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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Aug 08. 2019

지속가능한 로컬 투어리즘

일본 소도시, 작은 가게에서 만들어가는

'인구 감소'나 '지방 소멸'같은 키워드가 심심치 않게 뉴스에 오르내리는 요즘, 이러한 사회문제를 보다 일찍 겪은 이웃나라 일본을 더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분야라면 단연 관광산업이다.


글.사진_이승민

사진제공_붓쇼잔 온천, 야마나시 와이너리 투어 



일본은 유례 없는 관광 호황을 누리고 있다. 2011년 지진을 겪으며 주춤한 것도 잠시, 외국인 방문객 수는 2013년 1000만 명, 2015년 1900만 명, 2018년 3100만 명대로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둔 현재는 부족한 호텔을 공급하기 위해 대도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을 중심으로 호텔과 호스텔을 새롭게 오픈하고 있고, 서비스 역시 다양화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2018년에는 마치야도협회가 발족했다. 

마치야도는 국내에서는 마을 호텔, 커뮤니티 호텔 등으로 소개되는데, 마을 전체를 호텔에 비유한 개념이다. 에도 시대 지방 영주(다이묘)가 에도(현 도쿄)로 이동할 당시 머물던 길목에 형성된 슈쿠바마치宿場町에서 역사적 힌트를 찾을 수 있는데, 기능적으로는 호텔에서 제공하는 의식주 서비스를 마을 전체에 분산시킨 형태다. 즉 지역 주민과 이들이 찾는 노포, 깨끗한 숙박 서비스, 체험 프로그램 등을 연계해 여행자에게 지역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경험의 콘텐츠를 관광산업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이들 사례를 살펴보면 도쿄, 오사카 같은 대도시의 전형적인 관광지와 다른 소도시의 매력, 특히 여행자를 사로잡은 소도시 여행의 특별함을 발견하게 된다. 오래된 목조 가옥과 다다미방, 녹차 향 등 익히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일본다움이 아닌, 오직 그 지역에만 있는 공간과 사람(마을 주민)의 매력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아무것도 없는 듯한 농촌 혹은 교외 주택지에서 지속 가능한 

투어리즘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애써 활성화하지 않는 - 붓쇼잔 온천

부처가 태어난 산이라는 뜻을 지닌 ‘붓쇼잔(仏生山)’은 우리에게는 낯선 지명이다. 그러나 88개 사찰의 순례길로 유명한 시코쿠, 그중에서도 우동으로 유명한 가가와현의 현청 소재지 다카마쓰 시에 위치한다. JR 다카마쓰 역에서 내려 고토덴 전차를 타고 15분이면 주택과 논밭이 펼쳐진 한적한 교외에 닿는다.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걷다 보면 어느새 눈앞에 모던하면서도 목가적인 풍경에 녹아든 붓쇼잔 온천 건물이 나타난다. 붓쇼잔 온천은 일반적인 일본의 온천 마을은 아니다. 1990년대 다카마쓰에서 고대 화구(crater)가 발견되었을 때 이곳에 온천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뉴스 조사를 본 한 주민이 땅을 파면서 붓쇼잔 온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무모한 일인 듯싶었지만, 나중에는 실제로 온천수가 나왔다. 2005년 개장한 온천 건물은 건축가인 마을 주민의 아들이 고향에 돌아와 설계한 것이다. 온천은 원래부터 지역의 것이라고 여긴 건축가는 마을 주민 모두가 일상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온천 시설을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 이후 그는 운영 측면에서도 마을과 상생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했다. 이는 공용 휴게소에 헌책을 전시하거나 지역 특산품 판매 코너를 넣는 식으로 구현되었다. 뛰노는 아이들을 특별히 제지하지 않는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까지 이 일의 연장선이었다. 2012년부터는 ‘마을 전부가 료칸’이라는 콘셉트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마치야도와 같이 의식주 기능을 하나의 건물에 모으면 ‘료칸’이고, 지역으로 분산시키면 ‘마을’이었다. 여기서 붓쇼잔 온천은 료칸의 욕실이 되었고, 아침 식사는 주변 카페나 우동 가게에서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붓쇼잔 지역에는 머물 만한 장소, 즉 숙소가 없었다. 결국 마을의 빈집을 레노베이션하고, 숙박 기능을 접목해 객실을 만들었다. 그 후로는 자연스럽게 카페나 장난감 가게, 서점과 같은 작은 가게가 차츰 생겨났다. 

붓쇼잔 온천에 가보면 뛰어난 수질에 한 번 놀라고, 생각보다 평범한 동네의 풍경에 두 번 놀란다. 즐길 것이라고는 온천과 마을뿐이다.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주는 온천수, 이른 아침의 뒷산 산책, 동네 한 바퀴를 돌며 마주치는 작은 가게의 풍경, 이렇게 소소하고 여유로운 경험을 오롯이 즐기면 된다. 

그러는 사이 마을의 매력은 서서히,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온천 주인은 “지역을 활성화하자”라는 말을 금기시하는데, 한번 뜬 것은 다시 가라앉게 마련이고, 띄우려 하다 보면 실력보다 홍보가 앞서 소비자를 먼저 불러들이게 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생산자가 먼저 움직임을 만들고, 수준에 맞는 소비자가 찾아오는 느린 마을을 지향하자고 말한다. 4대에 걸쳐 주민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 온천 주인의 운영 철학과 개성 있는 의식에서 비롯된 ‘느린 투어리즘’이다.



힘을 빼고 지속 가능성 추구하기 - 와인 투어리즘 야마나시

도쿄 신주쿠에서 특급열차로 90분을 달리면 후지산을 비롯해 배와 포도 등 과일로 유명한 야마나시현의 현청 소재지 고후甲府에 도착한다. 고후 역 앞 중심 시가지에는 야마나시 현청, 고후 시청 등 주요 공공시설이 밀집해 있고, 깨끗하게 정비된 거리에서는 좀처럼 사람을 보기 어렵다. 이곳은 인구 19만 명이 거주하는 소도시다. 여름과 가을이면 이 한산한 도시 야마나시로 와인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 중심에는 2008년에 시작해 오늘에 이른 ‘와인 투어리즘 야마나시’가 있다. ‘와인을 만드는 현장에서 와인 메이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와인을 마시면 훨씬 즐겁다’는 모토를 둔 이 행사는 2000년 문을 연 (지역) 와인을 즐기는 레스토랑 ‘포 하츠 카페(Four Hearts Café)’를 운영하는 회사 ‘로컬 스탠더드(Local Standard)’가 야마나시현과 고후시의 의뢰를 받아 기획했다. 

2000년 도쿄 생활을 접고 고향 고후로 돌아온 주인장은 식당을 개업할 당시 맛이 없고 싸구려로 취급받으며 아무도 찾지 않는 야마나시산 와인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는 단순히 상품을 진열해놓은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맛을 경험하기 위해 ‘와인 페어’를 개최하고, 홍보 미디어를 만들어 운영했다. 와인 투어리즘 야마나시 역시 이때 출발했다. 최선을 다해 좋은 와인을 만들고자 하는 생산자와 지역에서 나오는 고유한 가치를 깨닫지 못한 지역민, 고후 지역에 즐길 거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여행자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역에서 상품을 생산하고, 지역에서 홍보하며, 이로써 지역으로 외부 소비자를 불러들이는 순환 경제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와인 투어리즘 야마나시의 비전이 되었다



와인 투어리즘 야마나시를 경험하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홈페이지를 통해 2~3주 전에 참가 신청서를 낸다. 참가비 등 결제를 마치면 신청자에게 티켓, 지도, 와이너리 정보 등을 담은 초대장이 발송되고, 신청자는 자신이 직접 와이너리 코스를 설계할 수 있다. 행사 당일에는 와이너리를 방문해 다양한 와인을 마시면서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와인을 구매한다. 이틀간의 행사가 끝나더라도 와인 투어리즘 야마나시를 경험한 이들이 (행사를 전후로) 3개월 정도는 지난 추억을 되새기고 즐길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이다. 행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지자체 보조금으로 운영했고, 두 번째 해부터는 적은 예산이었지만 자원봉사자와 함께 자립형으로 진행했다. 첫해인 2008년 참가자는 40명이었고, 2014년에는 1900명으로 늘었다. 2019년 참가 와이너리의 수는 27개다. 물론 지난 10여 년의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진행한 행사는 규모가 커짐에 따라 인건비를 지급해야 했고, 때론 적자가 발생했다. 2012년에는 참가비가 2500엔에서 5000엔으로 2배 인상되었다. 참가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와는 달리 그 수가 늘었다. 2019년 초여름에 열린 행사 또한 성공리에 마쳤다. 

그럼에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의 수익성과 지속성을 고민하고 있기에 야마나시 와인 산업 생태계를 위한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작은 가게에서 지역 산업까지 - 두 도시 이야기

앞서 소개한 두 도시는 인구나 산업 면에서 제주도보다 규모가 훨씬 작다. 하지만 제주도의 마을 하나, 지역 한 곳의 규모와 견주어본다면 훨씬 크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작은 도시의 공통점 중 첫째는 관광자원보다 앞서 꼽을 수 있는 지역의 여러 가치 있는 콘텐츠다. 지역 주민과 그들의 일상, 이들이 생산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비로소 다른 지역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콘텐츠가 생겨난다. 두 번째로 이런 콘텐츠는 반드시 하드웨어의 변화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물리적으로 똑같은 조건의 환경에서 개개인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무엇보다 ‘시간의 힘’을 두 도시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순간의 결정은 10년 후에 가져올 미래에 대한 책임이 된다. 언론에서는 제주도의 중국 관광객 수가 반으로 감소해 불황을 겪고 있다고 조명한다. 오히려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한국, 그리고 제주도에서만 가능한 것을 시도하고 만들어갈 기회가 될 수 있다. 2019년, 이제는 제주도민이 협력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도모하고, 이전에는 없었던 혁신적인 지역 관광 서비스를 개척해야 할 시간이다.



기고 : 이승민
 일본 도시 재생의 선진 사례를 만드는 회사 리노베링에 입사해 레노베이션 스쿨과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2018년 한국리노베링을 설립했으며, 한국 최초로 제주에서 레노베이션 스쿨을 개최했다. <포틀랜드 메이커스>(야마자키 미쓰히로 지음,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펴냄)를 번역한 바 있다. 


*J-CONNECT 매거진 2019년 여름호(Vol.10)의 내용을 온라인에 맞춰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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