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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Jul 31. 2020

이슈 대담
X세대, 로컬을 논하다 ②



(왼쪽) 제주더큰내일센터장 김종현, (오른쪽) (주)한라산 대표이사 현재웅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에
우리 세대가 할 일은 다음 세대에게 그들의 성장을 위해 의견은 제시하되,
그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인정하고 지지하고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현 논의해볼 만한 주제죠. 40대의 소명 의식, 다들 어떻게 생각하나요?


전정환 ‘낀 세대’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우리나라가 압축 성장한 데서 발생한 현상인 것 같아요. 어찌 보면 행복한 고민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면 여전히 산업화를 위해 집중해야 했을 테고, 민주화가 되지 않았으면 홍콩 시민들처럼 민주화 시위를 하고 있어야 하겠죠. 압축 성장에 성공한 덕분에 여러 경험을 가진 다양한 세대가 공존하게 되었어요. 서로 공감하면서 미래로 나갈 수 있게 ‘밀어주는’ 역할도 있어야 하는 것이죠. 다양성이 공존하는 시대로 나가는 데 40대가 퍼실리테이터가 되고 액셀러레이터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원도심 이야기로 돌아가서, 다 잊힌 것이니 버리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미래 세대를 위해 다양한 사람이 문화·역사적 가치에 공감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질 수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우리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아라리오뮤지엄이 미술관에 그치지 않고, 미친부엌을 입점시키고, 디앤디파트먼트를 조성하며, 골목길 전체를 활성화하는 일도 분명히 소명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지완 저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가치 전달자’라고 생각해요. 대학에 들어가기 전, 한창 부글부글 끓던 때 배낭여행을 했어요. 세상을 경험하는 기회였어요. 지금은 모바일 소비라고 해서 (배낭여행으로 하던) 그러한 경험을 간접 체험으로 대체하고 있죠. SNS나 블로그를 보면서요. 그런 경험은 뷰파인더 너머에 있는 가치를 직접 체험하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저 역시 경험으로 깨우친 것이 있었기에 원도심의 가치를 알 수 있었어요. 일례로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1층 바닥에 노란색 타일이 있는데, 실은 전체 콘셉트하고는 맞지 않는 컬러거든요. 그렇지만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가 생기기 이전, KFC 시절부터 존재해온 거라 살리기로 했어요. 콘텐츠로 봤기 때문이죠. 누군가는 타일을 보면서 KFC에 대한 향수를 떠올릴 거예요. 지역을 콘텐츠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젊은이들은 ‘이런 게 왜 여기 있지?’ 하는 의구심을 느끼면서 인위적인 컬러의 특이성을 통해 미감을 느낄 수 있죠. 이조차 디자인으로, 특이성과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앞으로도 디앤디파트먼트를 통해 사람들이 로컬에 어떤 가치를 두는지 알리는 역할,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될 거란 기대가 있습니다.


고미 ‘가치 전달자’라는 표현이 좋네요. 솔직히 40대는 테스트베드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벌써 20년이 넘은 이야기인데, 제가 신문사에 입사했을 당시에는 양성 평등이 이슈가 되던 참이었어요. ‘남성 영역에 도전한 여성들’이 기사화됐을 정도죠. 몇 년 되지 않아 ‘이제 도전에 남녀 구분은 없다’라는 기획 기사를 썼어요. 세상은 이미 변했는데, 사회 내부에서 정말 달라졌느냐 묻는다면 아직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만 해도 누가 편집국장이 됐는가를 보는 게 아니라 ‘여성 편집국장’이라는 프레임으로 봐요. 여기에 다시 괄호를 달아서 ‘한번 해봐라’라는 걸 첨가하죠.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뭐 이런 식으로요. ‘유리 천장’이란 게 단순히 진입하기 힘들다기보다는 진입할 수 없게 한다는 의미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여전히 집으로 출근하죠. 세상과 부딪혀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부당함을 얘기해도 ‘여자라 다르네’라는 해석이 꼭 붙어요. 쉽지 않죠. 40대인데 여성이기까지 하니 아마도 뭔가 보여줘야 한다, 뭔가 해내야 한다는 소명 의식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냥 좋다고 할 순 없지만, ‘잔다르크’라는 별칭을 이제는 즐깁니다.



세대와 시대를 잇기 위해 할 일


김종현 우리나라에 IMF가 없었다면 지금 40대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X세대가 근대화와 민주화 세대를 겪으면서 개인의 가치가 중요해졌습니다. 당시의 젊은 세대는 오히려 요즘의 젊은 세대보다 나 자체로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강력하게 발산했던 것 같아요. 통신사의 브랜드가 ‘나(Na)’였을 정도니까요. 미디어에서 ‘세상의 중심은 나다’ 하는 메시지를 받은 세대입니다. 그런데 IMF 이후 좌절과 고통을 경험하면서 40대의 삶과 방향이 변화했고, 그 이후 세대 역시 변화할 수밖에 없었죠.


전정환 세대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어찌 보면 우리 스스로와 위 세대를 재생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선배 격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현재 은퇴할 시점을 맞으면서 혼란에 빠져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원하는 걸 생각해보지 못한 채 평생 조직의 일원으로 살다가 조직을 떠나려는 순간 혼란이 찾아오는 거죠. 저는 60세 이후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인생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런 면에서 지금 20~30대 창업가와 교류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상당히 소중한 경험이죠.


김종현 제주더큰내일센터에서는 혁신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훈련 프로그램인 ‘탐나는 인재’를 운영하고 있고, 이들에게 ‘문제 해결’에 대해 가르칩니다. 가야할 목표가 있으면 현재 모순과 장벽이 있더라도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변화를 일으키려면 문제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해야 해요. 586 세대까지는 집단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갔던 때인데, 여러 세대 가운데 지금의 40대는 유일하게 자율성과 연대성이란 두 성향과 측면을 활용할 수 있었죠. 그런데 IMF 이후 트라우마를 겪었어요. 지금 40대가 가졌던 밝은 형태의 자율성과 연대성 회복을 사회 목표로 두고, 그를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40대의 주요 목표로 설정해야 합니다. 또 40대는 기성세대의 것을 온고지신, 즉 기성세대의 장점과 방향성을 받아들여 미래 세대가 새로운 가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활용하는 아이디어와 방법을 공유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성세대가 중요하게 여긴 가치에 대해 지금의 40대가 다시 해석할 수 있는 거죠. 다음 세대가 유지해야 할 가치에 대해 최소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전달자가 되어야죠. 40대가 할 일은 다음 세대가 활동할 ‘판’을 깔아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전정환


가치 전달자, 그리고 연결자


김종현 세대의 ‘가치 전달자’를 40대로 정의하는 데 공감합니다. 40대가 지역을 넘나드는 가치의 전달자가 된다면 더 큰 역할과 책임이 부여되겠죠.


김지완 최근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를 보면서 미래 조직 운영 방법은 기업이 아닌 스포츠 팀에서 찾아야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직이라는 게 선수, 즉 조직원들이 필드에서 뛰는 거잖아요. 연장자는 코치 역할이고요. 결국 조직원의 가치를 어떻게든 키우고 발전시켜야 팀이 승리할 수 있어요. 조직원에게 자기 계발 동기를 불어넣고, 개인의 역량과 장점을 알려주며,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훈련하는 게 코치의 일이에요. 시즌이 끝났다고 손을 놓는 게 아니라, 라운드 밖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일까지 ‘팀 빌딩’에 포함되고요.


김종현 팀 빌딩은 기본적으로 신뢰를 형성해야 하는 거라 힘든 일이죠. 만약 누군가를 코칭했는데 “왜 이러세요? 난 당신의 평가를 받아들일 수 없어요”라고 반발할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팀 빌딩 이전에 신뢰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역과 신뢰를 쌓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텃세가 있을 수 있고, 지역에서도 검증 작업을 할 테고요.


전정환 김종현 센터장님은 지난한 과정을 겪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죠. 저는 2015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를 시작할 때부터 제주시 원도심에 관심이 있었어요. 아라리오 같은 기업을 만났고, 대동호텔 같은 도민 기업을 찾아갔어요. 사람들은 원도심을 사랑하지만, 아쉽게도 소통이 부족하고 갈등이 있는 듯 보였어요. 지금은 의견이 훨씬 많이 좁혀진 것 같고요. 대동호텔 박은희 대표의 경우, 부모님이 운영하는 호텔 1층에서 전시 공간을 운영하며 원도심 활성화에 기여했죠. 아라리오 김창일 회장님이 카리스마 있게 사업을 진행했다면, 2세 경영자인 김지완 대표님은 다양한 주체와 파트너십으로 지역 생태계를 만들고 있어요. <J-Connect> 매거진에서 이러한 일과 관련된 콘텐츠를 발굴해 소개하는 것, 세대는 물론 원도심 지역을 조명하고 싶어 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김종현 청년 세대가 제가 생각지 못한 일을 성취해내는 것을 보면서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시돌목장 우유부단을 만들 때의 경험이죠. 당시 PM을 맡은 한 사원이 밀크티 담는 용기는 반드시 예쁜 유리병을 써야 한다는 거였어요. 유리병 개당 단가가 무려 1000원이었습니다. 요식업에서는 원재료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병에 비용을 들일 이유가 있냐며 반대했죠. 여기 굴하지 않은 그 사원은 전국을 수소문해 병당 600원으로 단가를 낮췄어요. 회사 입장에선 여전히 비쌌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해결책을 찾았다는 거예요. 병에 든 밀크티를 살 경우 고객에게 500원을 더 받자는 아이디어였습니다. 누가 500원을 더 내고 병을 사겠느냐, 잘되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시험 삼아 판매했는데, 소위 ‘대박’이었습니다. 정말 500원을 더 내고 병 우유를 사서는 목장에서 인증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더군요. 또 병에 든 밀크티는 미리 만들 수 있어 생산성이 좋았습니다. 매출, 효율성, 홍보 효과, 모든 면에서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전정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에 우리 세대가 할 일은 다음 세대에게 그들의 성장을 위해 의견은 제시하되, 그들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인정하고 지지하고 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얼마 전 해녀의 부엌에 다녀왔는데, 여기 얽힌 일화가 특히 저를 뭉클하게 했어요. 김하원 대표가 2017년 센터에 입주할 당시, 수산물 판매와 해녀 공연을 결합해 스타트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저를 포함해 센터 사람들은 어려울 거라고 했어요. 그런데 김하원 대표는 여러 시도 끝에 결국 해냈습니다. 현장에서 공연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죠. 콘텐츠를 직접 경험해보니 생각이 확 바뀔 만큼 뛰어났습니다. 마침 김 대표를 만났는데, 제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하더군요. 저에게 보여주고 싶었구나, 깨달았어요. 지양해야 할 행동은 내가 항상 옳다고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려 들고, 그들이 내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끝까지 방해하는 행태라 할 수 있겠죠. 결국 40대가 해야 할 역할은 바로 스타트업을 키우는 액셀러레이터나 엔젤 투자자와 비슷한 역할인 것 같습니다.


낀 세대 같지만 그 고리가 없다면 단절될 수밖에 없어요. 
40대가 현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충실히 해내는 것, 
실패를 통해 오류를 줄이고, 할 수 있다는 응원과 격려로 길을 알려주는 것으로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통해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고미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니 40대가 엄청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실감 납니다. 멀지 않은 과거와 가까운 미래의 연결 고리이기도 하고, 변화를 맞닥뜨리면 먼저 움직이고 적용할 수 있는 길을 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이번 대담에서 느낀 점은 그렇습니다. 각자 일하는 영역과 위치가 다르지만 결국 서로 이어진다는 점은 정말 흥미롭네요.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서로 다른 관점에서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것은 이번 기회가 아니었다면 알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인터뷰했던 미래학자 이광형 카이스트 석좌교수의 말이 생각납니다. “미래라는 것은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수히 많은 토론과 실험을 통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낀 세대 같지만 그 고리가 없다면 단절될 수밖에 없어요. 40대가 굳이 깃발을 들고 ‘나를 따르라’고 외칠 필요는 없지만, 현재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충실히 해내는 것, 실패를 통해 오류를 줄이고, 할 수 있다는 응원과 격려로 길을 알려주는 것으로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자리를 통해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 세대도 좋지만, 가능하면 40대를 다시 얘기할 수 있는 ‘다음’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귀중한 이야기, 감사합니다.






대담자

제민일보 편집국장 고미, 디앤디파트먼트 제주 대표 김지완, 제주더큰내일센터장 김종현, (주)한라산 대표이사 현재웅,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장 전정환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콘텐츠그룹 재주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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