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맨 길도 길이더라

by 제주미진

제주 이야기가 담긴 푸드트럭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음식을 하시는 주인공 분이 나오셔서 푸드트럭 하는 모습과 제주 음식 재료로 개발한 요리들, 동네 해녀·삼촌들께 배움을 하는 모습들이 담긴 예쁜 다큐였습니다. 저 영상을 볼 때만 해도 ‘나 잘 살고 있구나’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면 할수록 길을 잃은 듯 헤매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15년 동안 학원 강사를 했었지요. 국어 과목 모든 수업을 했습니다. 초등, 중등, 고등 수업, 학교 방과 후 부진아 수업(초 4학년인데 한글을 모르는 아이들 한글도 알려 주었지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에서 고등 검정고시 국어반을 하기도 했고요. 책 읽기, 글쓰기, 국어 문제 풀이, 거기다가 속독까지... 국어 관련 모든 학원을 다 해 본 듯합니다.


국어가 익숙해지니 사회, 과학쯤이야~ 작은 학원에서는 전천후가 되어야 했습니다. 강의, 문제 풀이뿐 아니라 문제를 만들기도, 문제집을 편집하기도 했습니다. 한글 워드프로세서 2급 자격증이 있었는데 실컷 활용했습니다. 초등부 글쓰기 책도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제본기도 다루게 되었고, 복사기는 너무나 활용을 잘했지요. 대학교 때 학교 앞에서 복사 알바를 1년 정도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학원 강사 중간에 법무법인 저작권팀에서 아르바이트를 2년 했습니다. 학원 강사가 너무 힘들어서 잠시 학원을 떠났었는데요, 학원에서 하던 복사가 법무법인 송무 서류, 소장이나 증거 자료를 복사하는 일에 도움이 될 줄 몰랐습니다.


인생은 참으로 모르는 사이에 흘러흘러 길이 되었습니다. 국문학을 전공하며 고전 문학을 하다 보니 웬만한 유명 법대 졸업 비서들보다 한문 실력이 낫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사무장님이 법무사 자격증을 따 보라고 권유할 정도였으니 말이죠. 알바는 직장이 되었고, 직장에서 안내만 하다가 담당 변호사가 지정이 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을 보고 듣고 서포트했고, 학원에서는 큰 목소리였는데 인포메이션에 앉으면서 목소리를 줄이느라 애써 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을 낳고 학원 강사로 복귀해서는 열심히도 살았습니다. 어느 날 작은아이가 학원 아이들 그만 안아 주고 자기만 안아 달라고 하더군요. 작은아이 하교하면 학원에서 또래 친구들이랑 같이 케어하고, 상위 학년들 수업이 끝날 때까지 같이 있었거든요.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힘들어하길래 15년 학원 강사 일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제주로 왔어요. 제주에 와서 목장에서 요구르트 담고 치즈 만들고 서류 만들기를 2년 동안 했습니다. 조용하고 고요한 곳에서 살고 싶었으나, 조용한 목장에서 일만 하기에는 너무 활동적이었던 저는 환경운동단체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2년 10개월, 숲으로 들로 오름으로 다니다 보니 자연이 너무 좋아 자연과 가깝게 지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주인도 아니고 제주 대학을 다니지도 않다 보니 어느 순간 현실에 부딪히는 문제도 있어 제주대학교 대학원 진학을 하게 됩니다.


버섯이 좋아서 농학과 버섯 연구실에 들어갔지만, 현장에서 적응하기 어려워 원래 관심이 있었던 양치식물로 전공을 바꾸었지요. 이렇게 1년을 흘려보내고, 2학년이 되어 식물병리학 실로 다시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냥 단순히 공부하는 것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끝맺음을 생각하지 않고 시작한 공부는 3년 차에 수료를 하고, 지금 논문이 마무리되지 않아 방황 중에 있습니다. 논문을 마무리하면 졸업인데, 하기 싫은 건 아닌데 거기에 에너지를 쏟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논문을 쓰면서 많은 상처가 생겼는데, 그래서 원래 먹던 솔잎이 먹고 싶어지지 뭡니까?

이사 오기 전 하남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하는 말이 "언니, 그거 얼른 마무리하고 원래 좋아했던 거 해~"


그날따라 식물병리학 논문 자료를 찾는데 문학치료 논문이 두 개가 뜹니다. 어라, 이거 뭐지? 나 원래 관심 있던 건데... 2009년도에 세우기로 한 학교... 누구나, 아무나 즐겁고 행복하게 책 읽고 글쓰는 학교 세우기!! 아... 이거 운명인가... 생각하며 석사 논문 마무리를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제주 오기 전의 이야기를 쓰면 어른들 말씀처럼 소설 한 권을 쓸 수 있을 듯합니다. 제주 오면서 생긴 일들만으로도 단편소설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정리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면서도 지금까지 걸어왔으니 이제는 바른 길을 정해서 달려가고 싶습니다. 걷다 지쳐 쉬는 것이 아니라 리듬을 타고 호흡을 가다듬어 42.195킬로미터 마라톤 같은 삶을 달려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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