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꽃

by na지윤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웃집 맞벌이 부부의 아이를 돌보고 있다. 아이와는 주중에 하루 2시간 아이의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함께 그림책을 읽거나 아이가 원하는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한동안 탁구 놀이에 빠졌던 아이는 요즘은 내 앞에서 자작곡을 부르거나 패션쇼 펼치기를 즐긴다. 어제는 <모두 다 꽃이야>라는 노래에 자신이 만든 율동을 선보였는데 가사를 그대로 본 따 만든 율동이 제법 그럴싸해서 춤에도 재주가 있다며 은근슬쩍 칭찬을 했다. 그랬더니 아이는 신이 나서 4절까지 노래를 불렀다.


나는 아이의 노래에 맞춰 머리를 까닥이며 손으로 장단을 맞췄다. 그런 나를 보고 아이는 율동을 가르쳐주겠다며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이제 아이는 핸드폰을 꺼내 노래를 찾아 틀고 본격적으로 율동을 시작한다. 자신을 따라 곧잘 율동을 하는 내 모습에 아이는 더욱 열심히 노래와 율동을 한다. 덕분에 한동안 꽃이 된 듯 아이도 나도 율동 놀이에 푹 빠졌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율동을 마친 아이가 소파에 몸을 던지며 "할머니~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익살스럽게 내뱉었다. 화답하듯 나도 아이 곁에 앉으며 "할머니도 사랑해~"라고 응수했다.


올해 들어 아이는 자주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는다. 아이에게서 처음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살짝 당황했다. 일상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단어가 아니어서이기도 했거니와 그 말의 무게를 꽤나 무겁게 받아들여서였다. 게다가 '사랑'이라는 말을 뱉고서는 자신도 놀란 듯 "아니에요, 아니에요"를 덧붙이는 바람에 더 그랬다. 하지만 그 말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한 나를 칭찬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서관에 간 어느 날이었다. 아이는 책을 읽지 말고 수다를 떨면 안 되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래도 된다며 기꺼이 아이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런데 그날, 아이는 의외의 말을 내게 들려주었다.


"할머니, 할머니는 저 처음에 어땠어요?"

"음... 예쁘고 귀엽게 생긴 아이라고 생각했지. 너는?"

"저는 좋았어요. 할머니가 손 잡자고 해서."

"응? 다른 할머니랑은 손을 잡지 않았어?"

"네. 다른 할머니랑은 손을 잡지 않았어요."

"그럼 어떻게 다녔어?"

"할머니는 앞에 가고 저는 뒤에 따라갔어요."

"저런, 그랬구나.”

"그래서 좋았어요. 할머니가 손잡자고 해서."

“할머니는 좀 걱정했는데. 엄마 아닌 사람이랑 손 잡는 거 싫어할까 봐."

“안 싫었어요. 좋았어요. 나란히 걸어서."


처음 아이를 만나던 날, 손을 잡자고 해야 하나 잠시 망설였었다(아이를 돌보는 일은 하원부터가 시작이다). 엄마가 아닌 사람과 손을 잡는 것에 아이가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게 부담이 아니었다는 얘기를 아이는 반년이 지나서야 털어놓았다. 따듯한 우유와 초코머핀이 다 사라질 동안 아이는 도서관 카페에서 책을 읽는 대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게 재잘거렸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책'이 아니라 '수다'일지도 모르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한 날이었다.

아이는 하루 2시간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나에게 종종 '사랑'이라는 단어를 선물한다. 사랑은 온전히 함께하는 시간과 함께 피어나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아이와의 시간 속에서 실감하는 요즘이다.


https://youtu.be/P9u5wxrHUvk?si=GIq2mbq1M8WEou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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