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견기업에서 실행이 어려운 진짜 이유
전략은 늘 그럴듯하다.
슬라이드는 정교하고, 숫자는 논리적이다.
그런데 왜 성과는 늘 현장에서 무너질까.
회의실에서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는데,
막상 한 달이 지나면 조직은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 있다.
문제가 전략일까.
아니면 실행일까.
얼마 전 방향·목표·실행에 대한 글을 올린 뒤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30년 넘게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을 하신 뒤, 지금은 ESG 분야에서 정책 자문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학문과 현장을 모두 경험한 분이다.
그분이 유학 시절 품었던 꿈은 뜻밖이었다.
“아시아인 최초의 프로미식축구 명장이 되는 것.”
아메리칸 풋볼은 작전의 스포츠다.
공격, 수비, 스페셜팀까지 수천 개의 플레이가 존재한다.
전략의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그런데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감독이 아무리 훌륭한 작전을 짜도,
선수들이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나는 그 문장에서 경영의 본질을 보았다.
명장은 가장 복잡한 전술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 선수의 기량
• 조직의 자원
• 구단주의 성향
• 상대 전력
• 리그 환경
이 모든 조건을 고려해 ‘실행 가능한 최적안’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방향을 정한 뒤 조직의 모든 자원을 한 지점에
정렬시키고, 끝까지 밀어붙인다.
기업도 다르지 않다.
전략 발표 날에는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한 달 뒤 회의실에는 전혀 다른 안건이 올라와 있다.
급한 매출, 예상치 못한 변수, 단기 실적 압박.
방향은 정해졌지만
조직은 여전히 작년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전략이 틀린 것이 아니라
실행이 분산된 것이다.
나는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을 거쳐 지금은 중견기업에 있다.
대기업은 시스템이 움직인다.
여러 단계를 설득해야 하지만, 합의가 되면
조직은 일관되게 간다.
중견기업은 다르다.
오너 한 사람을 설득하면 방향은 빠르게 바뀐다.
하지만 그 방향이 얼마나 유지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어제는 “밀어붙이자”던 사안이
오늘은 “리스크가 크다, 보류하자”로 바뀐다.
속도는 빠르지만 안정성은 낮다.
여기에 현실적 제약이 더해진다.
• 대기업 대비 낮은 보상 수준
• 우수 인재 확보의 어려움
• 키워 놓으면 이탈하는 인력
• 반복되는 역량 공백
전략은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일 조직적 체력은
늘 충분하지 않다.
성과가 흔들리면 우리는 전략부터 다시 짠다.
하지만 많은 경우 전략이 틀린 게 아니다.
조직이 그 전략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다.
실행이 무너지는 순간은 대개 이렇다.
• 방향은 합리적인데 자원이 흩어진다.
• 목표는 공격적인데 역량이 따라오지 못한다.
• 결단은 내려졌지만 끝까지 밀지 못한다.
중견기업에서 실행은 단순한 운영 문제가 아니다.
오너를 설득하고,
조직을 설득하고,
현장을 설득해야 한다.
때로는 정면 돌파보다
조직 안으로 스며들어 신뢰를 쌓고,
Right Timing을 기다리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실행은 숫자 이전에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다.
전략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의지가 약해서도 아니다.
구조가 다르고,
의사결정 방식이 다르고,
조직의 체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행은 단순한 오퍼레이션이 아니다.
• 조직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
• 자원을 한 방향으로 정렬하는 것
• 사람을 설득하는 것
• 그리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것
화려한 전략보다
집요한 설득이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어쩌면 이것이
중견기업에서 실행이 어려운 진짜 이유다.
그리고 동시에,
그 조직에서 성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의 진짜 역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전략을 다시 쓰고 있는가,
아니면 실행을 가로막는 구조와 사람을 설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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