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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울 Jan 18. 2023

물영아리 '-영아리'

월요일에는 산책을, <물영아리 오름>

 오늘의 산책길로 물영아리 오름을 선택한 것은 이름이 매우 귀여워서. 물영아리는 제주의 남동쪽에 위치한 오름이다. 그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여 찾아보니 비가 많이 오면 정상 화구에 물이 고이기 때문에 '물이 있는 영아리'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아리가 무슨 뜻인데..'라고 되뇌며 찾아봤더니 의미는 확실하지 않으나 신령, 즉 민간적인 의미의 해석으로 보인다고 하더라.


 물영아리가 '수령산', '수령악'의 이름으로 불리는 걸 보고, 내가 느끼는 대로 그 이름을 해석하기로 했다. 신비로운 안개로 둘러싸인 삼나무 숲길, 허락된 날에만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수령'의 이미지로.

물영아리 오름 @mamadonotworry

 물영아리는 삼나무 군락이 가득 들어선 오름이다. 정상에는 다른 오름과 마찬가지로 분화구가 형성되어 있는데 물영아리가 특별한 이유는 그 정상에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토양이 물로 포화되어 있는 땅. 즉 새로운 생태계가 그 정상에 형성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 귀여운 이름과 더불어 내 발걸음을 옮기게 한 한마디는 '분화구에 앉아 자욱이 안개가 낀 날, 그 안개를 걷고 맹꽁이 소리가 들려왔다.'는 이야기.


 입구로 들어서자 드넓게 펼쳐진 들판 위로 야생 노루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이 오름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 들판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못하게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인간은 그 철조망을 빙 둘러 비로소 오름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야생 노루들이 풀을 뜯고 있다. @mamadonotworry

 황금빛 들판 뒤로 거대한 삼나무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의 색도 초록에서 갈색까지 다양했는데, 힘 없이 축 늘어선 듯한 삼나무 특유의 나뭇가지들과 그 나뭇잎과는 다르게 그들이 발산하는 색은 힘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광이 나는 듯했다. 꼿꼿한 소나무와는 다르게, 그들은 흐느적거리면서 가지를 흔들고,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삼나무 군락, 힘이 가득한 색채 @mamadonotworry
삼나무 군락 @mamadonotworry

 물영아리를 둘러볼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정상으로 향하는 계단길을 오르거나 둘레길을 빙 돌아 천천히 정상으로 오르거나. 마침 저 앞에 계단길로 내려오시는 분이 계시길래 얼른 다가가 여쭤봤다. "정상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20분 정도면 금방 올라갑니다." 건실하고 잘 생기신 청년분이 말씀해 주셨다.


 이곳을 오기 위해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의 체크인 시간도 고려할 겸, 생각보다 금방 올라가겠다는 생각에 계단 길을 택하고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양 옆으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새별오름, 금오름과 같이 오르는 길에 나무가 없는 오름은 '그저 등산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들게 할 때가 있는데, 물영아리는 두 명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계단을 제외하고 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높이 솟아오른 나무들은, 햇빛마저 몇 줌만 허락해 더욱 몽환적인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나무들이 허락한 빛만 들어올 수 있다 @mamadonotworry
고사리는 이 무대의 주연이다. @mamadonotworry

 아름다운 오름의 모습은 둘째 치고, 이 높은 오름을 20분에 올라갈 수 있다고 했을 때 알았어야 했다. 계단의 경사폭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정말 신기했던 것은, 올라가는 길에 쉼터가 3개 마련되어 있는데, '이러다 진짜 아무것도 못하고 조난당하겠다'라고 생각할 때쯤 구원같이 눈앞에 나타나 올라갈 수 있는 용기를 빌려줬다는 것. 갑자기, '오름이나 올레길을 개발하시는 분들은 쉼터를 설치하는 가이드를 어떻게 작성했을까?'가 궁금해졌지만, 다음 기회에 알아보기로 했다.

'오름 쉼터 설치 가이드' 가 있을까? @mamadonotworry

 '고생 끝에 낙이 있다, 노 페인 노 게인, 천재가 꾸준한 것이 아닌 꾸준한 것이 천재이다.'라는 말들을 머릿속으로 되뇌며 평소에 나태하게 살아온 내 몸뚱아리의 무게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순간 등록해 놓은 크로스핏을 일주일째 가지 않았음을 깨달으며, 내 다음 주에는 꼭 박스에 가리라 속으로 다짐했다.


 고달픈 과정은 달콤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만고불변의 법칙이다. 정상에 오르면 분화구(습지)로 내려갈 수 있는 길과 둘레길을 따라 정상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내려갈 수 있는 두 갈레 길이 나온다. 습지로 내려갔다. 엊그제 비가 왔지만, 안개가 끼어 있지 않다는 것은 알고 왔던 터였다.

습지로 내려가는 길, 나무 틈 사이로 살짝 습지가 보인다. @mamadonotworry

 누군가의 말처럼, 안개 낀 습지를 바라보며 맹꽁이 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지만, 훌륭한 보상이었다. 일단 사람이 없었고, 고요했으며, 습지에서 느낄 수 있는 선선함과 을씨년스러운 공기의 촉감이 운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뱀을 조심하세요'라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고요했다. 개골-개골, 습지에서 느낄 수 있는 양서류 특유의 울음소리를 느껴보고 싶어 유튜브에 검색해 잠시 감상하려고 했으나,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통화권 이탈 지역이었다.

물영아리 정상 습지 @mamadonotworry
물영아리 정상 습지 @mamadonotworry

 자연이 허락한 소리만 들으라는 뜻이었을까, 마련해 놓은 벤치에 앉아 눈을 감았다.


 두 뺨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가 마치 안개 낀 것처럼 느껴졌다. 이명인 '수령산'의 의미를 생각했다. 기독교도였기 때문일까, 습지 한가운데 누군가 서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개골, 개골, 양서류들의 소리도 한번 상상해 본다. 영아리- 영아리- 문헌에도 나와 있지 않은 뜻 모를 말. 눈을 감으니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려왔다. 이곳을 찾은 누군가는 어떤 풍경을 봤을까? 잔잔한 비가 내린 후, 뿜어내는 나무의 생기와 응결한 수증기를 뚫고 이곳을 찾아오면 다른 감정을 찾을 수 있을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또 오면 되지 뭐, 라고.

fin. @mamadonotw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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