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가 남의 틀에 맞춰야 하지?”라는 물음은 흔히 반항이나 불순종으로 오해받기 쉽습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변화된 시대에 맞는 지적 주체성을 찾는 과정입니다.
세상은 지금 과거의 제도와 규칙이 절대적 권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발전, 산업의 빠른 변동, 새로운 지식 생태계의 출현은 ‘정해진 틀’보다 개인의 창의적 감각과 통찰을 더 요구합니다. 미래를 앞서 감지하는 능력, 변화의 조짐을 읽고 연결하는 감각은 단순한 자질이 아니라 시대가 필요로 하는 역량입니다. 그런데 이 능력은 학위나 제도적 자격증이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학위를 가지고도 변화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반대로 제도 밖에서도 탁월한 감각으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선택지를 마주합니다. 먼저 제도 안입니다. 이 길은 제도의 언어와 형식을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학위, 직함, 규칙이라는 공적 장치 속에서 나를 증명하고 그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제도의 관습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 틀을 적절히 익히고 전략적으로 사용하여 원하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는 때로는 내 언어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의미합니다. 다소 느리고 답답해 보일 수 있으나 그 자체가 사회적 신뢰의 토대가 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선택지는 제도 밖입니다. 이 길은 전통적인 권위에 기대지 않고 나만의 콘텐츠를 통해 신뢰와 영향력을 쌓는 방법입니다. 제도의 승인이 아닌 대중의 인정, 동료들의 공감, 새로운 생태계에서의 네트워크가 기반이 됩니다. 이 길은 위험하고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한 번 성과를 입증하면 오히려 제도권보다 넓고 빠르게 영향력을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도 안과 밖은 상호 배타적인 길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오가며 내가 하고자 하는 실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자원을 어디서 끌어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이 만든 틀에 무조건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틀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혹은 그 틀을 넘어 새로운 틀을 창조할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하는 태도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지적 주체성은 바로 이 균형에서 비롯됩니다. 제도의 안과 밖을 동시에 바라보며 나만의 방식으로 길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남의 틀에 맞추지 않으면서도 나만의 신뢰와 영향력을 증명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