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권이 없을 때도, 책임에서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

(40번째 글)

by Jace

의사결정의 방식은

내가 최종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그 권한이 오너에게 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내가 최종 결정권자일 경우,

나는 결정을 급하게 서두르지 않는다.

가능한 모든 고려 요소를 검토하고,

관련자들과 충분히 논의하며,

내 판단에 오류나 공백은 없는지 반복해서 점검한다.

그렇게 해서 더 이상 치명적인 리스크가 보이지 않을 때

비로소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진다.


반면, 최종 결정권이 오너에게 있는 경우

나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결정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결정의 질을 높이기 위한 조력자가 되는 것이다.


오너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다.

모든 사안에서 항상 옳은 판단을 내릴 수는 없다.

가능하다면 시행착오를 피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들도 현실적으로는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각 대안의 장단점,

놓치기 쉬운 제약조건,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의 파급 효과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의견이 아니라,

판단에 필요한 정보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우려하는 선택이 내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창업주가 아닌 2·3세 오너의 경우,

실무 디테일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인해

일을 쉽게 보고 서두르는 경향이 나타나기 쉽다.

그 결과 실수와 실패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현실이다.

물론 아주 가끔은 천운이 따라

의외로 좋은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재현 가능한 성공이라기보다

운에 가까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결정을 존중한다.

조직은 최종 결정권자의 판단 아래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실행 과정에서

회사에 치명적인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너무 명확해지는 순간이 오면,

이를 개인적 견해가 아닌

조직 차원의 리스크로 인식하고 즉시 다시 보고한다.


보고했음에도 조치가 없을 때는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분위기와 타이밍을 살핀 뒤 다시 한번 보고한다.

그때는 우려가 아니라

이미 현실화되고 있는 문제를

사실과 데이터로 정리해 전달한다.


그래도 반영되지 않으면

그 시점의 상황과 판단 근거를

객관적으로 기록으로 남긴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상황을 모니터링하다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직전에

세 번째 보고를 한다.


경험적으로 보면

이 단계에서는 이미

바로잡을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을 놓친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라도

시정 조치가 내려지면

최악만큼은 피할 수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왜 그때 제대로 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나는 감정 없이

당시 남겨둔 기록을 근거로

그 시점의 상황과 판단 과정을 설명한다.

중요한 것은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오너를 탓하는 뉘앙스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32년간의 시행착오를 돌아보며

나는 한 가지를 확신하게 되었다.


정확성을 충족하는 신속성은 가치가 있지만,

부정확한 신속성은 조직을 가장 빠르게 망가뜨린다.


오너 조직에서

권한의 경계를 지키면서도

책임을 끝까지 다하는 일.

답답하고 고단하지만,

그것이 내가 선택한 방식이고

현실적인 최선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