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by na지윤서

가끔은 스스로의 나이가 생경하고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결혼 전만 해도 내가 스스로의 세계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는 '오십'이었다. 그 이후의 나이는 떠올려 본 적이 없으므로 헤아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환갑, 진갑, 칠순, 팔순 따위의 단어는 내 생애 주기에는 있을 수 없는 단어였다. 그런데 지금 내게는 '오십'에서 열한 해를 더한 '환갑'이라는 나이가 당도해 있다. 오마나!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을 언제 처음 읽었는지 모르겠다. 2001년 큰아이에게 선물했던 책을 펼쳐 보니 '엄마가 중학생일 때 처음 읽은 책'이라는 글귀가 보이는데 지금 와 생각하니 그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겠다. 중학생 때이면 1980년도일 텐데 그때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출판되었을까? 싶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나이가 드니 '기억'에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어쨌든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처음 읽었을 때는 소년이 부러웠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곁에 둔 소년이 몹시도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가 부럽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행동으로 사랑을 증명하는 나무가 몹시도 부럽다.


2001년에 쓴 글귀에는 '마음이 아프고, 그러면서도 감동'이라는 글귀도 보인다. 아마도 우람했던 나무가 초라한 밑동으로만 남은 모습에 그리 썼을 테지만 지금에 와 책을 펼쳐 나무를 다시 보니 이제는 전혀 아픈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경이로운 마음이 든다. 어쭙잖은 동정을 들이밀었던 마음이 부끄럽다. 아낌없이 주고도 오히려 행복할 수 있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나이보다 11년을 더 살았다. 그 11년을 돌아보니 참 바쁘게도 살았다. 그 시절 동안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잘 살아왔는지 뒤돌아 본다. 지나온 발자국을 찬찬히 바라본다. 그리고 앞으로 디딜 발자국을 가늠해본다. 어떤 발자국이 놓일지 알 수 없으나 어떤 발자국을 찍으며 걸을지는 가늠하기 어렵지 않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그리 살아야지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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