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말랑하게 해주는 책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

by na지윤서

"연초에 일이 많더니 또 고시가 뜸해졌어요... 잘 지내시다 일 생기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납기일 잘 맞춰 주셔서 감사합니다."


프리랜서의 운명일 테지만 올해는 조금 이르게 담당자에게서 한동안 일이 없겠다는 메시지가 왔다. 좋으면서도 무언가 허전하다. 허전함은 통장에 찍힐 숫자의 변화 때문일 테고, 좋은 건 이제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일 테다.


여유가 생겼으니 이제는 기사도 쓰고 브런치 글도 쓰고, 보고 싶었던 책도 읽고 전시도 보러 다녀야지 생각했는데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사고 전환이 쉽지가 않다. 번역 투의 단순한 문장에만 푹 젖었던 뇌가 좀체 말랑해지지 않는 느낌.


딸깍, 스위치를 어찌 바꿔야 하나... 고민하다 브런치를 열어 그동안 쌓인 이웃의 글을 읽기 시작했다. 말랑말랑, 말랑말랑.... 몇 달을 깁스를 한 채 지낸 다리처럼 굳어버린 뇌가 조금씩 말랑해지는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그래도 좀체 움직이지 않는 듯해 답답함이 일었다. 그러다 '베리티'님의 글을 접하자 뇌가 빠른 속도로 말랑해지는 게 느껴졌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듯 들려주는 글의 리듬이 마치 근육을 이완시키는 물리치료실의 붉은 등처럼 뇌를 말랑하게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글을 읽다 보니 지난 2월 첫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출판사를 보니 '다반'이라는 낯선 곳이다. '다반'. 이름이 예쁘다. 어떤 곳인가 궁금해 검색했더니 출판사 블로그가 뜬다. 게시글에서 "출판사 <다반>은 어떤 뜻일까요?"를 클릭했다.


"다반은 우리가 흔히 쓰는 일상다반사에서 나온 <다반>이랍니다. 한자어인데 차와 밥이라는 뜻입니다. 늘 차와 밥을 먹듯 일상에서 <다반>에서 출간된 책이 많은 사람들 곁에 있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았습니다."


아하. '차와 밥'이라는 설명에 주문을 넣었다. 다음날, 책이 도착했다. 그렇게 내 손안에 들어오게 된 책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



'너와 나의 그 길모통이'라는 첫 글에서부터 마음이 사로잡혔다.


"위대한 일들은 특별한 모습으로 찾아온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반짝거리는 보석만 빛나는 줄 알았다. 매일 누구에게나 비치는 햇빛처럼 일상적인 것들의 반짝임을 보지 못했다. 이제는 한밤중에도 가로등 불빛 아래 보도블록에 섞인 돌조각들이 작은 우주처럼 빛나는 길을 걷는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자신의 모퉁이에 나가 사진을 찍던 오기를 떠올려 본다. 그의 중얼거림처럼 똑같아 보이는 일상이지만 하찮아 보이는 시간의 걸음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 그것은 발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세계이다."


다큐멘터리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좋은 것들은 결국 시간이 판단해 준다"고 믿는 사람이다. 오래된 골목이나 거리를 좋아하고 음악과 영화, 그리고 문학을 사랑하는 그의 글에서 나는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다양한 시선을 마주한다. 그러니 어찌 보면 글을 읽는 동안 뇌가 말랑해지는 건 당연한 결과라 하겠다.


한동안은 이 책을 읽으며 뇌를 말랑말랑하게 조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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