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한 발짝 물러나보면 보이는 것들
삶에 치여 현실 도피가 필요할 때는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간다. 말은 거창하지만, 사실 머무는 지역에서 한 발짝 떨어진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무것도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다시 나를 채워 돌아온다.
여행 방식은 이렇다. 큼지막한 목표와 숙소, 동선만 정하고 낯선 땅으로 간다. 두렵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자유가 있으니까. 숙소에 짐을 두고 필요한 것만 챙겨 나선다. 가보고 싶었던 전시회나 카페가 있는 동네로 간다. 처음 듣는 동네 이름도 보이고 예쁘게 생긴 간판들도 보인다. 이런 경우에는 꼭 목적지를 이탈하게 된다. 그래도 괜찮다. 아쉬움이 남지 않게 지금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나를 설레게 한다. 원래 목적지에 늦게 도착하더라도 반짝이는 호기심 앞에서는 아무 문제 될 거리가 없다.
온전히 내 속도로 걷는 여행을 하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들을 많이 발견한다. 마치 유럽에 있을 것 같은 테라스가 있는 흰색 카페부터 아기자기한 소품을 파는 가게, 아주 오래되어 정겨운 느낌의 가게, 담벼락에 늘어져 있는 꽃과 나무줄기, 작은 책방까지. 마치 방앗간이 즐비한 골목을 참새의 기분으로 여행한다. 작은 행복이 차곡차곡 쌓인다.
이런 스타일의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길을 잃게 된다. 그럼 다시 지도 앱을 열고 목적지를 검색해 찾아간다. 너무 많은 실수에 자책하고 주눅 들던 순간들과는 달리 멋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그리고 가끔은 길을 잃은 곳에서 또 다른 나만의 방앗간을 발견한다. 그런 뜻밖의 행운은 길을 잃어야 발견할 수 있다.
나와 가장 잘 맞는 여행 메이트는 여동생이다. 식습관도 비슷하고 체력도 비슷하고 서로의 성격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취향이 비슷하기 때문에 여동생과 함께 여행하면 유난히 즐겁다. 우리는 ‘영혼이 차오르는 기분이야.’ ‘이제야 살 것 같다.’ ‘진짜 행복하다.’라는 말을 여행 내내 남발하게 된다. 함부로, 마음 내키는 대로 마구 내뱉을수록 행복할 뿐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가만히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행복했으면서 짐을 풀고 침대에 누우니 다른 의미로 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낯선 곳에서 느낀 행복과 익숙한 나의 공간에서 느끼는 행복이라니.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라는 말을 몸소 느끼며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