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메타기획컨설팅은 지난 2017년 9월부터 12월까지 약 3개월 동안 '제주 창업생태계 지속성장 전략 마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전략의 실효성 여부는 현재를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표면적인 리서치에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 밀착한 이슈들을 파악하기 위해 무엇보다 과정의 설계가 중요했다.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업자를 중심으로 27명을 만나 심층인터뷰를 진행했고, 도내외 창업자와 예비창업자, 관련 기관 담당자, 전문가, 기자 등 이해관계자 190명을 대상으로 폭넓은 설문조사를 실행했다. 그 결과 제주 창업생태계의 현재와 '현장'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센터와 함께 제주 창업생태계 지속성장을 위한 전략과 이에 기여할 수 있는 센터의 역할에 대해 모색했다.
Why 제주? : 제주 창업생태계의 현재를 이야기하다
# ‘제주 창업’은 매력적이다
많은 이들이 제주는 ‘섬’이라는 공간의 특성에 기인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제주도 안에 없는 원료를 가지고 들어오거나 제품을 육지로 보내려면 우선은 유통비부터 걱정이다. 서울에서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눈이라도 오면 비행기가 뜨기는 할지 노심초사이기 일쑤다. 그런데 왜, 제주에서의 창업은 매력적인 걸까?
- 제주 창업의 매력도를 물었다. 응답자의 78.4%가 제주 창업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매력적이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은 5.8%에 불과했다.
설문조사 응답자의 약 78%가 제주 창업이 매력적이라고 답했다. 통계를 보더라도 최근 5년간 제주 창업기업 수는 216%(2.1배)로 증가했다(2016년 기준,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신설법인 동향).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업
가들이 마땅한 코워킹 스페이스 하나 찾기 어려운 제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Why 제주?”는 우리의 모든 인터뷰에서 핵심 질문으로 자리했다.
“제가 꿈꾸는 걸 잊지 않게 해줘요. 서울에서는 고개를 들어야 하늘이 보이는데, 제주도에서는 앞을 보면 항상 눈앞에 하늘이 있어요.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요. 멀리 보게 해주는 거죠.”
창업의 장소로서 제주가 매력적인 첫 번째 이유로 꼽힌 대답은 ‘하늘’이었다. 어떤 사업가에게는 굉장히 의외의 결과일 수 있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터뷰에서 제주의 탁 트인 자연환경이 제주 창업에서 가장 큰 매력요소라는 의견은 절대적이었다. 높은 건물과 아파트에 가려져 하늘 한번 올려다보기 어려운 여타의 도시와 달리 제주는 심지어 어디에서나 눈앞에 하늘이 보인다는 것이다.
“회사 근거지는 제주도로 계속 가져가고 싶어요. 그만큼 제주도는 근무 환경으로서 너무 좋아요. 출퇴근 전쟁이 없죠. 여유롭게 밥 먹고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칼퇴근해요. 본인 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에요.”
창업 7년차, 제주 창업 2년차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인터뷰이는 제주 창업의 매력을 ‘적정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 때문일까? 현대사회에 부는 변화의 바람 탓일까?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는 라이프스타일, 워라밸을 위해 제주도를 제2의 삶의 터전으로 선택해 오는 이주민도 많아지는 추세라고 귀띔한다. 이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의 매력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음식점을 컨택한다고 했을 때 서울은 31만 개가 넘는데 제주는 3천 개 조금 넘어요. 테스트하기 좋은 환경이고 중국인 관광객도 많이 오기 때문에 사업적으로 접근하기 쉬워요.”
- 제주 창업의 매력요소에 대해 물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제주의 자원,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킬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사업의 테스트배드로서의 가능성 등이 높은 응답을 받았다.
# 하지만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들
- 국내 창업생태계 현황 내에서 제주 창업생태계가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활성화되어 있다’와 ‘보통이다’, ‘활성화되지 않았다’의 응답 비중이 30% 전후로 유사하게 나타났다. 제주 창업생태계의 활성화에 대한 평가기준이 응답자에 따라 다른 데에서 오는 결과로 해석된다.
창업지로서의 제주의 매력은 산업적 관련 인프라 또는 경제적 차원의 접근이기 보다는 자연과 삶의 환경에서 오는 ‘제주’이기 때문에 가능한 고유의 매력이다. 매력적이지만 제주 창업생태계는 활동하기에 충분한 기반이 조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서 각자의 입장과 상황이 반영된 평가기준에 따라 다른 응답이 나타났다. 아직은 구석구석 충분히 활성화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인식이다. 과제가 남아 있다.
- 제주 창업생태계 활성화를 어렵게 하는 요인에 대해 물었다. ‘인력 채용의 어려움’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나타났고, 다음으로는 ‘높은 물가 등 경제적 여건’, ‘제주 창업생태계에 대한 무관심 및 보수적 인식’, ‘투자유치 기회 확보의 어려움’ 등의 순으로 응답되었다.
“제주에서 인력을 구하는 일이 매우 어려워요. 저희도 개발자는 육지에서 구하고 있어요. 임금 여건이 낮은 편이라 똑똑하고 열심히 하고 잘하는 애들은 서울로 가요.”
창업 활동을 해나가는 일터로서의 제주에 대해 물었을 때 한 목소리로 말한 어려움 중 하나는 함께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디자이너, 개발자 등 전문 인력을 구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고용이 필수적인데 비싼 물가와 낮은 임금, 거주지 문제 등 삶의 기본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아 꼭 필요한 전문 인력을 제주로 유입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양질의 인력들이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스타트업, 혁신창업 분야에서 활약할 도내 인재들을 양성해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덧붙었다.
- 제주 창업생태계에서 인적자원과 관련하여 요청되는 방안들에 대해 각각의 중요도를 물었다. ‘초기 스타트업의 고용 안정화를 위한 지원’과 ‘도내외 인력과 스타트업 간 매칭 확대’, ‘도외 유입 인력을 위한 정주여건 지원’ 등의 순으로 중요하게 응답되었다.
인력 유입의 측면과 관련하여 센터에서 꾸준히 진행해 온 ‘체류지원 프로그램(제주다움)’은 많은 이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며 언급되었다. 제주의 ‘하늘’과 ‘푸른밤’ 로망에 이끌려 왔다가 현실로서의 제주에 부딪혀 돌아가는 경우도 많았다. 체류지원 프로그램은 우선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무와 거주 공간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제주에서의 일과 삶을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고, 더 앞단에 제주에 대한 다양한 이해를 넓히는 말랑한 프로그램으로도 확장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사실 제주에 오고 싶어도 혼자 막막하니까 못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기 한 달짜리 체류지원 프로그램 있잖아요? 그거 잘 활용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한두 달 살아보는 거죠. 그 사이 안에서 코워킹도 생기고요.”
인력 채용의 어려움과 일터이자 삶터인 현실로서의 경제적 어려움 등이 인터뷰의 시작이었다면, 이야기가 무르익을수록 자본과 투자 유치에 대한 이야기가 대두되었다. 초기 자금난 해결과 성장을 위한 투자 유치는 스타트업에게 있어 주요한 이슈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제주에서 성공한 스타트업이 되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있어요. 제주에 오시는 투자자분들은 ‘제주에 투자해서 뭐가 나오겠어’라는 인식이 있으신 것 같아서요. 저희가 잘해야죠. 성공사례들이 잘 나오고 VC들도 제주도에 관심을 가져야 제주 차원에서도 더 주도적으로 움직이게 될 거고, 뭔가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해요.”
스타트업은 현재 약 70% 이상이 서울에, 약 20% 이상이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다. 2014년 이후 전국에 19개의 혁신센터가 설립 운영되고 있지만 스타트업뿐 아니라 관련 인프라 또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투자 유치 관련 활동을 하다보면 VC를 비롯한 투자 주체들이 활성화 정도에 대한 상대적 평가와 인식으로 지역 기반 스타트업의 경쟁력에 대한 기대가 낮다는 것을 체감한다고 한다. 따라서 단지 투자유치 기회를 더 많이 확보하는 것에 앞서 제주 창업생태계에 대한 인식과 기대가 높아질 수 있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주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들이 많이 등장해 제주 창업생태계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제주 창업생태계 주체들 간의 협력으로 지역 차원의 기반 조성을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지역 차원에서 스타트업을 모으고 지원하는 노력들이 이루어진다면 지역 성장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굉장히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지역 내에 그런 경제적인 흐름이 조성되는 게 우선 되어야 할 것 같아요.”
- 제주 창업생태계에서 투자환경과 관련한 활성화 방안들에 대해 각각의 중요도를 물었다. ‘지자체의 지역펀드 조성 노력’과 ‘제주 스타트업 가치에 대한 인식 제고’, ‘지역의 엔젤투자 문화 조성 및 엔젤투자자 육성’, ‘기술보증기금 및 신용보증기금 활성화’ 등의 순으로 중요하게 응답되었다.
인재가 부족하고 창업 여건이 어려운 제주였다. 그런데 최근 자발적 이주민, 유턴하는 인재 등 다양한 사람들과 활력이 제주로 모이고 있다. 제주에서의 어릴 적 추억을 꺼낸 한 인터뷰이는 고향 제주와 세계를 예술로 연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많은 이들이 제주 창업생태계의 주체로서 제주 창업생태계에 남아 있는 과제들을 이야기하면서 제주에 대한 애정도 함께 꺼내놓았다. 제주 창업생태계가 지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는 곳, 일하는 곳으로서의 제주도의 매력을 지속적으로 가꾸고 이를 위해 도민과 이주민 간, 도내 기관 간, 도내외 간의 활발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지역혁신의 가치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움직임에 기여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는다.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 이주해 온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더 애착을 가지고 이 섬에서 더 오래 살고 싶어 하게 만들까. 이런 고민이 필요해요. 그런 사람들이 재미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이 연결되어야 하고, 그 사람들이 꿈꿔야 하고, 그게 더 중요한 거예요”
- 제주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제주에서 창업·사업을 하고 있는 이유를 물었다. 제주 지역문제 해결과 가치에 기여하기 위함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사업성과 라이프스타일을 이유로 응답한 비중 또한 높았다.
Why not 제주? : 제주 창업생태계의 미래를 연결하다
# 제주 창업, 무엇이든 가능한
“제주에서 창업, 연결하면 어떻게든 다 할 수 있어요.”
인터뷰의 시작은 “Why 제주?”였지만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따라 우리의 물음은 “Why 제주?” 에서 “Why not 제주?”로 옮겨갔다.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시각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주이기 때문에 지닌 매력을 넘어 제주 창업생태계의 현재에 남아 있는 과제들을 발견하고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그 과제들이 하나둘 해결되고 실현되어 가기를 기대하며 무엇이든 가능한, 전 세계 창업가라면 누구나 발 딛고 싶어 하는 제주 창업생태계의 미래를 그려본다. 제주에서 왜 안 되겠어?
# 제주 창업생태계의 창의적 연결자,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는 2015년 개소 이후 ‘새로운 연결을 통한 창조의 섬, 제주’를 비전으로 공유하고 제주의 성장과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센터는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던 스타트업 생태계를 제주에 이식했어요. 큰 역할을 했죠.”
“그냥 센터에 가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그게 큰 도움이 돼요. 액셀러레이터, 투자자를 만난다든지, 스타트업 하는 사람, 프리랜서, 노마드 등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만나면서 새로운 방식들을 직접 배우는 거죠. 이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센터에서 동남아나 베트남, 태국이라든지 해외에 있는 창업 관련 기관들하고도 협업 기회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희도 센터에서 해외 현지 분을 연결해주셔서 덕분에 해외진출에 도움을 받았고요.”
- 제주 창업생태계 내에서 센터에 바라는 역할에 대해 물었다. ‘생태계 내 다양한 주체들을 엮어내는 연결자’와 ‘창업자 및 지역 혁신주체들과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 역할에 대한 기대가 높이 나타났다.
센터는 교류, 협력, 연결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상생 모델을 구축해왔고, 이를 통해 제주 혁신창업 생태계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대내외의 긍정적 평가의 목소리가 높다.
설문조사 결과 또한 센터에 대해 제주 창업생태계의 허브 플랫폼으로서의 연결자이자 동반자 역할을 지속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센터가 추구해 온 ‘연결’의 방향과 전략은 유효했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임을 방증한다.
*본 게시글은 2018년 J-CONNECT 봄호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게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