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일기

by 기묭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장맛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수많은 문장과 격언들 중 내 피부를 뚫고 장기와 세포 하나하나까지 다 적셔버린 한 문장



5살 때 미술학원을 다녔다.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고 고등학교 땐 입시 미술학원을 다녔다. 어렸을 때부터 또래 애들과는 취향이 조금 달랐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마음 둘 곳이 없어 책을 읽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과 대중성 없는 ‘취향’. 이 둘이 만나자 어느새 나는 누군가가 볼 때 뭔가 있어 보이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새 나는 누군가가 보내는 그런 시선을 즐기게 되었다. 책 리뷰 방송을 듣고 내 감상평인 것 마냥 주위에 흩뿌려대고 완성하지도 않을 소설의 스토리를 떠벌리면서 대단하다는 얘기를 듣고 대충 그리더라도 마음을 다했다면 괜찮다고 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그림을 그려댄다.


언젠가 단기 알바로 친구와 건설 현장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당시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 고뇌하며 잠 못 이루기 일쑤였는데 그날도 잠을 설치고 현장에 갔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고된 일을 한다는 상황이 나를 영화 주인공처럼 느끼게 해줬고 피로에 젖고 감상에 젖어 자아도취 상태로 미친 척 일을 하고 있었다. 점심식사 후 오후 일을 시작하려던 때에 근처에서 일하던 타일공 아저씨가 나와 친구를 불렀다. 우린 부탁한 사다리를 날라 주고 잠시 앉아서 쉬었고 맞은편에 앉아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말을 꺼냈다. 학생이고 방학 중에 돈을 벌러 왔다는 둥 뻔한 대화가 오고 가고 본격적으로 아저씨의 강연이 시작됐다. 먹고사는 얘기, 자식 얘기, 실패한 얘기, 자기 이야기를 하며 한껏 오지랖을 펼치고 훈계하던 중 아저씨는 ‘시’를 꺼냈다. 나는 당황했다.

고등학생 때 그림을 그리다 글을 쓰는 게 본인과 더 잘 맞는다고 느낀 후 시인의 길을 가려다 잠시 접고 생활에 열중해 자식새끼 낳고 키우던 중 작년에 페이스북에 시를 올리기 시작하다가 자식들에게 ‘시인 아빠’로 기억되고 싶지 않냐던 친구의 말에 본격적으로 다시 쓰기 시작해 등단했다는 타일공 아저씨의 얘기에 첫인상에 품고 있던 편견을 깨고 급격한 태세 전환을 이뤄 경청하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당황스러웠다.


“등단했는데 돈이 안되니 어떻게 해. 벌어야 먹고살지. 그래서 4개월 전쯤에 기술 배우고 이렇게 일하러 다니는 거야.” 타일공 아저씨와의 짧고 강렬한 만남. 그 후 그날은 사고가 정지했었다. 편견이 깨지던 그 순간. 떠올려 보면 아저씨만이 아니었다. 아빠도 그랬다.


어린 시절에 아빠는 그저 술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중학교 때는 아픈 사람이었으며 고등학교 때는 일 하는 사람이었다. 가족 중 가장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일만 하는 재미없는 삶이라 여겼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함부로 규정지었던 걸까. 자신이 특별하다고 여기던 내 시선에서는 평범한 아빠였지만 아빠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던 엄마의 시선에서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종교를 바꾼 사람. 전화가 특별하던 시절 편지에 시를 써서 보내던 사람. 시를 쓰고 소설 쓰는 걸 즐겼던 아빠는 결혼하고 먹고사는 일이 급해 글을 잠시 내려놓게 됐고 자식들이 태어나면서 더 오래 내려놓아야 했다. 더 나이가 들어 일을 그만두게 되면 언젠가 소설 한 권을 완성시키겠노라던 아빠의 얘기를 엄마에게 들었던 그날도 사고가 정지했었다. 사고가 정지했던 두 개의 사건 사이의 2년의 공백. 이 공백의 시간에 나는 무얼 채워 넣었던 걸까. 줄거리도 제대로 읊지 못할 책은 보이기만을 위해서 읽었던 걸까.


‘특별하다’는 생각이 나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 ‘나는’이 붙어있지 않다면. ‘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기 위해 주위 누군가를 ‘평범함’으로 규정지어왔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함부로 규정짓는 건 앞의 두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스스로 특별하다고 여기며 자존감을 키우고 노력하는 삶. 일상의 소중함, 평범함의 비범함을 체득하며 살아가는 삶. 이렇듯 어떻게 표현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단어들이지만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싶은 바는 어떤 단어든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살아가든 본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까지 읽고 듣고 경험하며 ‘좋다, 이거다’ 속으로 외치며 감명받았고 마음속 깊이 느꼈던 강렬한 체험들에 비춰보면 지금의 언행들이 진심인지 허세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곱씹어 생각하거나 일기를 쓰거나 어떤 식으로든 나를 표현해내다 보면 감이 잡히지 않을까. 시작이 어떻고 마무리가 어떻고 흐름이 어떻고 보다 뭔가 생각하고 느낀 걸 표현해 보는 것. 결과물 보다는 행위 그 자체. 그래서다.

그래서 나는 나를 알고 싶어서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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