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와 해변의 소나무가 매력적인 여름 휴가지 강릉은 매년 시월에 열리는 커피 축제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하지만 직접 가보고 느낀 강릉은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지역 곳곳에서 작은 물결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이제는 조금 더 큰 파장을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더웨이브컴퍼니(The Wave Company, TWC)가 그렇습니다. 강릉과 강원 지역의 크리에이터들과 곳곳에서 연결점을 만들며 지역 주민과 여행자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와 공간, 큐레이션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가을 바람이 선선한 시월의 저녁, 더웨이브컴퍼니의 첫 번째 공간인 웨이브라운지에서 김지우 대표를 만났습니다. 네이비 셔츠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조곤조곤 말하는 그는 낯을 가리면서도 한마디 한마디 신중했습니다.
고향이 강릉입니다. 부모님도 강릉에 계시고요. 대학에 가기 전까지 강릉에 살았는데, 고향에 대한 애정이 좀 각별했습니다. 방학 때마다 강릉에 오면 새로 생긴 가게는 없나, 무엇이 바뀌었나 유심히 보곤 했습니다. 관심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해가 높아졌습니다. 그게 출발점이 된 것 같아요.
제가 애정을 가진 강릉의 유산과 아이덴티티를 비즈니스에 녹이는 작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구체적인 아이템이나 서비스를 구상하고 온 것은 아니고, 함께 사업을 만들어 갈 공동창업자들을 찾고, 이주 준비를 했습니다. 서울에서 하던 사업도 정리했습니다.
울산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뮤지션박스라는 서비스였는데 현재는 종료된 상태입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경영학을 전공하다 보니 음악 분야에서 뭔가 해보고 싶었지요. 아티스트들이나 음악 산업 종사자들을 연결하고 일을 만들어가는 데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대학 졸업 후 2년 정도 서울에서 사업을 유지하며 강릉으로 올 준비를 했습니다.
일단 혼자서 일을 벌이기엔 한계가 있을 것 같아 사람부터 찾았습니다. 더웨이브컴퍼니는 3명이 공동 창업한 회사예요. 저 외에는 강릉에 연고가 없는 친구들입니다. 최지백 CMO는 학교 동기인데,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하던 친구고 사람을 만나 일을 도모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지역에서 사람들을 연결하는 데에 적격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창석 COO는 동네와 지역문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서울에서는 성수동에 살았는데, 지역 관련한 일들을 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로컬, 라이프스타일, 크리에이터입니다. 지역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면 그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어요. 지역 주민에게는 '이런 라이프스타일도 있다' 제안을 하고, 강릉을 찾는 여행객들에게는 강릉의 경험을 파는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이지요.
크리에이터들의 생태계가 없어 이 부분에도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은 웨이브라운지라는 라이프스타일 라운지를 운영하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일하기 좋은 환경, 예를 들면 코워킹스페이스 같은 공간을 만들어 크리에이터들이 모이고 연결되고 일이 생기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선 사람이 모여야 한다고 생각해 웨이브라운지라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맞아요. 그래서 혼자 하기엔 힘든 환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사람이 고여야 한다고 생각해 웨이브라운지라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두 명이 강릉에 상주하며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어요. 공간이 있으면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난 분들, 강릉에서 군복무를 하며 알게 된 공무원 분들과 인연이 이어져 사업적인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웨이브라운지를 만들고 사업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어요. 서울문화재단과 하이픈 프로젝트를 하며 감자꽃 스튜디오와 연이 닿아 이런저런 고민들을 나눌 수 있었어요. 감자꽃 스튜디오는 평창에 있는데, 강원도의 다른 지역에 있는 청년 사업가들도 연결이 잘 되어 있습니다. 웨이브라운지에서 공연을 하려고 하면 감자꽃 스튜디오에서 공연했던 아티스트들과의 네트워크와도 연결이 될 수 있고, 아티스트들도 강원 지역에 다양한 접점이 생기는 등 자연스러운 협업이 많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강원도의 여러 지역들은 관광지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나지만, 그곳에서 거주하며 일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으니까 오히려 연결이 빨리 되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도 강릉으로 돌아와 자기 사업이나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좋은 점은 경쟁자가 없다는 것이죠. 이것이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회사를 보는 시선은 대체로 '생소하다'인데 그래서 성과에 비해 많은 주목을 받은 편이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실제 일할 때는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강릉은 상당히 보수적인 지역입니다. 텃세도 심하고 지역사회 속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깊게 연결되어 있어 부딪히는 때도 많아요. 정보의 비대칭성이 느껴질 때도 많고요. 우리 회사가 지향하는 주제나 키워드가 지역사회와 공유가 잘 안 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일을 진행하기 전에 그 부분부터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공감대를 빨리 형성하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
앞서 보수적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 보수성 때문에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왔습니다. 강릉단오제는 아직도 성황리에 열리고 있습니다. 강릉 인구의 20여 퍼센트는 20-30대지만 대학 때문에 비율이 높을 뿐 지역사회와 대학생들의 교류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젊은 대학생들이 강릉이 가진 보수성에 적응하기는 힘들 겁니다. 만나면 바로 학교와 출신 지역부터 물어보는 어른들이 아직 많으니까요. 또 강릉은 자영업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에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소비 도시이기 때문에 지역의 이슈를 해결한다거나 크리에이터들 간의 연결점을 찾는다거나 하는 부분에서 공감을 얻기 쉽지 않습니다.
이런 공감대를 만드는 건 강릉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시행되는 정책들과 실제로 현장에서 부딪히며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맥락 공유가 안 되는 점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서울은 그 부분에서 어느 정도 방향성 공유가 되고 있다고 봤는데 강릉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 혹은 개인들끼리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거나 사업적인 방향성이 맞으면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고 느낍니다.
강릉의 자연환경은 정말 보물이에요. 강원도의 자연이 다 그렇지만 특히 강릉은 바다와 호수, 산이 모두 있는 도시입니다. 7번 국도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면서 강릉에 맞닿은 해변들을 보고 있으면 강릉의 자산을 내가 지금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집니다.
서울만큼은 아니어도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특이한 콘셉트를 가진 공간들도 하나씩 생겨나고 있습니다. 강릉이 언젠가부터 커피로 유명해졌는데 (인터뷰한 날에는 제10회 강릉커피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사실 커피는 서울에 맛있는 곳이 더 많을 거예요. 다만 강릉이 '커피의 도시'라고 불릴 수 있는 이미지가 생겼고, 그에 힘입어 청년들이 바리스타가 되고 로스터리 카페를 운영하는 곳들이 하나씩 생기는 거죠. 커피를 즐기고 공부하는 청년들이 많아지면 이 역시 강릉의 자산이 될 겁니다.
현재 강릉시 홍제동에 살고 있는데 살기 참 좋습니다. 강릉에 온 이유 중 하나가 환경이에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일을 하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처럼 출퇴근에 긴 시간을 쓰는 것도 싫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아직 일이 많아 자주 즐기지는 못하지만 업무 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게 참 많습니다.
약간 불편한 점도 있어요. 서울에서는 열 명의 지인이 있다면 한두 명 정도 만나며 살았는데, 이 사람들이 강릉에 오면 열이면 열 모두 저를 찾습니다. 그러면 밥 먹고 바다 구경도 시켜줘야 하고 유명한 곳도 가야 하고 이게 열 번이 되니까…. 그래서 강릉에 놀러 오는 지인들을 위해 명소와 맛집 리스트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강원 지역번호 033에서 착안한 이름입니다. 강릉이나 강원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연, 전시, 이벤트 등의 정보를 큐레이션해 보여주고, 여행객들에게는 강릉, 양양, 속초, 원주, 춘천 등 강원도의 도시들과 공간, 사람들을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웹사이트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습니다.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로도 만날 수 있고요. 12월에는 종이 매거진을 발간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도시는 강릉이 될 예정이고, 계간지로 생각 중입니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가장 큰 파트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파트너십을 맺은 것은 아니지만 센터와 로컬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 꾸준히 교류하고 있습니다. 얼마전부터 LCA( 로컬 크리에이터 엑셀러레이션)에서 만나 커뮤니티 밋업을 만든다든지 지속적인 네트워킹을 통해 일을 구체화 할 때가 많습니다. 강원도를 포함해 지역 곳곳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들과도 그렇게 일하고 있어요. 평창의 브레드메밀이나 산너머 음악공방, 대구의 피키차일드 다이닝 같은 경우 자주 교류하며 사업적인 아이디어를 나눈다거나 협업할 부분을 찾아나갑니다. 대구 쪽과는 ‘033 매거진’을 차용한 053 브랜드를 만들어 비슷한 시도를 하려고 준비 중이고요.
더웨이브컴퍼니의 경우에는 웨이브라운지 공간에서 매출이 발생하고 있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하거나 컨설팅하며 수익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수익보다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도 있지요. ‘033 매거진’ 같은 경우입니다. 앞으로는 지역의 색을 담은 브랜드를 만드는 일도 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아요. 몇 년 사이 한국에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런 현상이 퇴사, 이주 등의 키워드로 나타났고, 지역에도 로컬숍을 차린다거나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지역 창업을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역에 크리에이터들이 유입되면 도시와 골목에 라이프스타일이 만들어집니다. 매출 외에도 그런 부분에서 관심이 늘어났으면 합니다. 물론 지역에서는 궤도에 오르기까지 인내심이 필요하죠. 남들이 말하는 '빵 터지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삶의 방식을 일궈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서울에서는 단연 어반플레이입니다. 서울 연남동에 살았었는데 가까이 있어서 더 관심 있게 봤어요. 기획력과 실행력이 좋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반플레이: 도시 문화 콘텐츠 전문 기업. 대표 프로젝트로 아는동네, 연남장, 연남방앗간 등이 있다.
시흥에는 빌드라는 팀이 있는데 이렇게도 사업할 수 있구나,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에요. 사업을 구상하며 레퍼런스로 삼기도 했고요.
*빌드: 경기도 시흥시 월곶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역 재생 스타트업. 대표 프로젝트는 바오스&밥스 레스토랑 등이 있다.
제주에 있는 재주상회의 기획과 실행도 찾아보는 편입니다.
*재주상회: 제주를 기반으로 한 문화 콘텐츠 전문 기업. 리얼제주매거진 iiin[인]등의 콘텐츠 제작, 작가 에이전시, 전시와 공간 디자인, 브랜딩 등을 하고 있다.
연세대 모종린 교수님은 이론이나 생태계, 정책 방향성 측면에서 공감하고 있으실 뿐만 아니라 실현에 대한 고민까지 하고 계셔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코워킹스페이스를 준비 중입니다. 매출이나 수익보다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강원 지역의 크리에이터들이 모여서 일하고, 일을 벌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다른 지역에서 한달살이 등으로 오더라도 일할 곳이 있어야 하는데, 좋은 업무 환경이 만들어져 있지 않습니다. 역시 공간이 있으면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비즈니스로 확대되지 않겠나 싶어요.
잠시 언급했지만 지역 색이 들어간 브랜드 만드는 일도 하려고 합니다. 로컬스럽지만 전국을 겨냥한 좋은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내년에는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정희정
사진 이힘찬
편집 김인경
교정·교열 윤정아
발행 어떤생각이든 연구소
총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지역혁신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