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이사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상대적으로 넓다. 상대는 고시원이다. 몇 평 안 되는 조그만 원룸이지만 전에 살던 고시원에 비하면 상당히 넓다. 창문도 있다. 사람은 창문을 열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창문을 열고 닫음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고시원 생활에서 느낀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할 주거시설의 아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아량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겠다는 마음에 최소한의 물건만 들였다. 덕분에 빈 공간이 늘었다. 덕분에 외로움이 자리할 공간도 늘었다. 미니멀리즘에 외로움은 포함되지 못했다.
공동경비구역
머리가 복잡해지는 때는 삶이 단순하게 흘러갈 때다. 머리가 단순해질 때는 삶이 복잡하게 흘러갈 때다.라는 생각 따위를 했다. 왜 그냥 흘러가는 대로 두지 못하는 것일까. 청개구리 같은 녀석이다. 사실 이것이 000 보존의 법칙이 아닐까. 000은 내 이름이다. 실명을 밝힐 순 없기에 000으로 표기해 둔다.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 따위를 했다. 패턴이 비슷하다. 비무장지대 안 공동경비구역에서 근무한다. 선을 넘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를 주시한다. 언제나 비무장지대 안에서 어느 한쪽에도 치우지지 않고 산다. 사실은 넘어서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 따위도 한다. 선 너머엔 왠지 반 고흐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 따위를 한다. 핑계고 환상이다 라는 생각 따위도 물론 한다. 어디까지나 비무장지대 안에서 하는 생각이다. 차라리 상상에 가깝다.
컨셉
"규칙을 배워라. 그러면 그 규칙을 적절할 때 어기는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느 나라 속담인지는 모른다. 오다 주웠다. 항상 어기면서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항상 어기면서 사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이 멋있어 보인다면, 아마 대개는 만들어진 이미지 이거나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보고 싶은 면만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의 욕망을 투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컨셉이 필요할 것 같다. 디테일한 부분까지 일일이 정하기는 힘들고 컨셉만 정해 보자.
같은 일이라고 가정해 보자.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 강철 같은 의지로 끊임없이 노력한다. 갈고닦는다. 멋있다. 강한 울림을 줄 것이다. 주위의 인정을 받을 것이고 시대를 타고났다면 세상의 인정 또한 받을 것이다. 몰두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재밌어서 몰두하는 사람이다. 강요나 압박이 아니라 순전히 재밌어서 하기 때문에 몰두하기에 더 유리할 것이다. 들인 시간과 노력은 비슷하더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기 때문에 남들보다 좋은 결실을 맺기에 더 유리할 것이다. 호불호는 더 갈릴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실력은 있지만 사람이 가볍다는 얘기를 들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자유분방한 언행을 가져다가 실력을 가려버릴 것이다. 그래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본인이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내가 정하고 싶은 컨셉은 사실 둘 다 아니다. 그렇다면 저 두 사람 사이 어딘가를 점유하는 것일까. 아! 또다시 공동경비구역인 것일까.
며칠 전. 비틀즈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을 다룬 다큐멘터리(조지 해리슨 : 물질 세계에서의 삶)를 봤다. 조지 해리슨의 아내(올리비아 트리니다드 아리아스)의 인터뷰 중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하나 가져다가 내 컨셉을 가려보고자 한다.
처음 만났을 때 제게 '나도 모르는 내 모습을 당신이 발견했다고 생각하지 마'라고 했어요. 자긴 정의될 수 없는 사람이라고요. '사람들은 날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난 사실 숨은 적도 없어'
컨셉을 정한다면 컨셉이 없는 게 컨셉이다. 컨셉을 정하는 순간 흘러가는 대로 두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정한다고 정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로또나 당첨됐으면 좋겠다 - 생각만 하고 구입하지 않는다 - 그럼 당첨된다 - 그런 생각이 들어 구입한다 - 그럼 당첨되지 않는다. 방금 어깨를 으쓱거렸다(인생~). 이런 느낌이지 싶다. 근래에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사실 자각하지 못했을 뿐 언제나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리듬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리듬에 어깨를 흔들거리자. 어깨를 흔들거리며 자신의 주위를 흐르고 있는 흐름에 귀를 기울이자. 주시하고 귀를 기울이다 어느 때. 흐름의 리듬이 자신의 리듬과 맞는 그때가 오면 춤을 추자. 흐름에 맞춰서 흥겹게 춤을 추자.
이런 느낌이다. 의식의 흐름으로 쓰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공동경비구역JSA가 보고 싶어 졌다. 마침 넷플릭스에 영화가 있다. 그래서 글은 이만 줄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