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위그 개인전 리뷰
리미널(Liminal)은 생각지 못한 무언가가 출현할 수 있는 과도기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현 시대 상황과 잘 어울리는 이 단어를 화두로 삼아 작업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위그 입니다. 그는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 의존적 관계에 대한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냅니다. 이러한 그의 예술 세계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개인전이 현재 리움미술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리움의 블랙박스라 불리는 검정색 콘크리트 안으로 진입하며 전시가 시작됩니다. 블랙박스는 건물 속의 건물로 그 이름의 의미 그대로 빛이 들어가지 않고 인공적 조작과 통제가 가능하며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공간의 특성은 그의 작품 세계와 잘 어루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어두워진 실내에 눈이 쉽게 적응하지 않아 잠시 당황했지만 낯설고 이질적인 감각이 어쩌면 피에르 위그의 세계에 들어섰다는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영상,사운드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반응하는 작품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 속에서 흐르는 작품들은 인공 지능, 공간,조명, 인간 등 여러 존재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환경 그 자체를 만듭니다. 이는 마치 인간과 AI 시스템이 끊임없이 학습하며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변화하는 영상 작품은 그 시작과 끝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작품은 감상자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밝은 공간에서 어두운 공간으로 이동하며 반응하는 나의 감각 그리고 표현된 작품을 통한 메시지와 해석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던져지기에 기존의 감상 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매우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예술계에서 중요한 인물인 이유는 우리에게 ‘감상’이라는 행위 자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의 전시에서 작가는 중심에 있지 않고 감상자도 특별한 해석 능력을 요구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념이 스스로를 괴롭힐 뿐입니다) 그 대신 우리는 기계와 인간 그리고 동물의 관계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전시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경험입니다. 익숙한 공간과 작품 그리고 해석의 틀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를 스스로 자각해야 합니다.
[리움, 피에르 위그 개인전]
https://www.leeumhoam.org/leeum/exhibition/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