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 하는 남자

그을

by 기묭





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못’하는 것도 ‘안’하는 것도 아니다. 한 단어로 단순히 설명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말을 할 수 없게 되고 나서 생활이 불편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타인에 대해 자기 멋대로 규정짓는 습관 덕분에 말을 하고 다녔을 때엔 받지 못했던 관심과 위로를 받았다. 아이러니. 말을 했을 때보다도 더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다니. -초등학교 6학년. 방과 후 시내버스를 타고 큰 동네로 향한다. 큰 동네에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집으로 향한다. 30분 후 벨을 누른다. 지나쳤다. 기사 아저씨가 깜빡한 듯하다. 앞으로 걸어 나가서 내리지 못했다고 하자 버스비를 거슬러 주셨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다른 버스를 타지 않은 채 뒤돌아 걸어간다- 어린 시절의 기억. 이거다. 이런 기억들이 자꾸 떠오른다. 비가 오던 날 우산 없이 걸어가던 할머니를 지나쳐갔을 땐 고등학생 시절 괴롭힘 당하다 학교를 그만뒀던 친구가 떠올랐고, 친구들과 술집에서 떠들며 얘기를 하고 있노라면 자살한 동네 형이 떠올랐다.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노래방에서 카드 결제가 되는지 물어볼 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 연관성 없이 불쑥불쑥 과거의 단편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마다 말은 하되 그 자리에 있지 않을 때가 많아졌고 최근엔 말을 꺼낼 때마다 말을 꺼내고 있는 내 모습을 내가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말을 할 수가 없게 됐다. 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기에 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정말이지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말을 하고 싶지가 않다.

작가의 이전글자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