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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현장에 들어온 기술
누구를 위한 편리함인가

보이는 결과가 중요해진 교육 현장은 과연 건강한가

by park j

오랜만에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마주 앉아 그림을 그리고 색을 입히는 이 시간이 다시 찾아온 것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과거와 크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수업 내용을 학부모에게 공유하는 전용 앱의 등장입니다. 예전에는 수업이 끝난 후 아이를 데리러 온 부모님께 간단히 오늘의 수업 상황을 전달하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수업 중간중간 사진을 찍고 수업이 끝난 뒤에는 그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작성해 앱에 업로드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수업 시간 동안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고 아이 또한 방해받지 않고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학부모와 소통하는 앱이 도입되면서 수업 시간은 더 이상 아이만을 위한 시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기술은 편리함을 내세웁니다. 학부모는 앱을 통해 아이의 학습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교사의 집중력이 분산되고 수업의 흐름이 자주 끊기며 아이는 ‘보여주기 위한 수업’에 놓이게 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기술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중립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기술이 선택이 아닌 의무로 작동할 때 생깁니다. 어떤 학원은 소통 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어떤 학원은 주 1회 정도만 간단히 기록을 남깁니다. 반면 일부 학원에서는 매 수업마다 촬영과 기록 작성을 강제하며 이는 교육보다 서비스 경쟁력을 우선시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교사는 수업 외적인 업무에 시달리고 아이는 끊임없는 관찰과 기록 속에서 진정한 몰입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교육은 점차 배움의 시간이 아니라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간’으로 전락해 갑니다.


다음으로 이 모든 과정이 학부모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 몇 장과 정리된 문장은 안심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배움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느리며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어떤 배움은 멈춰 있는 듯 보이기도 하고 어떤 성장은 한참 지난 후에야 비로소 드러나기도 합니다.


모든 배움은 느립니다. 오늘의 그림이 비뚤어지고 집중이 흐트러졌더라도 아이는 그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아이의 속도는 누구와도 같지 않으며 그 배움은 쉽게 수치화되거나 이미지로 압축될 수 없습니다. 지금의 학부모들도 이러한 느림의 과정을 직접 겪어왔기에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아이의 느림을 이해하고 ‘배움은 언제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술이 교사의 시간과 아이의 집중력을 방해할 때 우리는 그 기술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 사용하는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육 현장에서 기술은 교사와 아이 모두가 본연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균형 있게 활용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교육이라는 느리고 복잡한 과정의 본질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보여지는 결과’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장’이며, 그 느림을 인정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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