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오랫동안 과거의 진리와 보편적 가치를 믿어왔으며 이러한 믿음은 철학적 논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온 전제입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새로운 세대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태어날 때부터 기술과 함께 자라나며 과거의 사고방식과는 다른 가치관과 본능을 형성할 가능성이 큰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정보에 대한 접근 방식과 관계 형성 방식 그리고 판단 기준 자체가 이전 세대와 달라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인간관계와 지식 습득 방식 및 행동 방식은 아날로그 시대와 구조적으로 다른 체계입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인간의 본능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에 과거에 보편적이라고 여겨졌던 가치 역시 디지털 환경 안에서 다시 정의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능과 진리는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시대와 환경 속에서 형성되고 변화하는 동적 구조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인간은 결국 사람을 직접 마주하고 대화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물리적 만남 속에서 관계의 깊이를 형성한다고 전제해 왔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오랜 시간 유지되어 왔기 때문에 보편적 진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날로그 환경에서 형성된 경험의 축적에 기반한 해석입니다. 이와 같은 과거의 기준과 사고방식이 미래에도 동일하게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은 특정 세대가 선택해 온 믿음에 가깝습니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는 물리적 대면이 반드시 관계의 중심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온라인 상호작용 역시 충분히 실제적이며 감정 교류와 유대 형성이 가능한 공간입니다. 텍스트, 이모지, 영상, 아바타를 통한 소통은 결핍된 관계가 아니라 다른 형식의 관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간은 결국 직접 만나야 한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그것이 본능 이어서라기보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인간의 본능이라고 불리는 많은 요소들 역시 반복된 환경 속에서 강화된 습관과 학습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만약 태어나는 순간부터 디지털 상호작용이 기본값인 세대가 등장한다면 관계에 대한 선호 구조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능 또한 환경과 기술 조건 속에서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구조입니다. 현재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불확실성은 변화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익숙한 기준이 흔들리는 데서 비롯된 감정일 가능성이 큽니다. 우리는 불확실성을 위협으로 해석하는 데 익숙하지만 그것이 곧 퇴보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변화가 아니라 그 변화를 과거의 기준으로 재단하려는 태도입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경험한 관계 방식과 사고 체계를 인간의 본질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며 그것이 미래의 표준이 되어야 할 필연성은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세대를 이해의 대상으로만 두는 태도가 아니라 그들의 감각과 사고방식을 중심에 놓는 시도입니다. 앞으로의 사회를 실제로 살아가고 형성해갈 이들은 디지털 환경 속에서 자라난 세대입니다. 인간의 본능과 관계, 친밀함과 공동체의 정의 역시 그들의 경험 속에서 다시 서술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변화를 통제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는지 충분히 듣고 관찰하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능성을 다시 확장해 볼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