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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장사의 밑천은 사람인데, 저는 사람을 한번도 잃은 적이 없으니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습니다.”
‘김만덕’ 하면 나눔의 삶 실천으로 ‘의녀’란 수식어가 더 익숙하지만 앞서 그의 이름이 알려진 배경에는 ‘거상(巨商)’이란 칭호가 있다. 그것도 앞에 ‘조선’, ‘제주도’, ‘여성’이라는 불리하다 못해 박한 상황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자리다. 철저한 중앙집권체제에 남존여비의 유교 사상이 버티고 있는 것도 모자라 ‘멀리 격리 수용’하는 곳으로 잔혹하게 활용되던 바다 건너 섬에서 여성이 유통 분야 CEO로 당당히 자리를 잡고 사회적 역할까지 해냈다. 드라마 대사를 인용하기는 했지만 ‘사람’의 역할을 인지하고 활용했던 점을 고려하면, 제주라서의 어감이 한껏 달라진다.
글. 크립톤엑스 고미 제주사업본부장
지역의 한계가 로컬 브랜딩 요소로
섬은 언뜻 한계처럼 보이지만 사실 경계와 도전이란 단어와 더 어울린다. 사면이 바다였기 때문에 더 큰 무대, 기회에 대한 갈증을 끊임없이 키웠다.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는 것을 넘어 창의적으로 끌어내 그 이상을 만들어 내는 힘을 만들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힘든 ‘장인’의 영역을 골라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장(名匠)이라고 부르기에는 한 번에 눈길을 사로잡을 화려함이나 특별함은 없는 대신 삶이라 부르는 배경에서 쌓아 올린 경험과 지혜의 결과물은 살게 하는 힘, 생존력이라는 에너지로 작동한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제주옹기를 보자. 제주 흙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척박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안에서는 옹기를 제작하기에 좋은 ‘제주토’가 있다. 물과 완만한 경사가 있는 위치에 가마(요)를 만들고 3박 4일을 서서히 불을 절정의 순간까지 끌어올리고 서서히 식히는 과정을 통해 그릇으로의 용도를 만들었다. 제주토는 철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소성 과정을 거치면 특유의 윤택한 갈색을 띤다. 유약을 바르지 않는 대신 재를 입히는 것으로 자연의 무늬와 광택을 끌어낸다. 특성이라고 말하는 이런 것들은 지역이라는 한계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것이 지금은 다양성 또는 로컬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설명된다. 흙을 고르고, 그릇을 성형하고, 가마를 짓고, 불을 때는 과정마다 시행착오와 ‘어깨 너머’를 거쳐 최선의 정보와 최고의 기술을 갖춘 ‘어른(도공장-그릇, 질대장-흙, 굴대장-가마, 불대장-불때기)’이 나온다. 분업과 상호유기적 조합에 쓸모를 더하는 순간 상품이 나온다.
강진에서 들어온 옹기배가 포구를 따라 섬을 한 바퀴 돌며 나름 질 좋고 쓸데 많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좋은 상품들을 팔았지만 투박하고 손도 많이 가고 그렇다고 가격도 싸지 않은 제주옹기를 더 많이 찾았던 것은 쓸모에 있다. 서능생이, 허벅대바지, 시불통개(웃동), 허벅등생이, 애기대바지능생이, 애기등덜기, 펭, 버럭지, 옴팍지, 촐래단지, 방춘이, 허벅등덜기, 등덜펭, 대황 등 지역과 쓰임을 연결해 시장과 역할을 구축한다. 플라스틱 제품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전통과 지역자산, 문화예술이란 이름으로 이전과는 다른 영역을 만들어 숨을 쉰다.
지역과 사람이 만나 로컬을 만들다
겨우 옹기 하나의 예다. 대충 훑어봐도 요즘 로컬크리에이터라고 말하는 것들의 호흡과 맞물린다. 단순히 지역 자원을 활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 (기술·전문성)을 키우고 쓰임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시장을 형성한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제주라서’를 채우기에는 어딘지 모자란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기업가 정신’의 흐름을 거슬러 가다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 이미 알고 있던 사례가 나온다. 거상 김만덕이다.
김만덕의 출생·성장 과정 같은 것은 일단 떼어내고, 객주를 연 일부터 당시에는 흔치 않은 선택이었다. 전통사회에 여성이 접근하기 쉬운 영역 대신 말 그대로 덜컥 창업이란 걸 했다. 여기까지는 ‘할 수도 있지’ 하고 볼 수도 있다. 다시 보자. 김만덕이 객주를 연 곳은 제주 건입포 일대다. 육지에서 온 배가 닿던 요지로 바다를 건너온 각종 거래되던 곳이었다. 이미 자금력에 정치력까지 가진 상인 집단이 선점을 한 곳이기도 했다. 이미 상권이 형성된 지역이니 객주를 여는 것만으로 돈을 벌 것이라고 생각하면 하수다. 객주란 ‘중간 거래를 하는 일종의 도매상’이다. 무엇을 파느냐, 누구에게 파느냐, 얼마에 파느냐를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실패 확률 100%다.
처음 김만덕은 육지에서 오는 물건을 산 후에 지역에 파는 일을 시도한다. 문제는 기존 토착 상인들의 견제가 만만치 않았다. 관아에 특별세를 내야만 금난전권을 행사할 수 있었던 상황에 휘둘리며 고비를 맞는다. 그렇다고 포기했다면 굳이 그의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다. 김만덕은 기녀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녀와 양반층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옷감, 장신구, 화장품 등을 공급하며 돈을 번다. 그리고 다음을 시도한다. 직접 육지로 나가 가격 차이가 큰 물건을 구해 지역에 파는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한다. 다시 김만덕은 직접 배를 사 운영하면서 유통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사업 규모를 키운다. 이 과정에서 진상용을 제외한 전복과 말총 등 지역 특산품을 필요 지역에 공급하는 것으로 이윤을 남기기도 한다.
지역 특성을 파악해 창업 아이템을 선정하고, 시장 분석, 피봇팅, 스케일업까지 다 했다. 시대 변화를 읽는 탁월한 안목과 강인한 추진력으로 유통업 영역을 개척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조선시대를 전제로 하면 여성 그리고 상인이라는 신분 문제가 걸린다. 역사적으로는 병자호란, 임진왜란 등 큰 변고 후 육상·해상교통의 발달과 객주의 번성, 대동법 시행에 따른 공인 역할 부상, 중개업 허가제 도입 같은 요인이 있었지만 여기에 제주 사회의 특성이 없었다면 김만덕도 없었다.
기업가 정신과 로컬크리에이터
김만덕이 당시 한양에서 양민으로 신분을 회복하려고 했다면 엄청난 사회적 저항을 받았겠지만 제주목은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그 요청을 수용했다. 일찍 여성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던 지역 상황이 없었다면 김만덕이 객주를 열겠다는 선택을 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척박한 토양과 적은 토지로 생산성이 지극히 낮았고 험한 바다에 의지해 생계를 꾸리던 섬 사정에 신분이 어떻고, 태생이 어떻고, 성별이 어떻고 하는 구분은 비효율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래 축적된 경험의 결과라는 점이 제주 로컬크리에이터 영역의 뿌리라는 점을 그래서 강조하고 싶다.
과감한 도전과 성취는 오늘날 강조되고 있는 기업가 정신의 하나다. 조선 후기 사회 경제적 변화 속에서 운송 체계에 기초한 유통망을 읽어낸 통찰력,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투자 가치를 찾고 일단 새로운 가치를 찾았다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투자해서 기다리는 것은 요즘도 통한다. 신용 본위의 원칙을 지키면서 절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사업의 장기적 생존 및 발전 가능성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은 만국 공통의 기본이다. 생필품 위주였던 제주 시장에 특산품·기호품이라는 미개척 분야를 발굴하는 것으로 기존 상권의 저항을 피하고 판로를 확보하는 방식이라든가 포구의 상품 유통을 독점적으로 담당하는 포구주인권(浦口主人權)을 획득하는 과정 등 18세기 조선시대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가능하게 한 배경이 제주였음을 살펴야 한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쉽지 않게 컸던 인생 경험을 쓴맛으로 버리기보다 발전을 위해 활용한 지혜를 허투루 볼 수 없음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로컬 자원 ‘제주에서의 삶’
옛날 일을 긍정적인 부분만 강조해 본 것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궤적을 살펴 현대적 관점으로 평가하는 작업은 지역 로컬크리에이터의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생태계 자양분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 제주라서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라, 제주라서 할 수 있고 해 볼 수 있고 할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은 지금 잘해 보자고 만든 슬로건이 아니라 이미 지역에 뿌리내린 민속 지식이자 지혜다.
로컬크리에이터로 제주의 강점은 ‘삶’이라는 데 있다. 다른 곳과 구분되는 지역성이나 특산 자원만으로는 경쟁력을 찾을 수 없지만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 있고,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를 키우고 공유하는 것이 경쟁력이 된다는 점이다. ‘지역다운’은 서울 같은 대도시와 비교하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그래서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투박하고 소박한 제주옹기가 자가 호흡을 하는 과학적 효능과 장인 정신을 머금은 콘텐츠가 되고, 어렵고 힘든 이웃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을 수 있었던 대범함의 뒤에는 고단한 경험과 자신이 갈 길을 직접 냈던 도전정신이 있었다. 이것이 ‘제주다움’의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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