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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Aug 04. 2021

지속가능한 농업 땅에서 해답을 찾다

원승현 그래도팜 대표


대도시의 브랜드 디자이너는 어쩌다 고향으로 돌아가 농부가 됐을까? 유기농법으로 키워 풍부한 맛과 향을 자랑하는 화제의 토마토 ‘기토’를 시작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그래도팜 원승현 대표. ‘사람이 일군 건강한 땅으로 이로운 작물을 만들고 그 작물로 다시 사람을 살린다’는 삼생(三生)의 철학을 품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시다가 고향으로 귀농하셨는데, 결심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농업에서 어떤 비전 같은 게 보였나요?
귀농하기 전 서울에서 브랜드 디자이너로 근무했습니다. 일을 꽤 하다 보니 아이템들이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새로운 걸 찾아다녔고 문득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생각났어요. 농사를 지으시는 아버지는 몸이 약한 어머니를 위해 유기농업을 시작하셨고 본인만의 농법을 만들어내셨어요. 아버지의 농법으로 땅이 살아났고 건강한 작물이 자라기 시작했죠.
당시 제가 농업에서 눈여겨본 게 토양의 지속가능성과 품종의 다양성이에요. 현재 기후 위기를 많이 언급하는데, 토양이 제 역할만 해줘도 기후 문제에 어느 정도 실마리가 잡힐 거라고 봐요. 지금 우리나라는 시멘트로 땅을 너무 많이 덮었고 농경지들은 비료를 과도하게 투입해서 토양이 탄소를 당길 힘이 없어요. 땅을 건강하게 바꾸기만 해도 기후 문제가 나아질 겁니다.
다음은 품종 다양성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마토가 몇 종류 안 된다고 알아요. 주먹만 한 붉은 토마토 혹은 방울토마토 정도로요. 향이나 맛도 다양하다고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외국에선 달라요. 마켓에 가보면 크기부터 색깔까지 다양해요. 품종별로 맛과 향도 다르고요. 그래서 다양한 품종을 개발하고 선보이면 선택지가 좁았던 소비자들에게 분명 큰 호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버지의 유기농법에 대표님의 비전을 더한 그래도팜의 작물은 어떻게 자라나요?
우리나라의 토양 비옥도는 전 세계에서도 하위에 속하기 때문에 토양 속 유기물이 많이 부족하고 척박해요. 농사에 적합한 토양이 전국의 3% 정도밖에 안 되다 보니 화학비료 의존도가 높습니다. 땅이 비옥한 나라들의 유기농산물을 보면 굉장히 향기로워요. 음식을 먹을 때 맛뿐 아니라 향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토양 속 구조가 작물의 향과 연관이 깊습니다. 그 향을 살리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순환 체계를 갖춘 땅을 만드는 게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참나무 껍질, 즉 수피를 활용하고 있어요. 발효 시킨 수피가 밭에 들어가면 그대로 영양분이 되고 굵은 유기물 입자가 되기 때문에 땅의 물성이 많이 바뀌거든요. 덕분에 지금 저희 농장은 비옥도가 가장 높다는 1등급의 토지와 비등해요. 30년 가까이 토양을 가꿔온 아버지가 늘 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 말이 정답인 것 같아요. “난 토마토를 키우는 게 아니야. 땅을 회복시키고 있는 거지. 그러면 토마토는 알아서 잘 커.”


땅에서 시작된 변화가 토마토에 그대로 깃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팜의 대표 토마토 ‘기토’를 맛보려면 주문하고 2주는 기다려야 한다고요.
소비자분들이 많이 찾아주시면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해지고, 먼저 예약하겠다는 분들이 늘어났어요. 그 수가 매해 증가하다 보니 현재는 40일가량 기다리시는 게 보편적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소비자의 기다림은 저희에게도 양날의 검입니다. 배송 중 자칫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기다린 시간도 함께 보상을 해드려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저희 농장의 토마토를 믿어주신다는 뜻이기도 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래도팜을 알게 된 후 유기농산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분들도 많으세요. 직접 만나서 설명을 드리고 대화를 나눈 고객분들은 대부분 처음 접하는 내용과 정보에 적지 않게 놀라움을 드러내기도 하시죠. 그리고 그중 다수가 저희의 철학을 주변에 전달하려 하고 실제로 전달이 되고 있는 걸 여러 차례 확인했습니다.


지난해 새로 선보인 ‘에어룸 토마토’도 독특한 외형 덕인지 반응이 뜨거워요. 에어룸 토마토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에어룸 토마토는 열매에서 씨앗을 받아 다음 해에 다시 심는 토마토라고 보시면 됩니다. 최근 농법에선 하이브리드 F1이라고 해서 1대 교잡종 종자를 구매해서 키우는 게 대부분이에요. 하이브리드F1 품종의 경우 생산성이 매우 뛰어나고 생육이 균일하다는 특징이 있어요. 하지만 열매에서 씨앗을 다시 받아 심는 경우엔 제대로 생육이 어려워서 해마다 씨앗을 구매해야 하죠. 또한 토착화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집에 매년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는 것과 같습니다. 집은 같지만 주인이 해마다 바뀌는 거라고 보시면 쉽습니다.
기토도 마찬가지로 하이브리드F1 품종입니다. 채종 후 다시 심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매년 씨앗을 구매해야 하고 해를 계속 거듭하더라도 고유의 특징이 더 강해지진 못합니다. 그래도 잘 가꾸어진 토양에선 본연의 맛과 향을 풍부하게 머금고 자라기 때문에 맛이 좋습니다. 변함없이 그래도팜의 시그니처 상품이자 캐시카우 역할을 해주고 있고요. 에어룸 토마토라는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기토가 원동력을 제공한 셈이죠.



1, 2 독특한 외형의 ‘에어룸 토마토’
3 그래도팜 토마토 농장 전경  4 유기농 토마토를 위해 직접 만드는 퇴비



농산물 생산, 판매 외에도 농업을 6차 산업으로 성장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계세요. 관련해서 여러 활동을 진행할 예정이시라고요.
제가 만드는 모든 서비스와 제품은 토양의 지속가능성과 품종의 다양성을 확산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바로 맛보는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 행사를 열기도 했고 저희 농장 한편에 공간을 마련해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에요. 그중 메인은 토마토의 다양한 품종을 경험할 수 있는 피자 체험이에요. 농장의 토마토 중 본인이 원하는 품종으로 골라서 피자를 만드는 거죠. 1년짜리 장기프로젝트인 육묘 가드닝도 계획 중이에요. 직접 토마토를 심고 열매를 길러 씨앗까지 채종해보는 겁니다. 단순한 자연의 섭리이지만 경험해 본 사람이 많지 않아 색다른 체험이 될 것 같아요. 농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거로 기대하고요. 토양갤러리와 도서관을 구성해 토양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전하려 합니다.


5 그래도팜이 공동주최한 팜 투 테이블 행사 6 농장에서 운영하는 토양갤러리


'그래도팜’과 ‘기토’라고 이름을 짓는 일처럼, 농업에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동안 농업계에서는 물건이 잘 팔리는데도 브랜드까지 신경 쓴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농산물에도 브랜드가 중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항상 있었어요. 농산물의 경우 본질(맛)과 브랜딩(멋)이 교집합을 이룬 사례가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흔치 않아서 그랬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농산물도 전체 시장을 견인할 역할을 해줄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이 시장 전체의 위상이 달라지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네이밍에 신경을 썼죠. 브랜딩의 시작이 네이밍이니까요. 그리고 브랜드 이름을 ‘그래도팜’이라고 지었어요. 부모님이 30여 년간 유기농법을 해오셨는데, 지금이야 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그 가치를 제대로 알아봐 주지 않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럼에도 우리는 땅을 위해서, 건강한 농작물을 위해서 유기농법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담았어요. 그리고 ‘기토’는 ‘맛이 기가 막히다’는 고객 후기에서 따왔습니다.


10년 뒤 그래도팜은 어떤 모습일까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토양에 대한 이해와 학습, 투자와 품종 다양성을 지켜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땅이 망가지면 농업을 지속할 수 없고, 품종이 사라지면 땅이 있어도 재배할 수 없다는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환경을 살리는 농업을 이어갈 겁니다.
또, 농업에서 청년이 해야 할 역할이 있는데, 청년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들에 도전할 수 있어요. 80대 농부에게 지금부터 10년 이상 땅을 가꾸어 보라고 하는 건 어렵지만 30대 농부에겐 가능해요. 땅에 대해 투자를 하는 건 오랜 시간이 동반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청년농부들이 더욱 관심을 갖고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팜을 보고 따라 하면 좋겠어요. 한국은 농지가 부족한 나라여서 생산성에 초점을 맞춘 농업엔 한계가 크죠. 단순히 많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 생산하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찾아서 올 정도로 좋은 퀄리티의 농산물을 다양하게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해요. 그래도팜이 그 변화를 이끌기를 바랍니다.






기획 및 발행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제작 세일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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