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극복한 뒤 얻을 수 있는 선물
뜨거웠던 그 여름이 생각난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사이판으로 여행을 갔다. 그때가 11월이었는데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느라 온 상점이 분주했다. 그 분위기는 여름 나라에서 크리스마스를 남들보다 먼저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을 선물해 주었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차원이 다른 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기 시작했다. 한국의 더위와 다른 점은 우선 햇볕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가만히 서 있어도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는 했다. 그래서 차라리 물에 있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에 있는 수영장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나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있는 마나가하섬으로 향했다.
마나가하섬은 사이판에 있는 작은 섬인데 사이판에 있는 어느 곳보다 훨씬 투명한 바다였다. 그 바닷속에 발을 담그면 발이 그 자리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투명한 바다에 천천히 몸을 맡겼다. 물속에는 신기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유영하고, 나도 따라 흘렀다. 저 멀리까지 밀려가도 두렵지는 않았다. 그 바다에 반해 즉흥적으로 더 넓은 태평양 바다를 경험할 수 있는 이스트 베이 절벽 투어를 예약했다.
구불구불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에는 한눈에 담기지도 않는 넓은 태평양이 있었다. 너무 깊어서 마나가하에서 보았던 에메랄드빛과는 달리 짙은 남색의 바다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 경이한 기분이 들었다. 곧이어 절벽에서 태평양 바다로 다이빙할 시간이 왔다. 평소였다면 두려움에 휩싸여 쉽게 도전하지 못했을 텐데 그곳에서는 이상하게 바다로 몸이 이끌렸다. ‘풍덩’ 태평양 바다로 뛰어들었다. 바다 깊숙이 가라앉았다가 구명조끼 덕분에 이내 몸이 둥실 떠올랐다. 사실 그때는 수영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어릴 때 물에 빠질뻔한 적이 있어서 완전히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구명조끼를 믿고 물에 둥실 떠서 물 아래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산호들, 영화에서만 보았던 노란색 줄무늬 물고기 등을 보면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헤엄치니 신비로움이 온몸을 감쌌다.
한참 물속 구경에 빠져있던 도중에 현지 가이드가 “구명조끼를 벗고 물 깊숙이 들어 가보지 않을래?”라고 제안하는 것이 아닌가! 깊은 물 속이 두렵지만, 해보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덥석 “YES!”를 외쳤다.
현지 가이드는 구명조끼를 벗고도 뜨려면 발을 계속 굴려야 한다고 했다. 공중에서 러닝머신을 타는 것처럼 말이다.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발을 구르면서 구명조끼를 벗었다. 거짓말처럼 몸이 떴다. 태평양 바다에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떠 있었다. 그때의 기분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아주 잠시 조용한 감격을 속으로 삼키고 이제는 물속 깊숙이 들어갈 준비를 했다. 가이드가 ‘몸을 물 밑으로 깊숙이 밀어 넣을 건데, 귀가 아플 수 있으니, 코를 잡고 힘껏 숨을 밀어내라’고 말했다.
자 이제 숨을 깊게 들이쉬고 “원, 투, 쓰리” 순식간에 바닷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신기하면서도 어리둥절한 기분은 잠시. 귀가 아프기 시작해서 재빨리 이퀄라이징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숨이 차기 시작해서 서둘러 물 밖으로 올라와야 했다. 참으로 신기하고도 혼란스럽고 짧았던 나의 첫 프리다이빙 체험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태평양 한가운데서 수영도 하고, 구명조끼 없이 깊은 바다도 들어갔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두려움을 극복한 자신감이 내 안에 심어졌다.
4년이 지난 2023년 여름, 나는 여전히 헤엄치고 있다.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기도 하고, 바다든, 계곡이든 물이 있는 곳에서 즐기고 있다. 물 앞에서 주저하지 않고 뛰어든다는 것이 꽤 낭만적인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장면은 나의 깊은 바다에서 행복하게 넘실대고 있다. 사이판에서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나는 더 넓은 곳으로, 깊은 곳으로 헤엄칠 수 있는 인생의 큰 선물을 받은 게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