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끝에서, Winter theme <유채꽃>
겨울은, 생기를 잃는 계절이다. 단 한번 세상을 어지럽히고,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나가는 계절이 아닌, 그가 가진 추위의 기운을 잃기 전까지 세상 가득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든다. 그 추위는 태양의 따스함마저 힘을 잃게 만들어 지평선 너머로 멀리 보내버리고, 그의 힘이 강해지는 밤을 더욱 일찍이 불러온다.
온 세상이 자신의 것 인 것처럼, 찬란히 색을 발하던 세상의 것들은 생기를 잃고, 나무의 잎은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는다. 혹시,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가게 앞 텃밭에 심어져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는 양배추들의 머리에 그 모습에 맞게 흰색 비니를 씌운다. 하루하루 그들의 색을 더해가던 초록빛 감귤나무와 주황색 결실은 오롯한 흰색에 모든 것을 빼앗겼다.
나에게는, 혹은 누구에게는 꽤나 차가웠을 겨울. 내가 가만히 있어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것을 실감한 계절. 다행히도 이 계절은 나의 온기만 빼앗아 가는 게 아닌 모두에게 평등하게 차가운 숨결을 내뱉어 온기를 앗아간다.
'순간을 소중히 했는가?'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자연스럽게 내뱉는 숨에서 입김이 나오는 것을 알았을 때 쓸쓸함을 느낀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버렸는지 자각한다. 겨울은,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 시간이 흘렀음을 인지하면서. 겹겹이 입은 외투조차 추위를 막아주지 못해 양손을 겨드랑이에 끼워 넣어 움츠리는 그런 계절.
그렇게 새해를 맞이하고 한 달을 보내면,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겨울의 끝자락을 맞이한다. 사람의 온기를 앗아갔던 추위는 어느새 사그라졌고 패딩과 목도리로 둘둘 말았던 내 몸은 가벼운 외투를 찾고 있었다.
세상은 어떠한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녹지 않을 것 같던 눈은 녹아 물이 되어 다시 대지의 품으로 돌아갔다. 얼어붙어 황량했던 밭에는 어느새 자그마한 초록 새싹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겨울을 맞이하며 마지막 잎새를 떨어뜨리던 나무들, 그들의 말라비틀어진 몸에서는 작은 순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빛을 잃고 건초가 되어버린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잔디밭도 다시금 그 생기를 되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을 것임이 분명했다. 아마 곧 다가올 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 가득한 광채 높은 초록빛을 선보일 것이 분명했다.
내가 순간을 소중히 하지 않을 때에도 자연의 순리는 돌아간다. 그들이 간섭하지 않는 것은 오직 나. 나는 타의로 움직여질 수 없다. 그 순리에서 벗어난 이질적인 존재로 스스로 움직여야만 했다. 내가 포기하고 있던 것들이 떠올랐다. 추운 겨울이 찾아와서였다. 이불 밖 보단 이불속을 찾았다. 따듯한 전기장판을 찾았고 보일러 다이얼을 돌려 집 안 온도를 높였다.
그렇게 아득바득, 가장 활발하게, 응집되고 응축된 스스로의 생명력을 불태워 다시금 생기를 찾아야 하는 이 추운 계절의 끝자락이 찾아왔다. 나는 이 겨울을 벗어나 생기 가득한 봄을 맞이할 준비가 과연 되어있는가?
봄이 오면, 모든 것은 만개한다. 차갑고 힘들었던 과정의 결과물을 뽐내기라도 하듯 찬란한 색채를 자랑한다. 몸을 살랑살랑 흔들게 하는 코끝에 맴도는 달달한 향을 발산한다. 감사하게도 봄은 겨울 내내 웅크렸던 그들의 인고와 노력을 뽐내는 훌륭한 무대가 되어준다. 봄은 학예회. 자연에게는 결실을 맺는 시간, 한 없이 가장 찬란하고 화려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
오랜 기간 노력하고, 생명력을 불태우며, 인고한 결과는 우리에게 가장 화려하게 뽐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준 채 오로지 스스로가 빛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인간에게도, 자연에게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인고의 시간을 멋있게 빛내주는 졸업 전시회.
생에 있어 몇 번이고 다가올 혹독한 겨울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내 생기와 채도를 모두 앗아가는 고난의 시련을 견디고 나를 위해 다가올 봄에 화려히 꽃 피울 수 있기를. 마음껏 뽐내고 향기를 발산하는 나와 당신의 봄이 '학예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