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 방문 틈 사이로 비추는 한 점의 빛. 그것은 복도에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다. 이 시간에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소리를 죽이고 듣는다. 바스락바스락 하는 소음이 난다. 이런 시간에서의 망상은 한결같이 잔인하다. 무엇보다도 호기심이 동해 천천히 일어나 문에 귀를 붙인다. 잠시간의 침묵 뒤에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무엇이었을까? 나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눕는다.
다른 날의 시간에서. 이것은 시도 때도 없기에 특정 지을 수가 없다. 어느 때부턴가 시작된 천장에서의 소음. 처음엔 윗집인 줄 알았으나 그렇다기엔 가까운, 너무나 사적인 소음.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걷는 듯한 소리로 미루어 보건대 쥐가 아닐까 싶다. 소음이 날 때마다 천장을 살짝 두드리면 이내 조용하다가도 다시 소리가 들린다. 처음 얼마간은 신경을 쓰다가도 다시 거둔 지가 언제인지도 모르게 지금은 조용하다. 죽었을까. 쥐가 있기는 했을까. 그렇다면 소음이 있기는 했나? 증명할 수가 없다. 누구에게?
다른 시간에서의 오후. 책상에 앉아 손에 턱을 괴고 노트북을 보고 있다. 빠직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살짝 내려앉는다. 책상 위에 덮여있던 유리에 금이 갔다. 어떻게 할까. 일단 하루는 그대로 두자. 그대로 둔다고 다시 붙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덕분에 나는 책상에서 벗어나 침대로 간다. 기대하는 대로만 반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것은 누구에게?
그로부터 며칠 후의 저녁. 외투 오른쪽 주머니에 와인 한 병을 넣어두고 언덕을 오른다. 명절을 하루 앞둔 전날. 이것은 나에게 명절이 될 것이다. 언덕을 오르며 미리 안주를 주문한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마음이 급해 서둘러 걸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도 취해 있었다. 마음은 여전히 급해 금세 1병을 비워버리고 모자란 술을 채우러 다시 언덕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떠오르는 장면은 변기를 붙잡고 속을 게워내던 것. 나머지는 가라앉은 후 떠오르질 앉아 찾을 수가 없다. 증명할 수가 없다. 나에게조차.
금이 간 유리는 다음날 청테이프를 사서 붙여두었다. 버리기에는 큰일이 될 것 같아 미뤄두었다. 고향집에서라면 사소한 일이겠으나 이곳에서는 다르다. 그것은 내게 이곳이 슬픈 이유 중 하나다.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나 글이 씌어지는 순간은 대개 슬프기 때문이라 이것은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다.
깨부수어버리고 싶었던 마음은 숙취가 가라앉으면서 진정이 되었다. 두 시간을 위해 이틀이나 져버린 점은 스스로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이것은 반대로 와인을 추켜세워주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나는 또 와인을 마실 것이다. 적당히.
소음은 글쎄. 소음은 지금도 호시탐탐 방문 뒤에서 문고리를 붙잡고 나타날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창틀에 걸려있기도 하고 때로는 불쑥 휴대폰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로부터?
그러나 글쎄, 소음도 소리가 아닌가. 내게 소리가 들리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것은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소음이 날 땐 소리로 들어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단은 그걸로 되었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일단은 그것으로 일단락 지을 수 있겠지만 그러나.
그러나 그렇지만 가끔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