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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Jul 30. 2020

이슈 대담
X세대, 로컬을 논하다 ①

제주에서 일하는 40대 다섯 사람이 모였다. 가업을 승계한 CEO와 언론인, 창업과 인재 육성 섹터를 이끄는 리더까지. 출신지, 활동 무대 등 제주와 연결 고리가 있는 40대가 최근 제주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디앤디파트먼트에 모였다. ‘세대와 지역’에 관한 담론을 나누기 위해.



‘낀 세대’ 40대에 주목하는 40대



고미 저를 기준으로 본다면 40대가 개인적으로나 세대 자체로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386을 지나 586 세대로 넘어가고 있죠.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느꼈지만, 586 세대는 민주화 운동이라는 흐름을 타고 청춘을 보냈어요. 누군가는 50대를 일컬어 ‘줄 서는 세대’라고 말하더라고요. 40대는 조금 달라요. 같은 시대를 살았다곤 하지만, 민주화 학생 운동의 주류였다거나 경제 위기 상황에서 큰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회복하는 과정까지 경험한 세대죠. 동시대를 살고 있는 각 세대와 40대인 우리가 경험한 가치를 공유한다면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자리에서 그동안 겪은 일련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클 거라 생각합니다.


전정환 덧붙인다면 지역에서 40대는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세대별로 지역에 대한 경험과 생각이 다르잖아요. 근대화 세대인 50대 이상은 서울로 가서 성공한 경험을 가지고 있거나 지역에 남아 산업을 일군 경험이 있습니다. 서로 함께할 일이 많지 않았죠. 시대가 바뀌면서 40대가 조금씩 달라졌고, 밀레니얼 세대로 가면 한층 달라지죠. 이번 대담 자리에는 제주로 이주했거나 리턴한 분, 제주에서 가업을 승계한 분, 언론인으로 활동하는 분이 모였습니다.


고미 우리 위 세대가 일군 것, 그리고 다음 세대와의 연결 고리를 짚어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되겠죠.


현재웅 2005년 말, 제주로 (돌아)왔을 당시 저는 한라산소주에서 어린 축에 속했어요. 이제는 20~30대 사원이 많이 유입되었고요. 한라산소주는 연혁이 오래된 곳이라 근속 연수가 긴 사원이 많아요. 30년 근속 사원인 분도 꽤 있죠. 20~30년 회사를 다닌 분의 비중이 높다 보니 10년 차는 명함도 못 내민달까요. 회사에서 장년층 이상인 사원이나 20대 중반의 젊은 사원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서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와 방향성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경영자 입장에서는 그 점이 애매할 때가 있죠. 대표로서 회사 평판이나 이미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과 동시에 각기 다른 세대의 말을 수용하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상대편 이야기만 듣느냐는 볼멘소리를 듣곤 해요. 대표가 모이는 경제인 모임이나 자리에 가면 제 나이가 또 애매해져요. 저와 동년배인 대표는 거의 없고, 위 세대인 50대나 그 이상 연령대인 분들이 대부분이죠. 그런 자리에서 막상 목소리를 내려 하면 다른 분들이 ‘나는 그때 그러지 않았는데. 네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하는 인상을 주기도 해요. 아주 가끔이지만요.(웃음) 이제는 주로 속으로 생각하는 편이고, 대외적으로 주도해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기는 조심스러워요.


김지완 아라리오는 문화 예술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곳이에요.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처럼 지역 스토리를 담은 재생 방식을 통해 지역에서 미술관이 중요한 콘텐츠로 자리 잡은 사례가 있어요. 제주의 아라리오 역시 제주시 원도심의 가능성을 보고 로컬 스토리를 확인한 후 미래 세대가 모일 것을 예상하면서 해볼 만한 곳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000만 관광객이 찾는 환상의 여행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구체화하기 위해 애초 원도심에 주목했던 부분을 다시 눈여겨보고 있어요. 항간에 건물 투자라는 오해와 낭설이 도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땐 참 외롭더라고요. 이런 경험을 통해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했죠.


고미 제주는 문화 예술에 대한 자원을 갖춘 한편, 진입 장벽이 견고한 측면도 있지요. 그럼에도 제주에서 아라리오의 역할은 무엇인가, 청년 작가들을 모아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숙제를 풀었으면 합니다. 아까 현재웅 대표님 이야기를 들으며 50대 이상 연령층이 제주에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해봤습니다. 이 또한 40대에 부여된 ‘변화 세대’라는 역할에 대한 이해라고 봅니다. 앞선 세대(중 일부지만)는 젊은 세대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내주었기에 그들이 자립심이 없지 않나, 하는 우려를 내비치곤 하죠. 한편으론 왜 우리에게 이것밖에 안 주나,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는 20대의 말도 들었을 거예요. 각 세대와 접점이 있는 40대가 위와 아래 세대 사이에서 스펀지가 되어야겠죠.


(왼쪽) 제민일보 편집국장 고미, (오른쪽)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대표 김지완


다른 세대를 보는 시선


김종현 기성세대가 만들어낸 것 중 한 축은 ‘자산’이고, 한 축은 문화에 대한 ‘장벽’이죠. 먼저 기성세대가 자산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두 축은 곧 근대화와 민주화입니다. 여기에는 각자 속한 시대에서 생존하기 위한 비법이 담겨 있어요. 근대화 세대에게 소통은 필요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회나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불도저 같은 방식으로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해봤느냐? 하면 된다’라는 식의 리더십이 전체를 이끌었습니다. 새로운 시도보다 다른 나라에서 진행된 근대화의 해답을 밀어붙이는 방법이 통하던 때였습니다. 따라서 내부의 소통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근대화 세대에게는 척박한 자원 속에서 홀로 개척해야 했던, 선구자 혹은 프런티어의 태도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삶을 살았죠. 우리는 그 자산과 장벽을 물려받은 것이고요. 민주화 세대에게는 정의, 즉 올바른 가치 판단 능력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그들은 정의를 집단적으로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개인적인 요소는 공동체의 과제보다 우선 순위에서 밀렸어요. 분명 중요한 유산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를 옥죄는 요소인 셈이죠. 이 자산과 장벽을 균형적으로 바라볼 때 다음 세대가 각자의 세대적 특성과 과제를 이해하고, 이를 위해 기존 세대에게 무엇을 취하고 버릴 지 판단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성세대의 중요한 자산 중 하나는 ‘책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근대화 세대에 속한 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그때는 열다섯 살이 넘으면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며 살았어요. 책임 의식이 강할 수밖에 없죠. 또 386 세대는 대학 때부터 국가를 혁명하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 국가와 사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그에 상응하는 능력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각각 ‘가정’과 ‘국가’를 책임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X세대 이후 세대부터는 책임질 기회가 줄어듭니다. 가정과 국가가 많이 안정화되었거든요. 가정과 국가에 대해 책임질 이유가 부족해졌습니다. 개개인의 삶이 더 중요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발현하는 방법을 고민할 기회는 별로 없었습니다. 책임에 대한 훈련은 자신의 삶과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지는 경험과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책임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기회입니다. 책임 의식은 시간과 자원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시간과 자원을 보장하는 기회가 없다면 책임지는 자세를 갖출 수 없습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면 스스로 책임지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책임질 기회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로컬 어젠다와 소명 의식


고미 제주시 원도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죠. 북적북적했던 원도심에 대한 기억이 있을 텐데, 요즘의 한적한 원도심을 보면 어떤가요?


현재웅 원도심을 말할 때 40대를 빼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1990년대 고등학생이었는데, ‘삐삐’가 없던 시절이죠. 그때 친구들과 제주시 지하상가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원도심 가서 팥빙수를 사 먹곤 했죠. 저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나고 자란 40대에게 원도심은 짙은 향수가 풍기는 곳이에요. 아까 고미 국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억나는 일이 있습니다. 원도심의 시장, 상권을 살리자는 아이디어를 논의한 적이 있는데, 제주북국민학교(현 제주북초등학교) 주차장에서 인원을 모아 전세 버스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해보자는 것이었어요. 대상은 여행자이고, 당시에는 중국 여행자도 고려했어요. 원도심의 주요 거점을 잇는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해보자는 이야기가 오갔죠. 개인적으로 원도심을 일부러 찾아오는 것은 식당이나 펍에 가기 위해서예요. 원도심에는 맥파이를 비롯해 ‘원도심 맛집’이 있어요. 미친부엌, 올댓제주 같은 곳이죠. 한라산소주 임직원과 회식할 때는 기왕이면 제주다운 걸 파는 곳을 찾게 되더라고요. 원도심에 같이 나와서 맛집에서 맛있게 밥 먹고, 맥파이에서 한잔하는 거예요. 또 원도심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탑동이에요. 요즘에는 탑동에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탑동 부두에서 초저녁 무렵부터 자리 펴고 앉아서 술을 마시거든요. 사람들이 어떤 주류를 선호하는지 파악하고 조사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죠. 젊은 세대가 많이 다니는 원도심에 가면 인기 있는 맥주나 소주에 대한 정보를 바로 얻을 수 있어요. 아마도 사람들은 탑동에 있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술을 사 왔을 테고요. 여기 모인 분 가운데 김지완 대표가 제 또래인데, 원도심에서 방향성을 계속 고민한다면 금세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디앤디파트먼트 제주에 와 보니 d식당, 프라이탁 등 여러 숍이 있어요. 식당의 경우 메뉴판을 봤더니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아요. 예를 들면 한라산소주의 허벅술 마진을 따졌을 때 기존 식당의 소비자가는 6만~7만 원선인데, d식당에서는 4만8000원이에요. 가격은 물론이고, 식당의 콘셉트나 분위기가 훌륭합니다. 앞으로 이런 공간이 여럿 생겨나서 젊은이들이 많이 모였으면 좋겠어요. 40대가 위 세대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러운 면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나이가 들면서 이전보다 한층 시대에 순응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화두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정환 제주는 국내 지역이지만, 제주시 원도심은 제주 속의 또 다른 지역으로 볼 수 있죠. 원도심에 대해 여러 세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 비추어 보면 로컬과 세대의 역할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김지완 대표님과 현재웅 대표님처럼 원도심을 무대로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갖고 활동하는 40대가 있죠. 문득 스스로 세대의 소명을 정의하고, 그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대담자

제민일보 편집국장 고미,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대표 김지완, 제주더큰내일센터장 김종현, (주)한라산 대표이사 현재웅,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전정환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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