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에 간다면

'하늘광장 갤러리'와 '군기시 유적전시실'을 지나치지 마세요

by na지윤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웃집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주중에 하루 2시간 만나는 아이와는 방학이면 4시간을 만난다. 덕분에 방학에는 아이와 나들이를 다니기도 하는데, 지난 봄방학에는 아이와 서울시청에 다녀왔다. 서울시청 지하 1층에 '서울갤러리'라는 공간이 새롭게 조성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찾게 된 서울시청. 그런데 시청에 들어선 아이가 발걸음을 멈추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거 타고 싶다."


아이가 가리킨 건 하늘광장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아마도 유리로 된 모양새와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행렬이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그럴까?"

"그래도 돼요?"

"그럼, 당연히 되지."


아이의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서너 명의 어른과 함께 얼른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아이는 투명 유리를 통해 보이는 바깥 풍경에 눈길을 빼앗겼다. 아이는 손을 뻗어 바깥을 가리키며 어디냐고 물었다.


"스케이트장이었는데 지금은 공사하고 있네. 아마 잔디광장으로 다시 바꾸는가 보다."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를 낮추고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봄을 맞아 씨앗을 뿌릴 밭고랑을 일구듯 얼음으로 뒤덮였던 땅은 어느새 황토색 흙으로 물들어 있었다. 곧 다시 초록빛의 푸른 광장이 눈앞에 펼쳐질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9층에 섰다. 아이와 나는 어른들이 내리고 난 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아이는 눈앞에 펼쳐진 넓은 공간에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이리 기웃, 저리 기웃.


10층에서 내려다본 카페 전경. 하늘광장 9층에는 카페(평일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가 입점해 있다.
하늘광장 10층 전경. 9층 카페와는 달리 10층은 한산하다. 쉼터 같은 이곳에서 아이와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쉬어갔다.


9층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아이는 10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발견하더니 그곳으로 나를 끌었다. 10층은 카페와는 달리 쉼터 같은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아래층과는 다르게 자리가 많아 그중 한 곳에서 간식을 꺼내 먹었다.


아이는 10층에서 9층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난간 손잡이를 잡고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를 따라 나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와글와글 정겨움을 자아내는 적당한 소음과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일상의 안온함을 안겨주었다.


간식을 다 먹은 아이에게 이제 내려가자고 손짓을 했다. 원래의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9층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왼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자꾸만 시선이 옮아갔다. 8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하늘광장 갤러리'라는 이정표가 붙어 있어서였다. 이곳까지 왔는데 갤러리를 들르지 않고 가자니 좀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 저곳에 가볼까?"


아이에게 계단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이는 "네!" 하고 대답했다. 망설임 없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원래 가려던 목적지를 뒤로 한 채 다시 샛길로 빠졌다.


8층 '하늘광장 갤러리'에서는 수묵담채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무료, 평일 10:00~17:00, 3월 17일까지). 팸플릿을 보니 '우리, 공간과 삶'이라는 제목 아래 '2025 서울시청 하늘광장 갤러리 공모선정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서울시청에서는 2012년 신 청사를 개청한 이후,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작가 공모를 해오고 있었다. 올해 공모 기간은 2월 12일(오전 10시)부터 3월 11일(오후 5시)까지. 공모 선정작은 3건이므로 전시 공간을 찾고 있는 작가라면 눈여겨볼 만하겠다(참고자료: https://skyplazagallery.com/).


전시장에는 그림 20여 점과 공예 작품 6점이 전시되어 있었다. 한지에 먹물과 다채로운 색감으로 일상의 풍경을 묘사한 그림은 생동감이 넘쳤다. 김장을 담그는 풍경, 찜질방에서 담소를 나누는 풍경, 해녀들이 바다에서 해산물을 길어 올리는 풍경, 전통시장에서 먹거리를 즐기는 풍경, 파티장에서 담소를 나누며 춤을 즐기는 풍경.... 그림은 우리네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풍경을 익살스러우면서도 유쾌하게 표현해 놓았다.


정유정 작가의 "우리, 공간과 삶"전. 서울시청 '하늘광장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무료, 평일 10:00~17:00, 3월 17일까지)


공예 작품은 한지와 풀을 이용해 만든 종이인형이었다. 화장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는 모습 중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게 만든 작품은 '땀 빼는 날'. 아이는 웃기다며 작품을 쳐다보았고, 나는 찜질을 아예 하지 않으면서도, 식혜 한 잔을 곁에 두고 불룩 솟은 배를 구태여 감추지 않은 채 땀을 빼고 있는 여자의 모습이 더없이 여유로워 보여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아이는 종이인형을 재밌다고 보더니 그림을 볼 때에는 그림 옆에 쓰인 설명글에 붙은 빨간 스티커에 흥미를 보였다.


"이게 뭐예요?"


아이는 '마시자 행복의 잔'이라는 그림 앞에 서더니 다른 설명글에는 없는 빨간 점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이의 관찰력에 놀라며 나는 답했다.


"응, 그건 누군가가 이 그림을 샀다는 표시야."


아이가 기특해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림을 다 보고는 아이와 함께 서둘러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더 늦기 전에 '서울갤러리'를 방문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갤러리에는 다양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키즈라운지도 있고, 로봇이 운영하는 카페도 있고, 책방도 있고, 캐릭터숍도 있고, 미디어 기술을 활용한 전시실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가 관심을 보인 곳은 키즈라운지도 로봇카페도 캐릭터숍도 아닌 '군기시 유적전시실'이라는 곳이었다. '군기시 유적전시실'은 서울시청 신청사를 건립할 당시 발굴한 유적지로, 군기시(조선시대에 무기를 제조하고 관장하던 관청)의 일부 건물지와 호안석축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곳이다. 군기시는 1884년(고종 21)에 기기창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지금의 서울시청 지하에서 중앙 무기 제조소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함께 간 아이는 다른 공간보다 '군기시 유적전시실'에 유독 흥미를 나타냈다.


입구에 마련된 설명글을 꼼꼼히 읽고 전시실에 입장한 아이는 유리 바닥 아래 놓인 돌덩이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전시물과 전시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아이에게는 몇백 년 전에 사람이 이곳에 살았다는 사실도, 오래된 물건을 보는 것도 신기한 모양이었다.


유물을 살피다 아이도 나도 커다란 흙덩어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거대한 진흙을 으깨 놓은 듯한 흙덩이는 다름 아닌 '화살촉더미'라는 이름의 유물이었다. 팸플릿에는 유물에 대해 "건물터를 조성할 때 의례 행위로 매납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쓰여 있었다.


흙덩이에는 무수한 화살촉이 촘촘히 박혀 있어 보는 순간 영화 <최종병기 활>에서 화살이 무수히 떨어지는 장면이 저절로 오버랩되었다. '화살촉더미'를 보고 있자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상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과연 인간의 역사에서 전쟁은 참말 사라질 수 없는 것일까? 싶은 생각에 잠시 암울함이 밀려들었다. 부디 전쟁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들이에 나설 때만 해도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공간을 짐작하고 그곳으로 이끌려 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이끄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 시선을 쫓다 보니 정작 새롭게 공간을 발견하게 해 준 것은 내가 아니라 아이였다.


돌보는 아이는 올해 열 살이 되었다. 10대에 접어든 아이에게 나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아이에게도 내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일상을 올해도 함께 잘 꾸려가야지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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