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성되어 사라진 여름의 풋풋함과 권태
산울_5년차 제주살이_제주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합니다_사진작가
처음 풋사과를 접했던 기억은 할머니의 따뜻한 손. 할머니는 어린 나에게 곱게 자른 풋사과를 쥐어 주시며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풋풋한 맛 이란다. ’고 말씀하셨다.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야 할 텐데 초록 사과라니. 그날 먹었던 풋사과는 무척이나 떫었다. 껍질은 미끌해 어린 이로 먹기에는 미끌미끌해 무척 불편했다. 맛있게 먹었던 빨간 사과와 다른 식감에 어색했다. 투정을 부리며 할머니께 왜 익혀 먹지 않고 굳이 초록 사과를 먹는 건지 물었다. 할머니는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여태 먹은 사과 중에 가장 아삭하고 상큼하지 않니?’
여름은 유년 시절의 나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득 선물했다. 좋아하는 여자애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밤이 찾아오지 않기에 어쩔 줄 몰랐다. 공원에 앉아 무슨 말이라도 입 밖으로 있었던 첫사랑의 경험을 선물했다. 길어진 해가 지지 않으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횡설수설하며 빨개진 내 얼굴을 들키곤 했다. 결국 서로 할 말이 없어 그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풋풋한 사랑의 기억을.
여름은 자유를 선물했다. 유년 시절에는 체험 학습이라는 명목으로 처음 학교 밖을 나서서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계절이었다. 체험 학습은 자체적인 일탈 활동으로 발전해 친구들을 이끌고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시골에 있는 삼촌의 집에 가게 만들었다. 고등학생 때엔 워터파크에 가야 한다고 새벽같이 일어나 수영복을 챙겨 워터파크에 놀러 갔고, 학부생 때엔 술을 가득 싣고 차를 몰아 가평과 대성리로 떠났다.
굳이 익지도 않은 사과를 찾아서 먹게 만드는 이상한 계절, 뜨거운 햇빛이 나를 달궈 새로운 것을 하라고 만드는 경험의 계절. 여름이 지날수록 나는 점차 익어갔고, 풋내 나는 경험들을 통해 점차 숙성되었다. 함께 자유를 경험했던, 없으면 죽을 것 같던 친구들 이미 떠나갔다. 해가 지지 않아 할 말이 없어 그 사람의 얼굴만 바라보던 나는, 해가 지고, 동이 틀 때까지 누군가와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젠, 거울을 통해 나를 바라보면 더 이상 풋풋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여름은 곧 권태였다.
풋풋함. 세상의 모든 것이 ‘완숙’ 될 수는 없지만 각자의 순서대로 숙성되어 가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니까. 풋풋함이 지난 이후는 숙성의 과정이요 즉 권태였다. 나이가 들어간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청명한 풋풋함을 잃고 가장 화려하고 맛있는 붉은 홍옥의 색깔에 가까워진다.
일을 마치고 자주 가는 칵테일 바를 찾아 애플 마티니를 시켰다. 가니쉬로는 청사과가 딸려왔고 한 입 배어 물었다. 여름의 맛이었다. 풋풋하고 아삭하고 상큼한 여름의 맛. 이제 나는 할머니가 나에게 건넨 여름의 풋사과를 기억한다.
어린 유치로는 느낄 수 없었던 아삭한 여름의 맛을 어른이 된 나는 이제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머릿속에서 이미 다 익어버린 사과가 초록색으로 다시 변해간다. 풋내 나는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역순으로 흘러 들어온다. 기억의 끝에서 나에게 처음 풋사과를 건네주던 할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풋풋한 맛이란다.’ 말씀하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짓곤 말했다. ‘이제야 풋풋한 여름의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