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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l 29. 2023

게으른 농부도 할 일은 많다

오락가락 중심을 잡을 수 없는 장맛비는 게으른 농부를 더욱 정신없게 한다. 농사의 내비게이션인 일기예보의 정확성도 이리저리 춤을 춘다. 장마철, 충분한 수분의 공급으로 밭의 잡초는 이미 숲을 이뤄서 관리 가능한 경계선을 넘어서고 있다. 


얼마 전 방송출연 때 진행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농부는 부지런해야 하는데..."


오늘은 혼자서 유심재로 갈 생각이다. 우영팟에 아내가 제거하다 남은 잡초도 제거하고, 밭에는 제초제도 몇 통은 할 생각이다. 또 조용히 검토할 자료도 있다.

 

" 오늘도 폭염주의보가 내렸는데 밭에 가서 일하다가는 큰일 나.." 아내의 걱정소리다.

아내는 어제 내가 잠시 일을 보는 사이 혼자 우영팟의 잡초제거작업을 했다. 돌아봐보니 거의 탈진상태였다. 하던 일을 멈추는 법이 없는 사람인데 일을 멈추고 샤워까지 마치고 멍한 상태였다. 심하게 더위를 먹은 모양이다. 그래서 혼자 나서려는 나를 걱정하는 소리다. 


" 유심재에 있다가 날씨를 보면서 할 테니까 걱정 마.. 많이 더우면 안 할게"

일단 안심을 시키고, 몇 가지 검토자료를 가지고 유심재로 향했다.



한여름 햇살을 정면으로 받는 유심재의 오후는 평화롭기만 하다. 잡초와 잔디 속에 먹잇감이 있는지 새들이 유난히 자주 모여든다. 안방에 앉아서 조그만 창틀을 넘어서 우영팟에서 노는 새들은 보는 것도 없었던 재미다. 햇살이 좋아서 거실에 있는 빨랫대를 마당에 내놓았다. 빨래를 자연광에 일광욕을 시키기 위함이다.  


내가 유심재에 오면 맨 먼저 하는 일은 음악을 트는 것이다. 제일 안집이고 집이 길하고는 반대방향으로 위치하고 있어서 음악소리가 새어나갈 걱정이 없어서 좋다. 나는 이곳에서 만큼은 음악의 볼륨을 높이고 음악을 방방하게 듣는다. 주위에 다른 소리가 안 들리도록 말이다.

   

에어컨을 켜고 항상 내가 앉던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일단 밖에 나가서 뭐를 하고 할 날씨가 아니다. 햇살이 약해져야 뭔가 외부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져온 자료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몇 가지 부탁받은 일거리들인데 이리저리 진행이 늦어지는 것들이라 서둘러야 한다. 


" 형님, 오늘 언제 시간이쑤과. 요번에 얘기하던 거 오늘 만낭 구체적으로 얘기해시민 허는데.."

같이 할 작업이 있다고 며칠 전부터 참여를 독촉하는 후배의 전화다. 내가 일의 구체적 범위를 모르는 상태라 대답을 보류했다. 오늘 그 얘기를 하고 대답을 얻고 싶은 모양이다.

사실 나는 오늘 그 후배를 유심재로 불러서 얘기를 할 생각이었다. 기다리다 연락이 없고, 햇살도 좀 기우는 것 같아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우영팟에 나오는 순간에 전화가 온 것이다. 

이미 순서는 지나가 버렸다. 

" 지금 내가 밭에 와있어서 나갈 수는 없고, 이따가 저녁에 보자 "



여름 햇살, 비가 개인 후의 햇살은 더욱 살인적이다. 늦은 오후, 나무 그늘이 있는 공간이지만 우영팟의 햇살은 20여 년 전 사막에서 만났던 이집트의 햇살이다. 돌담사이와 작물사이를 오리걸음으로 걸어가면서 잡초를 뽑았다. 왜 이리 모기가 많은 건지 왱왱거리는 게 짜증이 난다. 이런 일을 겪은 사람은 귀촌생활의 여유로움과 낭만은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TV에 나와서 가끔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서 늘 하는 말이다. 


" 게메이, 왕 해보라. 살아보라. 그런 소리가 나오느냐.."


잡초를 제거하니 1시간이 후딱 지났다. 몇 번을 잔디그늘에 않아서 물을 마시고, 땀을 닦고 간헐적 휴식을 하고 난 후의 성과다. 그리고 잡초가 없는 우영팟을 보니 내 마음이 가볍다. 

쉴틈이 없다. 분무기와 제초제를 가지고 1KM 거리에 있는 밭으로 향했다. 


농사를 하면서 농업경영체에 등록을 하면 1년에 40만 원의 농민수당이 나온다. 농업직불금 신청을 하면 1년에 120만 원이 나온다. 그러나 의무적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고, 작물주기상 잠시 쉴 때도 언제라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밭을 관리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밭에 잡초가 우거져 있으면 안 된다. 연이은 장맛비에 밭의 잡초들은 이미 장대가 돼있다. 내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


햇살이 없는 저녁시간 제초제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오늘은 가능한 많이 제초제를 할 생각이다. 이미 아내에게 저녁 늦더라도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를 하고 온터다.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저녁시간 후배와의 약속으로 조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급한 곳인 입구 쪽만 제조체를 하고 가야 할 듯하다. 


농부는 밭에 가면 할 일이 생긴다고 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은 귀찮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 에에 나 밭에나 가키여 " 하면서 골갱이 하나 들고나가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는 해질 무렵 웃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지금에야 그 이유와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농부는 천직이다. 하늘이 내려주신 직업..


아마추어 농부, 전업 농부가 아닌 초보농부에게 농사는 힘들다. 여러 가지 이유다. 

작물에 따른 농사법도 알아야 하고, 병충해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 농사법은 날씨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책으로만, 이론으로만 배울 수는 없다. 만 가지 경우를 전부 알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밭을 경운 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수확해야 할 농기계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 농사다. 농부의 몸이 망가진다. 


" 당신도 퇴직하고 밭에 다닌후로는 허리하고 어깨가 좀 굽어지는 것 같아 " 아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귀농귀촌 한지 얼마 안 된 주위 초보 농부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이 있다. 

" 이것저것 제대로 하려면 농사가 너무 어려우니까 유기농, 농약 없는 농업, 친환경 농업을 해야겠다고.."

그건 사칭이고 스스로 게으른 농부가 되겠다는 선언이다. 


내가 조금 아는 "유기농, 농약 없는 농업, 친환경 농업"은 부지런함의 집합체이어야 가능하다. 

그러기에 나는 그런 말은 입에 담지도 못하고, 단지 게으른 농부임을 자칭한다. 

그러나 게으른 농부도 할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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