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by 기묭



삼촌은 말하셨지 여행을 가라고


여행을 가. 고행. 젊을 때니까 돈 없어도 가는 거지. 돈 있어서 가는 거는 말고. 삼촌 나이 때에 가는 건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고 너 나이 때에는 여행을 많이 다녀야 돼. 경험이 중요하다고 경험이. 삼촌은 결혼하고 처음 나가봤는데 든 생각이 뭐냐면 너무 아쉬운 거지. 젊었을 때 많이 돌아다녀 볼 걸. 그니까 너 형이랑 시간만 되면 많이 가고 아니면 혼자 가도 좋고.

아빠의 휴대폰을 바꾸러 아빠와 나는 kt에서 일하는 삼촌을 만나러 갔다. 새 휴대폰을 개통하는 사이에 삼촌은 내게 여행과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다. 명절이나 행사 때 이야기할 자리가 있을 때마다 삼촌은 자주 여행과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신다.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다리를 떨다가 얼굴을 긁다가 팔꿈치를 만지작거리다가를 반복했다. 미소만은 유지했다. 좋은 얘기니까. 듣기 좋으라고 하는 얘기니까 말하기 좋게 들어줘야겠지. 적재적소에 추임새를 넣어주며 우리는 고수와 소리꾼같이 말이다.

새 휴대폰으로 파일들을 옮기고 나서 아빠와 나는 삼촌과 헤어졌다. 우리는 차로 몇 분가량을 이동했고 서로의 일정이 달랐기에 나는 아빠와도 헤어졌다. 혼자가 된 나는 바로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서점에 들어갔다. 이곳저곳 여러 분야를 훑어보다가 전부터 사려던 에세이를 하나, 무심코 꺼내 들다 충격을 받은 시집을 하나, 해서 총 두 권을 구입했다. 두 권을 더해 가방이 더 무거워졌다. 노트북은 두고 올 걸 그랬나 보다. 그래도 들고 왔으니 뭐라도 해야겠지 싶어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시멘트 한 포, 그 악랄함에 대하여


몸이 무겁다. 몸이 무겁다는 느낌이 드는 기분이다. 왜 시멘트 한 포의 무게는 40kg인 걸까. 너무 악랄하지 않은가. 엄청 무겁지도 그렇다고 들기 쉬운 것도 아니다. 꾸역꾸역 해나가면 익숙해질 수 있는 무게다.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선에서 최대한 쥐어짜 책정한 무게가 40kg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악랄함이 이 시멘트 한 포에 담겨있는 것만 같다. 이 악랄함은 가령 이런 것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단기 알바를 하고(예를 들어 전단지) 급여를 지급할 때 얘기했던 것보다 조금 주는 상황에서의 악랄함과 결이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받는 사람이 모르고 넘어가거나 얼마 안 되는 금액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경우를 가정하고 무조건 조금 주고 보는 심보랄까. 그러고 항의를 받으면 실수라고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니까. 항의가 없다면 이득이니까. 밑져봐야 본전이니까. 이런 사상의 악랄함을 나는 시멘트 한 포에 투사하는 것이다. 지치고 힘들고 짜증이 나니까. 원망할 대상이 필요하니까.



고수와 소리꾼같이


간식으로 막걸리를 마시며 나는 아빠와 아저씨(아빠 친구)와 이모부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는다. 돈을 받으며 일한다는 생각조차도 사치스럽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다. 맞으면서 일했던. 머리 위로 망치가 날아들던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현장을 다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30년 동안 악랄한 시멘트를 이고 지던 아저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나는 처음에 품었던 경계를 어느 정도 허물고 열린 마음으로 아저씨를 바라봤다. 나라가 이미 망했다는 얘기를 하실 때 다시금 빗장이 잠기는 듯했으나 이미 여유가 생긴 터라 나는 가치판단 없이 얌전히 들으며 막걸리를 마셨다. 하루의 고단함을 나누는 어떤 동지애 비슷한 감정으로 나는 조금은 말랑말랑해진 마음으로 일을 이어나갔다. 이어나가다 나는 퇴근하기 전 연장을 챙기다 보인 아저씨의 퉁명스러운 말씨에 나는 - 세대의 갈등을 - 돈을 벌어다 줬으니 역할을 다했다는 마음을 - 아빠가 집에 들어왔으면 나와서 인사를 해야지라고 말하던 언젠가 엄마가 보였던 권위적인 말투를 - 요즘 애들은 편하게만 살려고 한다는 말들을 - 다시금 빗장을 채웠다. 그러다 아저씨는 가만히 있는데 나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고수와 소리꾼같이 뭐하는가 싶다가도 그래, 심정적으로 육체적으로 몰려있어서 그런가 싶었다. 어제는 그랬다.

오늘은 쉬는 날이라 여유가 많다. 책도 사고 기분이 좋다. 그래, 쉬면서 하고 싶은 것들도 하면서 지내야지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휴대폰을 바꾸고 집에 가서 밭일을 하고 있을 아빠를 생각하면서 어른들은 왜 쉬지 않을까 고민을 한다. 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아빠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쉬는 방법을 모르는 고모부를 생각한다. 고모부 밑에서 일하는 형의 한탄을 기억한다. 점심 먹고 쉬지도 않고 바로 일하는 고모부를. 새벽 6시에 현장으로 향하는 고모부와 방도 없이 따라가는 형을. 쉬는 날을 지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낮의 고모부를 생각한다. 의사의 말을 빌어 평생 마실 술을 젊은 시절에 다 마셔버린 아빠를 생각한다. 쉬는 날을 지울 수 없게 되어버린 아빠를 그래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을 아빠를 생각한다.

달라지는 건 없다. 생각만 하고 있을 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엄마의 표현을 빌어 갱년기가 온 듯한 아빠가 조금 변해가는 듯하다. 자꾸 단서를 준다. 애써 모른 척 해왔으나 이제는 열어봐야 할 것 같다. 휴대폰 사용법도 차분히 설명해줘야겠다. 배우고 싶다니까(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지만) 차분하게 알려줘야지.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고수와 소리꾼같이. 아빠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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