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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커넥트 Aug 05. 2021

친환경 농업 확장은 연대로 청년농 성장은 인식 개선으로

문근식 제주친환경농업협회 회장


오랫동안 한 길을 걸은 사람에게는 고유한 철학이 있다. 20여 년 전 농사를 시작한 베테랑이자 제주친환경농업협회를 이끄는 문근식 회장은 친환경 농업을 행하는 사람에겐 환경을 위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나아가는 그에게 ‘친환경’이란 어떤 의미일까.





레몬농장을 운영하고 계세요. 국내산 레몬이라니,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작물인 레몬을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부모님 대에서부터 제주에서 농사를 지었어요. 저도 육지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4학년 때 아버지가 갑자기 아프셔서 제주로 돌아와 농사를 결심했습니다. 제주에서는 너도나도 감귤을 키우지만 제가 있는 삼양 지역은 일조량과 토양, 기온 등이 감귤 농사에 그리 적절하지 않아서 당도가 잘 안 올라요. 물론 물리적으로 타이벡1 재배라든가 다른 방법을 하면 나아질 순 있겠지만 서귀포 감귤과의 경쟁이 만만치 않아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그게 바로 당도와 상관없는 레몬이었어요. 레몬은 신맛만 잘 나면 되거든요.
지금 우리 밭을 보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았을 당시의 나무는 단 한 그루도 남아있지 않아요. 농지는 그대로인데 콘텐츠가 바뀐 거죠. 토양과 환경, 아이디어 등 여러 조건을 잘 고려해 농작물을 선택하는 게 중요합니다.


레몬을 친환경으로 키우고 계신데 어떻게 친환경 농법을 시작하셨나요? 배경을 들려주세요.
레몬 농사를 시작하고 첫해에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는 저도 비료와 농약을 쓰며 농사를 지었는데, 농산물 값이 폭락해서 시장이 많이 안 좋았어요. 농약 값이 안 나오니 그거라도 줄여보자 하고 친환경 농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생태적인 삶을 꾸리느니 하는 거창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 친환경 농업 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철학이 강했습니다. 한 해, 두 해 같이하다 보니 저도 그 신념에 녹아들었고 제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지금은 제주친환경농업협회 회장 자리까지 맡고 있네요. 지금의 저는 친환경 농업 하는 사람들은 자부심과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농법과 친환경 농법을 모두 적용해 보신 거네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일반 농업은 관행 농업이라고 불려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농법입니다. 반면에 친환경 농업은 그런 합성화학물질을 쓰지 않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거죠. 단순하게는 농약이나 합성화학물질의 사용 여부가 차이이긴 한데, 친환경 농업이 무조건 좋고,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든 작물을 다 친환경으로 재배할 수는 없습니다. 소비자들은 모양이 좋은 농산물을 좋아하는데, 친환경 농업은 병해충을 막는 데 소극적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화학농약이 필요하기도 해요. 친환경 농약도 있긴 하지만 자연계 추출물이다 보니 아무래도 약효가 떨어지고 가격이 비싸죠. 그리고 관행 농업으로 농약을 쓰더라도 잔류 농약 허용 기준치가 정해져 있어서 그 기준 이하면 사람이 먹어도 괜찮고요. 제가 제주친환경농업협회 회장이지만 오랫동안 농업에 종사해온 사람으로서 관행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마음도 십분 이해해요. 단위 면적당 수확량은 줄어들고, 노동력과 경비는 곱절 이상으로 투입되기에 친환경 농업으로의 전환이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제주에서 친환경 농가의 비율이 겨우 3.7%에 지나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격려의 시선과 박수를 보내준다면 제주의 청정 자연을 지키는 친환경 농업인들이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까요?


말씀하신 대로 제주친환경농업협회 회장으로 계세요. 최근엔 ‘친환경 농축산물 소비촉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는 등 친환경 작물의 생산뿐 아니라 유통과 소비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계시잖아요.
우선 ‘친환경 농축산물 소비촉진을 위한 업무협약’은 한국세무사회, 제주도청, 제주친환경농업협회가 모여 제주산 친환경 농산물을 위한 지원 방안을 고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세무사회가 먼저 연락을 취했다는 거예요. 고무적인 거죠.
세무사회가 회원 중심으로 ‘맘모스’라는 앱을 운영하는데, 거기서 제주 농산물을 판매하고 싶다고 했어요. 제주친환경농업협회가 여기에 어떤 농산물을 어떻게 제공하면 좋을지 아이디어를 더했죠. 일단 ‘농산물 꾸러미’ 같은 걸 만들어 보자는 데 의견이 모여서 이 부분을 정리해 제안하려고 합니다. 농부들이 정성으로 키운 농산물을 효과적으로 판매하려면 이렇게 새로운 유통 경로를 만들고, 아이템을 구상하는 등 협약과 연대가 참 중요해요. 특히 이번의 경우는 조직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에 협회의 역할이 중요했죠. 앞으로도 협회는 친환경 농법으로 키운 농산물이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고 소비자들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경로나 방법들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할 거예요. 생산부터 유통, 소비에 이르는 과정이 원활해야 기존에 친환경 농업을 하는 농가들은 포기하지 않고, 새롭게 관심을 가지는 농가들도 꾸준히 생겨날 수 있을 테니까요.


제주산 친환경농축산물 소비촉진을 위한 상생 업무협약식 (사진제공 : 문근식)


그렇다면 더 넓은 유통 판로 개척을 위해서는 어떤 부분이 필요할까요?
우리는 과잉생산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뭐든 많이 만들어 내고 그럴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 있죠. 이제 생산이 주가 아닌 소비가 주인 시대예요.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들과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농업의 3차 산업인 서비스와 융합하는 비즈니스를 만들어 내야 해요. 예를 들면, 양파를 가지고 장아찌 만들기 체험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한 사람당 양파 1개 먹을 걸, 2개는 먹을 수 있겠죠. 이렇게만 생각해도 단순계산하면 양파 소비량이 2배는 늘어납니다. 제가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는 것도 그 일환이에요. 제 이야기와 소신을 전하고 소비자에게 저를 소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거죠. 농사를 하는 이유도 결국엔 먹고 사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고객과의 통로를 만드는 거예요. 지속가능한 농업은 그렇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외롭지 않게 서로 토닥여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딸을 위해 직접 그린 농장 외관의 벽화

말씀하신 것처럼 농업에 가공과 서비스를 더한 6차 산업으로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아무래도 청년농부들로부터 반짝이는 시도가 많이 나타나고 있어요. 재능 있는 청년들이 농업에 더 관심을 갖고 유입되면 좋을 텐데 어떤 것들이 수반돼야 할까요?
제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저보고 농사를 짓지 말라 그러셨어요. 너무 힘드니까 그랬죠.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농업의 희망은 후계자라고 생각해요. 저는 딸이 셋인데, 딸들에게 농장을 물려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이곳에 관심을 가질까 늘 고민해요. 농장 외관의 벽화도 그래서 그린 거예요. 딸들이 좋아하려면 우선 예뻐야겠다고 생각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그림도 넣고 제 얼굴도 넣었죠. 또, ‘내딸에게’라는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아빠의 마음으로 딸들에게 먹이고 싶은 안전한 먹거리만을 만들고 있습니다.
농업에 대한 인식 개선도 중요해요. 여기엔 명칭 변화도 한몫하는데, 1990년대에 예비 농업인에 대한 이름이 ‘농민후계자’에서 ‘후계농업경영인’으로 바뀌었습니다. 글자만 바뀐 거지만 ‘경영’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면서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것도 바뀌었어요. 작지만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농업이 몸만 쓰는 일이 아니라 하나의 사업체를 꾸리는 ‘경영’이라는 것을 알려야 해요.


제주친환경농업협회 창립 3년이 지났습니다. 제주 농업환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개혁이 아닌 개선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개혁이 되면 눈에 확 띄지만, 개선은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분명히 무언가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건 개선 정도입니다. 한 번에 바뀌어 우왕좌왕하지 않게, 서서히 방향성을 설정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친환경 농가를 최대한 지원하려고 노력합니다. 농가가 자발적으로 목소리를 내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어요.


협회에서 현재 가장 중점적으로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요?
올해까지인 제 임기가 6개월 정도 남았기 때문에 내년도 사업이 잘 진행되게끔 배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협회에서는 연도별 사업계획을 세우고 다음 해 사업을 준비하는데, 현재는 제주도의회와 제주도청에 사업 제안서를 선보이며 협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차기 회장단이 선출됐을 때 협회의 사업을 부드럽게 수용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며 잘 인수인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농법으로 정성스레 키우는 레몬 농장




1. 토양을 다공질 필름으로 멀칭하여 감귤을 생산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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