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상당히 추운 날이다. 땅도 얼고 하늘도 얼었다. 걸을 때마다 얼어붙은 대기가 깨지는 모양이다. 깨진 조각조각이 피부를 찌르는 모양이다. 이 추운 한파에 나는 가야 하는지 혹은 가지 말아야 하는지 둘 사이에서 참으로 고민했다. 마음을 돌리기를 여러 차례. 나는 결국 갔다. 한파를 뚫고 항문도 뚫으러 나는 갔다.
치질 증상을 느낀 건 꽤 오래전이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자고 나면,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알아서 나을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어린 시절부터 숱하게 품었던 그 낙관-을 품고 있었기에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가지 않은걸 후회하게 되는 날은 늦은 날이다. 나는 늦은 날에야 병원으로 발걸음을 뗐고 걸음이 무거워 움직임은 더디었다. 긴장됐다. 수술만은 아니기를 바랐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하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 순간이 있다. 느닥없이 눈물이 차오르는 순간. 그런 순간은 대개 늦은 날에 온다.
잠시 후 이름이 불리고 나는 진료실로 들어갔다. 증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침대에 누웠다.
서늘한 감촉.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물감.
의사는 모니터 화면을 보여줬다. 카메라는 나의 내면을 비추고 있었다.
아아, 그렇구나.
자아란 사실 똥이 아닐까.
나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자아는 똥이다.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느낀 것들이 소화되고 남은 찌꺼기.
중요한 것들은 이미 소화되어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보살펴 준다. 의식되지 않는 곳에서 나를 의식한다. 그렇다면 자아는, 똥은 어떨까. 나는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느낀다. 피와 살이 되고 남은 찌꺼기들은 모여서 똥이 된다. 똥은 세상에 나가고 싶다. 본능이다. 똥이 세상에 나온다. 똥이 제자리를 찾는다면 똥은 비료로써 사용될 수 있다. 똥은 땅이 되고 땅은 나무가 된다. 나무는 종이가 되고 종이는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종이엔 글이 쓰이기도 하고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 똥은 창작의 원재료가 될 수 있다. 자아는 그런 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자아는 종이에 담겨 세상에 나가고 싶다. 본능이다. 자아는 그렇게 세계와 관계를 맺고 확장될 수 있다.
1월 26일에 이런 생각 따위를 했다. 메모를 해두고 조금 늦은 날. 오늘에야 옮겨 담는다. 고등학생 때 입시미술학원 선생님께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이디어, 생각은 똥과 같다. 마려우면 바로 싸야 한다. 참으면 병이 된다. 그러니 고민하지 말고 싸라. 변비가 아니라 다행이다. 치질이라 똥은 쌀 수 있다. 나는 지금 똥을 싼다. 피를 토하며 똥을 쓴다. 글을 싼다. 아아, 이것이 창작의 고통인 걸까. 약을 먹어야 한다. 약을 머금고 물도 머금은 채 나는 마지막 문장을 쓴다.
아프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