줍는 순간​

by 은제

여행은 일상에서 한 발 멀어지는 것부터 시작된다. 낯설고 새로워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 때로는 나에게 작은 숲이 된다. 내가 밟아보지 않은 땅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눌러 걷는 동안 새로운 내가 되기도 하고 잃어버린 나를 찾기도 한다. 이번 여행 시작 전에 안희연 작가님의 신간 ‘줍는 순간’을 읽었다. 작가님이 여행을 통해 줍고, 풀어놓은 것들이 마음이 콕콕 박혔다. 그래서 나도 이번 여행에서 뭐든 주워오자고 생각했다. 가능한 시를 주워오고 싶었다.


일상을 벗어나긴 했어도 뭔가를 줍자고 결심하니 막상 특별한 것 없이 느껴졌다. 이곳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라서 그런 걸까. 눈은 세상을 빠르게 쫓으면서도 머릿속에는 단순하고 억지스러운 생각만 맴돌았다. ‘비가 온다더니 안와서 다행이다, 날씨….날씨….’ 이런 식으로는 오히려 여행을 망칠 것 같았다. 뭐라도 주워오려다 구멍만 만들 순 없었다. 그래, 뭐든 작정하면 오히려 손아귀를 벗어나기 마련이지. 나는 내 방식대로 내가 필요한 숲을 찾기로 했다.


버스를 탔다. 목적지에 잘 도착하려면 긴장감을 잃지 않아야 한다. 목적지까지 정거장의 수를 잘 계산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그제야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낯선 정거장들이 휘리릭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도시의 소음을 음미했다.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 그 사이에서 ‘나는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까’ 생각했다. 몇 번이고 치유의 숲을 찾아 허덕였으면서 뭐 하나 달라진 것 없이 도피만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버리지 못하는 것 들이 많아서 주워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비워내야 채워 넣을 수 있는데 마음에 쓰레기가 가득했다. 그 과정에서 겨우 한 문장, 노트에 적을 수 있었다. ‘몇 번이고 손에 쥐었던 것을 내려놓았다. 쉽게 가질 수 있지만 돌아서면 무용해질 것들을 포기해 보았다.’ 조금씩 마음이 쥐고 있는 것들을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불쑥 주워 담았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하나의 울타리를 넘었다. 그리고 하나의 마음을 버렸다. 뭔가 제대로 된 것들을 주워 담지는 못했어도 비워냈다는 것만으로 조금은 후련하다. 그렇지만 다음 여행길에 오르는 내 모습이 오늘과는 다르길 바란다. 여행은 어쩌면, 나를 줍는 순간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나로 채워지는 숲이 점점 푸르고 울창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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