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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우 Oct 29. 2023

증오에서는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아

플루토

  중학생 때 우연히 플루토라는 만화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몰입감이 높아서 단숨에 읽었던 것 같고, 무엇보다 내용이 굉장히 어두웠는데 아톰이 등장인물로 나왔다는 것이 당시에는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10년 정도 뒤에 넷플릭스에서 나온 플루토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었다. 



  플루토는 지상 최대의 로봇이 하나씩 죽어가는 사건과 그에 대한 비밀을 수사하는 로봇 형사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로봇이며, 인간은 조연이다. 지상 최대의 로봇들은 각자의 사연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 모두 공유하는 한 가지 사건이 있는데 바로 39차 중앙아시아 분쟁이다. 이 분쟁에서 일부 로봇들은 전쟁에 참여해서 동족인 로봇들과 싸우기도 하며, 평화의 목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또 이 분쟁에 발을 들이지 않으려는 로봇도 있었다. 분쟁 이후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 지상 최대의 로봇들은 하나 둘 암살되기 시작한다. 최고의 로봇 중 하나이자 형사인 게지히트는 이 사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러다 플루토라는 존재가 지상 최대의 로봇들을 표적으로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플루토가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한다. 게지히트는 결국 사건의 끝에서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을 마주한다. 혼돈을 잠재우고 단 하나의 목적으로 이끄는 힘, 그렇지만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끄는 '증오'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한 때 자신도 느꼈었던 감정이고, 모든 것을 깨달은 채 게지히트도 생을 마감한다. 이 애니메이션의 초중반은 게지히트의 눈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고 후반은 게지히트의 메모리를 들여다본 아톰의 눈을 통해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을 깨달아가는 내용이다. 

 


  사람을 완벽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깨어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이 될지 결정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쪽으로 치우진 감정을 주입하면 깨어나게 된다. 그것은 증오, 분노, 슬픔과 같은 감정이다. 

이것은 아톰을 개발한 텐마 박사가 가장 완벽한 인공지능을 만들고 깨어나지 않자 그것을 깨어나게 만든 방법이다. 증오라는 감정은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내면의 혼란, 불안을 잠재운다. 모든 원인과 잘못을 외부의 한 대상으로 돌리면서 내면에서는 마치 사방으로 뻗어있는 감정이 하나로 정리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고민하지 않게 된다. 증오의 감정이 잦아들고 난 후 자신의 행동이 한 결과를 봤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한 후이다. 아무리 손을 씻어도 죄가 지어지지 않는 것 같으며, 죄책감이 끝없이 자신을 파멸시켜 간다. 게지히트가 사람을 향해 증오라는 감정이 사라지는지 물었던 것도 씻어내려가지 않는 증오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증오에서는 아무것도 태어나지 않아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가장 와닿았던 말이다. 플루토 속 세계는 더욱 갈등이 극화되어 있지만, 우리가 사는 세게도 어찌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도 지구 곳곳에서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고 사회에도 수많은 갈등들이 존재한다. 그러한 갈등은 시작한 장본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증오라는 감정에 휩싸여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전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증오의 역사가 되풀이되면서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비극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것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다. 이 분쟁의 원인을 만든 사람들은 이미 죽어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이 만든 분노와 증오의 씨앗이 자라 잡아 오늘날에도 전쟁이 일어난다. 물려받은 감정으로 인한 분쟁이 다시 터지면 그 감정에 대한 명분이 생긴다. 그들이 분노하고 증오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평화를 향해가기는 어려운 반면 분쟁으로 가기 쉬운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세상이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그러다 보니 그만큼의 갈등도 증가한다. 그러나 갈등은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환경에서 서로 의견이 맞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렇지만 갈등은 때로 극한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갈등을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인 것 같다. 증오와 폭력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해결이 아닌 되물림을 만드는 것이다. 증오는 황량한 사막과 같다. 그 위에서는 아무것도 태어날 수 없다. 우리 세계에서 여전히 많이 존재하는 증오의 사막에 이해와 사랑이라는 물을 주어야 할 것 같다. 












글에 사용된 사진은 넷플릭스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 또한 넷플릭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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