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신시대의 고백

by 날갯짓


게임 안 했어요.
에이, 거짓말. 핸드폰이 뜨거운데?

양치했어요.
이 해봐! 누런 것 봐. 닦은 게 맞아?


몇 년째 참담한 불신시대를 지나고 있다. 사소한 거짓말이 헤엄치는 곳에서 살고 있는 나는 자연스레 의심병이 도졌다. 가족끼리 이러면 더 서운해! 라고 외쳐도 소용없다. 이렇게 못 미더워서 어쩌나.


나의 불신시대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내가 믿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말일까? 사람의 마음일까? 사람일까? 철학은 관심 없으니 내 방식으로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뭉뚱그려서 '사람 그 자체'로 해두자.


불신의 역사는 수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내 인생 첫 번째 불신의 기억은 엄마였다. 깊은 시골에서 아이 셋과 시부모와 함께 사는 엄마에게 시내로의 외출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서울아씨였던 엄마에게 시골 고릿적 동네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한번 나갈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나마 할머니 심부름이거나, 김씨 집안 딸내미인 고모들에게 김치, 찬거리, 푸성귀를 가져다주는 심부름이 아니면 좀처럼 나가기란 쉽지 않았다. 엄마는 어쩌다 기회가 오면 그 외출에 가장 큰 아이, 손이 덜 가는 오빠만 데려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도 데려가라고 악다구니를 쓰며 달라붙었는데 엄마에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날도 엄마는 나를 떼어놓느라 진이 빠지셨나 보다. 데려가겠노라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고집도 어지간히 세다며 포기한 듯 한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꼬질꼬질 눈물 훔치며 셋이 버스정거장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마을 골목길에서


사랑방 연탄불을 안 갈았네. 깜빡했다. 연탄불 좀 갈고 와.
오빠랑 둘이서 기다릴게.
절대 안 갈 테니 어서 갈고 와.


지금 생각하니 찔려서 절대를 강조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엄마의 눈빛을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연탄불이 꺼지면 어쩌지? 설마 엄마가 가버리면 어쩌지?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연탄을 꺼내고 나란히 붙어있는 연탄 두 개를 연탄집게로 조심스레 떼어냈다. 아래 칸에 위치한 다 타버린 연탄은 구석에 빼놓고, 위에 있던 덜 탄 연탄을 다시 구멍에 넣어 밑불로 자리를 잡아줬다. 그러고 나서 까만 새 연탄을 그 위에 포개 넣으면 끝. 다 했다. 바람구멍도 조금 열어놓고 부리나케 뛰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헤어졌던 곳을 넘어서 정류장까지 뛰어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있을 리가 없었다. 버스를 타지 않았더라도 목숨 걸고 꽁꽁 숨어버린 그들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겠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그들은 모의를 하고는 내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때 목놓아 우는 게 어떤 건지 처음 깨달았다. 생각해 보면 불가피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셋 중 제일 어렸던 나에게 연탄심부름을 시킨다는 게 말이 되나? 순진하게 속았다.


그날 마음에 그어진 금은 오래도록 남아, 한동안 마음 한구석에 상실과 배신으로 남아있었다. 지금은 그때의 엄마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말이다. 나에게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관계의 연속성과 연결되는 것인데 내 기억의 첫 번째 배신은 가족, 그중에서도 제일 사랑하는 엄마라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손절이 분명했다.


그 뒤로도 여러 번, 믿음이 깨어지는 일이 몇 번 있었다.


몇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생각하고 좋아했던, 매일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내게서 돌아섰을 때, 이별을 차곡차곡 벽돌 쌓듯 준비하다가 어느 순간 그와 나 사이의 높고 커다란 담벼락을 보여주었을 때. 그 과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내가 싫어지던 시절이 있었다. 심지어 그날은 함께 팥빙수도 먹었는데 말이다. 너를 못참게 만든 것은 나의 어떤 모습이었을까?


또, 옷을 바꿔 입기도 하고 서로의 집에서 몇 날 몇 밤을 지내기도 했던, 여행도 갔었던 대학친구는, 별 내용 없는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몇 년을 그렇게 영원처럼 지냈었는데 각자의 진로에 뜸해져도 우린 여전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몇 년이 지나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을 때의 절망은 잊으래야 잊을 수도 없다.


나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들, 나도 모르는, 그리고 어쩌면 내가 숨기고 싶어 했던, 그리고 또 너만 알았으면 좋았을 이야기들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귀에서 넘실대며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일상의 일들은 나에게도 어김없이 다가와서 사람과 관계, 믿음에 물음표를 던지게 했다.


하지만 사실,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게 한 가지가 있다. 나 역시 다를 바 없었다. 그들에게서 건네받은 사랑만큼 온전한 마음을 주지는 않았으며, 들키지 않도록 서서히 돌아설 준비를 하곤 했다. 또 누군가에게 백 퍼센트 믿음을 심어주다가도 다른 이에게 마음을 금세 빼앗기기도 했다. 나라고 다를 바 있는가? 언제든 돌아설 수 있고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게 바로 나였다.


눈을 가까이 대고 또렷하게 보려 해도 흐릿하게 우왕좌왕하는 마음, 가끔은 훽 돌아서기도 하고 또 너무 가까이에 서기도 하는 마음. 마음의 방향은 좌표가 없어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데 어느 때는 나와 가장 멀어지기도 했다. 그 마음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끔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건조하게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말도 하기 싫은 이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나름 투명한 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최소한의 예의, 도리 그것들을 섞어내며 묽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어떤 날은 나도 믿지 못하는 나를 접어 서랍에 차곡차곡 넣어두기도 하고 커다랗고 까만 동굴로 성큼성큼 들어가기도 한다. 누구도 열지 못할 자물쇠로 마음을 걸어 잠그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엉뚱한 짓을 하곤 하는데 열쇠를 수십 개 복사해 두고는 가까워진 누군가에게 아주 쉽게 건네고야 마는 못된 습관을 갖고 있다. 이렇게 생겨먹은 나를 어쩔 수가 없다. 그냥 데리고 살아갈 수밖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 뼘의 색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