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한 그릇에 담긴 시간 (80)

— 설날 아침, 우리가 먹는 것은 음식일까 시간일까

by Jace

설날 아침이면 집 안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뿌연 국물 위로 둥글게 썬 떡이 떠 있고,

부엌에서는 기름이 잔잔하게 소리를 낸다.

노릇해지는 전의 냄새가 집 안을 천천히 채운다.


어릴 적에는 그저 기다렸다.

“떡국 몇 그릇 먹을 거야?” 하고 묻던 어른들,

괜히 더 먹어야 빨리 어른이 될 것 같았던 마음.


그땐 몰랐다.

우리가 먹고 있던 것이 단순한 국이 아니었다는 것을.




조선 시대에는 떡국을 ‘첨세병(添歲餠)’이라 불렀다고 한다.

나이를 더하는 떡.


지금처럼 생일마다 나이를 쇠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설날에 함께 한 살을 먹었다.

나이를 먹는 일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건너는 시간의 의식이었다.


길게 뽑은 가래떡은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동전처럼 둥글게 썬 모양에는 풍요의 바람이 담겼다.

맑고 흰 국물에는

지난 시간을 씻고

새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담겼다.


그래서 떡국 한 그릇은

한 해를 ‘몸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전은 또 어떤가.


기름이 귀하던 시절,

고기를 얇게 부쳐 상에 올린다는 것은

집안의 정성과 형편을 모두 담는 일이었다.


설날 차례상 위의 전은

조상에게 드리는 공경이자

“올해도 잘 살아보겠습니다”라는 조용한 기도였다.


하지만 요즘의 설날은 조금 다르다.


여전히 직접 전을 부치는 집도 있지만,

하루 종일 허리 숙여 전을 부치지 않아도 된다.

전통시장이나 백화점에서 정갈하게 준비된 전을 사 와

살짝 데우기만 해도 충분하다.


대신 우리는

조금 더 느긋하게 앉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올해 설날 아침,

아내가 끓여 준 떡국은 유난히 담백해서 좋았다.

과하지 않은 국물,

속을 편안하게 감싸는 맛.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아, 새해가 왔구나 하고 몸이 먼저 알아챈다.


옆에는 따뜻하게 데운 전 몇 점.

직접 부친 것은 아니어도

노릇한 표면에서 올라오는 고소한 향은

충분히 설날이다.


화려하지 않은 한 상.

하지만 마주 앉아 “새해 복 많이 받아”,

“올해도 건강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여전히 시간을 함께 건너고 있다.




설날 음식은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받아들이는 의식에 가깝다.


떡국을 먹는 것은

한 살의 무게를 조용히 인정하는 일이고,

전을 나누는 것은

관계를 다시 확인하는 일이다.


새해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통해

우리 몸을 지나온다.


떡국 한 그릇 속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담겨 있고,


그 시간을 오늘 아침

우리는 조용히 떠먹고 있다.


그리고 문득,

크지 않은 식탁 위에서

아주 작지만 분명한 행복을 느낀다.


올해도,

이렇게 함께라면 괜찮겠다는 생각.


아마 설날이 우리에게 남겨주는 것은

거창한 다짐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히 곁에 앉아

떡국 한 그릇과 전 몇 점을 나누는 마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