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는 늘 사람이 있다. 어떤 날에는 함께 간 사람이, 또 혼자인 날에는 나를 스쳐 가는 수많은 타인이, 그리고 어떤 날에는 우연한 만남으로 짧은 동행을 하게 되는 사람이 있다. 여행은 그 자체로 설레지만 예상치 못한 만남이 낭만을 더해준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완벽한 타인이라는 매력. 나에게도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근거 없는 예감.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향기. 이 모든 것이 더해지면 이미 마음의 반은 흐물흐물해진다. 거기에 술이 살짝 곁들여진다면? 더 할 것 없이 아름다운 세상이 된다. 한 번도 상처받은 적이 없는, 깨끗한 심장을 가진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임을 까맣게 잊는다.
낭만은 그자리 그대로 두고 오는 게 좋았다. 함께 탄 기차에, 한인 술집에, 오페라 하우스가 반짝이던 그 밤에, 맥주와 별을 마시며 밤새 이야기를 하던 놀이터에, 함께 수영하던 파란 바다에. 그때 만난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있는 것이 맞았다. 지독한 현실로 함께 오면 안 되는 것이었다. 경계를 넘어서니 낭만이 힘을 잃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다 터놓았을 때는 그 여행지에 나와 그들을 모두 버리고 돌아오는 게 맞았다.
나는 그 때 만나는 사람들이 다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기억에서 흩어지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길게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때로는 인연이 되지 않아야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을 잊어가며 배웠다. 돌아볼 자리를 반짝거리게 닦아놓는 건 지금의 내 몫이다. 그러니 아쉽지만, 앞으로 여행지에서의 낭만은 그자리 그대로 두고 올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