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사람이 있어요

by 은제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나는 길을 걷다 남의 집 담장을 넘어다 보는 일, 아파트의 베란다를 빼꼼 보는 일을 좋아한다. 어떤 집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어떤 집에서는 러닝셔츠 차림으로 티비를 보는 사람이 보이고, 어떤 집에서는 아이들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세월은 변하고, 나는 자랐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람 사는 세상. 어릴 때 듣고 보고 자란 익숙한 풍경을 보고, 소리를 들으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여기서 아이러니는, 그 소리가 점점 괴로워지고 있다는 것. 혼자 살다 보면 방안에는 내가 내는 소리나, 혼잣말, 텔레비전 소리가 주로 방 안을 채운다. 하지만 자려고 누웠을 때, 적막을 뚫고 침범하는 소리들이 나의 신경을 건드린다. 우리 집 침대는 벽에 밀착되어 있다. 그래서 밤이 되면 벽을 타고 옆집에서 이야기하는 소리, 웃는 소리, 씻는 소리 같은 것들이 넘어온다. 이놈의 원룸 벽은 해가 지날수록 얇아지는 게 분명하다.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생생할 수가 없다.


벽을 타고 오는 소리가 단순히 잠만 방해하는 게 아니다. 감성을 툭툭 자극해서 문제다. 나는 혼잔데, 옆집은 누군가와 함께니까 외로움이 극대화된다고나 할까. 그래서 심술이 나서 그 소리가 예민하게도 크게 들리는 것 같다. 그들은 추우면 이불을 덮어줄 사람이 있고, 무서운 꿈을 꿨을 때 안아줄 사람이 있고, 같이 밥을 먹으며 웃을 사람이 있고, 밤을 건너 함께 아침을 맞이할 사람이 있으니까. 반면에 나는 온전히 혼자서 견디고, 해내야 하는데 어떤 밤은 그게 견딜 수 없이 힘들 때가 있으니까. 곁이 필요할 때는 사람 사는 소리가 괴로워지고 그럴수록 예전 생각이 난다. 다섯 식구가 지지고 볶으며 살던, 따뜻했던 내 세상. '여기도 사람이 있어요.' 발버둥 치지 않아도 채워지던 소리들이, 알람 소리 대신에 사람 소리로 잠에서 깨는 아침이 그리워진다.


비록 창문을 꽁꽁 닫고 커튼을 치고 살지만 마음만은 헐렁하게 풀어놓는다. 빈틈없이 꽉 닫힌 마음으로는 나를 볼 수 없을 테니. 얼기설기 엮인 틈을 통해서 나 좀 들여다봐달라고, 여기도 사람이 있다고.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고. 내 세상의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 수 있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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