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 당신에게 열정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나요?
23살, 첫 직장에 취업했다. 두바이, 미주 지역과 거래하는 자수 원단 무역회사. 바이어 영업과 국내 영업 및 관련 무역서류 업무로 내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매달 찾아오는 다양한 해외 바이어들, 원단과 액세서리를 납품하는 업체들과의 교류와 더불어 포워딩, 관세사, 선사까지. 내 첫 직장생활은 인간관계의 연속이었다.
철저하게 비즈니스적인 관계와, 친구로서의 관계를 나누는 현재 내 성향은 사회생활 시절 겪은 상황들에서 발현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업적인 득이 되는 사람과, 인간적인 편안함을 주는 사람을 언제부턴가 나누게 되었고. 내 진실됨을 보여주는 범위와 말투 행동 등에 차별성을 두며 사람을 대하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돈을 벌기 위한 일'과 '삶'의 경계를 명백하게 나눈 것과 같았다.
3년 차에 접어들 때, 나는 홍대로 거취를 옮겼다. 9 to 6가 보장된 회사는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들어 주었다. 동네에서 하루 종일 농구하고 맥주로 하루를 마무리하던 친구들과도 멀어졌고, 주변 인간관계는 철저하게 회사 중심적으로 돌아갔다. 환기가 필요했고, 삶이 필요했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싫었다. 홍대에서의 저녁, 삶을 찾기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홀 서빙 아르바이트, 별 것 아닌 일 일수도 있지만 내가 사랑했던 일 중 하나.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디딘 젊은 친구들이 모여 바쁘면 바쁜 대로, 바쁘지 않으면 바쁘지 않은 날대로 함께 한 가게에서 소속감을 느끼면서 출근과 퇴근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점심도 주방에서 함께 만들어 먹고, 브레이크 타임에는 커피 한 잔을 테이크 아웃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매장에서 낮잠도 자고. "함께 한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은 내게 홀, 그리고 장사였다.
모든 장사의 공간은 행복해야 한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는 '오늘 점심은 뭘 먹지?" 하는 생각으로 버틸 수도 있고, 퇴근 후 시원하게 마시는 맥주 한잔에 날릴 수도 있다. 장사하는 매장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공간이며, 우리 삶 속에서 마음속 짐을 내려놓고 온전하게 즐길 수 있는 맛있는 밥과 커피 혹은 술을 파는 공간이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 속에서, 재택근무 대신에 카페에서 온전히 해방감을 느끼는 모습처럼.
내가 다니던 직장은 행복하지 않았나보다. 쌓이는 연차와 오르는 연봉보다 뜨겁게 일해봤던 홀 서빙 아르바이트가 그리워진 걸 보면 말이다.
상수역 근처, 홍대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5층의 한 칵테일 바에서 조금은 삶을 찾을 수 있었다. 한 대기업의 팀장님이 부업으로 운영하시는 바에서 19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와 잠에 들었다. 회사에서 칼 퇴근해 술과 음악으로 밤을 지새우던 날보다 풍족했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마음의 벽 따위는 세울 틈 없는 대화들 속에, 행복을 찾으러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들 속에서 비로소 나는 일, 인간관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일"을 하는 오전과는 사뭇 다른, 미약한 행복을 느끼며 일을 끝마친 새벽이었고, 어렴풋이 '장사'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한 공간을 만드는 일이자 공간 안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는 일. 내가 앞으로 해쳐나갈 길을 장사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내가 하고싶은 일을 장사라고 규정지었다. 내 가게를 여는 날까지 쌓여나갈 '내일'들이 조금은 벅차오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평일 4시간밖에 잠을 청하지 못하고 다시 오전 7시에는 회사에 가야 했지만, 8시간 숙면한 여느 날보다 평온하게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