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들 때문에 연신 놀랐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놀라웠던 건,

그런 상황에서도 부산 사람들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운전을 이어간다는 점이었다고 했다.


부산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낸 입장에서

굳이 이유를 붙여 보자면 이런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


6·25 전쟁 당시 피난민이 대거 몰리며

부산은 급격히 제2의 대도시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도로망이 충분히 계획적으로 확충되지 못했다.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길게 이어진 메인 도로에

수많은 간선도로가 연결되다 보니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오거리가 많아졌고

간선도로에서 메인 도로로 진입할 때

차량 흐름이 쉽게 꼬이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성질 급한 부산 사람들의 운전 습관이 굳어졌다고 본다면,

완전히 틀린 해석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터널과 고가도로가 많이 생겨

교통 여건이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지만,

가끔 부산을 찾는 타지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사실 나 역시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접 운전해 내려가다 보면

갑자기 훅 끼어드는 차량에

순간적으로 움찔할 때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부산은 여전히 푸근한 고향이다.

투박한 말투 속에 숨어 있는 따뜻한 정(情),

싱싱한 해산물, 바다를 품은 항구 도시의 풍경.

이런 것들이 여전히 부산의 매력이라고 느낀다.


나라별로 다른 ‘정상’의 기준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해외 경험담으로 이어졌다.


2008년 중국 톈진에서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중앙선을 넘어

아무렇지도 않게 유턴하던 버스 이야기,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가 베트남에서 겪었다는

중앙선을 넘나드는 곡예 운전,


인천 남동공단의 중견기업 임원인 친구가

라오스에서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경적을 울리지 않는 현지 분위기 때문에

답답함을 느꼈다는 이야기까지.


나라마다, 도시마다

‘정상’으로 여겨지는 운전의 기준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개인적 거리(Personal Space)라는 문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주제는

서양 문화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Personal Space,

즉 개인적 거리였다.


미국 유학을 다녀온 친구 둘과

캐나다로 이민 간 친구는

영화나 드라마로 접하던 이미지와

실제 현지 생활에서 체감하는 개인적 거리의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고 입을 모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주한미군 복무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미국 육사(West Point)를 졸업한

전형적인 WASP 출신의 미군 중대장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며 들려준

‘한국 사람들의 특징 세 가지’였다.


첫째,

정 많고 친절한 한국 사람들이

운전대만 잡으면 왜 그렇게 난폭해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둘째,

제3자의 잘못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비판하다가도

자기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잘못하면

왜 그렇게 맹목적으로 옹호하는지 모르겠다는 점.


셋째는 이랬다.

서울의 명동이나 부산의 남포동처럼

늘 붐비는 거리에서 사람들이 자주 부딪히는데,

미국에서는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웬만하면 서로 부딪히지 않으며

혹시라도 부딪히면 반드시

“Excuse me”라고 양해를 구한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부딪히고도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쳐 버리는 장면이 너무 흔한데,

그 점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마무리하며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런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각자의 경험을 통해 느끼는 차이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만,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과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흐리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다.


운전 문화가 어떻든

교통법규는 모두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고,

누군가의 잘못을 판단할 때는

친소 관계와 무관하게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


개인적 거리 역시 마찬가지다.

공중질서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며,

사소한 행동이라도 타인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면

한 번 더 조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불가피하게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면

짧은 양해나 사과 한마디가

관계를 훨씬 부드럽게 만든다.


결국 문화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와 맥락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 Personal Space: 타인이 쉽게 침범하면 불편함이나

위협을 느끼는 개인적 거리

**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미국의 전통적 주류 엘리트 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