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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Jul 16. 2023

게으른 농부가 되는 이유..

"당신 제초제를 뿌린 건 아주 잘한 거네. 신의 한 수야 " 

발코니 밖으로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내가 갑자기 칭찬을 한다.


농부에게 최대의 관심사이자 적은 잡초와 날씨다.

 

나는 한때 마스터가드너 활동을 했다. 모든 식물들은 가드닝의 대상이다. 잡초도 그렇다.

" 잡초란 아직 특별한 용도를 찾지 못하고 방치된 식물 "이라고도 얘기한다.  

그러나 잡초들도 쓰임에 따라 가드너에게는 아주 특별한 멋을 내는 중요한 식물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는 잡초라는 이름을 떼는 경우도 생긴다.


농사에서는 다르다. 내가 필요한 식물, 내가 심은 작물 외에는 모두가 잡초다. 내가 심은 작물에 해를 준다. 그래서 모두 다 제거 대상이다. 제주는 날씨가 비교적 따뜻한 지역이라 겨울철에도 살아남는 잡초들이 있다.


잡초를 매번 일일이 손으로 뽑을 수는 없는 일, 제초제를 살포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제초제를 뿌린 후에 비가 와서 농약을 빗물이 씻어내려 버리면 헛수고다. 잎에 뿌려진 농약들이 식물에 스며들기 전까지는 비가 내리면 안 된다. 농약설명서에는 3시간 이내에 농약을 씻어 내릴 정도의  큰비가 내리지 않아야 한다고 안내가 돼있다.


잡초도 식물인지라 가뭄에는 더딘 성장을 한다. 을 지나면서 햇빛을 받고, 비가 몇 차례 오고 나면 내키를 훌쩍 넘을 정도로 자라 버린다. 여름철 장마가 오기 전에 잡초를 제거해주는 게 잡초관리에서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장마가 오는 시기는 매년 다르다. 일기예보가 빗나가서 제초제를 할 시기를 놓쳐버리면 잡초는 농부의 허락도 없이 내 밭을 점령해 버린다. 장마 중이라도 간헐적으로 비가 오고 멈춤을 반복하는 경우는 순간순간 하늘의 빈틈을 타서 제초제를 살포할 수도 있다.

장마철 우거진 잡초밭이 되어버렸다


가끔 안 하던 세차를 하면 비가 오는 경우가 있다. 비 예보가 없어서 제초제를 했는데 비가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머피의 법칙을 체감하는 거다. 그러나 다급한 경우는 헛수고가 될 우려를 무릅쓰고 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농부에게 날씨예보는 내가 조절할 수 없는 작업 스케줄표가 된다.    

요즘은 날씨를 어림잡기가 힘들다. 따라서


요즘은 일기예보를 자세히 해주는 좋지만 날씨 앱이 있어서 언제 어디서든지 확인할 수 있어서더욱 좋다. 일기예보는 시간대별, 동네별로 나누어서 해준다. 1주일간의 장기예보를 해주기도 한다. 날씨를 보고 일정을 잡기에는 아주 편리하다. 이제 날씨는 생활이다.


" 제주도는 조그만 섬인데 날씨가 거기가 거기 아냐.." 이렇게 생각하고 제주 관광에 나섰다가 코를 다친 사람들도 꽤 다. 아주 천만의 말씀이다. 제주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고, 가운데 한라산이 있다. 한라산의 영향으로 팬현상이 심하다. 따라서 지역 간의 날씨의 편차도 심하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 승용차로 불과 10여분 거리에 있는 게으른 농부의 밭의 날씨도 다르다. 농사일정은 집에서 예측을 할 수가 없고 현장에 가야 가능하다. 애월로 가는 길 일주도로를 달리다 보면 비가 오고 멈춤을 반복한다. 도로면이 젖고 말라 있음을 여러 차례 볼 수 있다.

" 이런걸 보면 제주도도 참 넓고 크다.."




날씨 앱을 보니 계속 빗줄기다. 비가 온다는 예보다. 하루종일 비예보가 없어야 제초제 살포가 가능하다.

반나절이 비, 반나절이 맑음이면 갈등은 준다. 할까 말까 하는데 대부분은 쉬어야 한다. 운수 없는 날은 머피의 법칙을 경험할 수도 있기에 말이다.

모처럼 날씨예보를 보고 바쁜 시간을 내서 제초제 살포 준비를 하는 날, 갑자기 예보가 비로 변동이 돼서 농약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고민하다가 농약을 안 했는데, 날씨가 쾌청해 버리면 허탈해진다. 이후는 하늘과 기상청을 향해서 xx문자를 난사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요새는 밭을 다녀오면 항상 넋두리다.

" 제초제를 해야 하는데.. 걱정이네 "

" 근데 날씨가 이런데, 애쓰게 제초제를 했는데 비가 와버리면 속상하잖아.." 아내의 걱정이다.

크지 않는 밭이라 분무기를 메고 제초제를 해야 하는 어려움과 정성을 알기에 아내는 항상 걱정을 한다.   


하늘(자연)과 동업하는 농사.. 예측이 안된다.


농사는 하늘과의 동업이라고 한다. 자연과의 동업이겠지만 하늘의 날씨를 지칭하기에 이렇게 얘기를 한다.

동업자만큼이나 날씨를 결정하는 하늘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 어제 제초제를 했으면 됐는데, 비가 온다고 해서 안 했는데 날씨가 뭐야. 햇빛만 쨍쨍 이자나. 아이구 "

요즘 입에 붙은 얘기다. 요새는 무척 기상예보가 왔다 갔다 한다.



오랜만에 일정이 비고, 날씨도 비가 오지 않기에 유심재로 향했다.

날씨앱을 보니 오늘은 비 예보가 없다. 밤늦은 새벽 3시부터 내일까지 비 예보가 있다.

나는 속으로 유심재에 들렀다가 오후에는 상황을 보고 제초제를 할 생각이다.


" 밭에 강 제초제를 하고 올게, 오후에 비 온덴 안 햄시 난 괜찮을 거 같애  "

" 지금 날씨가 너무 흐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데.. 그러면 헛수고야 다음에 하지.."

갑작스러운 나의 얘기에 아내가 당황반, 걱정반의 마음으로 하는 말이다.

   

나는 5시간 정도의 여유만 있으면 농약을 한다. 사용설명서에는 3시간이라고 하지만 조금의 여유를 추가해서 5시간의 여유를 갖는다. 몇 번의 성공경험이 있기에 다시 모험을 나섰다. 내 계산에는 이상이 없을 것 같았다.

분무기를 차에 싣고 밭으로 향했다.


밭에는 매년 고구마를 심는다. 올해도 6월 말~7월 사이에 밭을 만들고 2차례 나누어서 심었다. 심다 보니 고구마 줄기가 조금 남길래 당초 덩굴작물을 심으려던 다른 공간에 추가로 심었다. 덩굴작물을 심을 곳은 덩굴 이 자랄 공간이 필요하기에 이랑과 이랑사이를 넓게 한다. 멀칭이 안된 곳이라 잡초가 자라기에 좋은 장소다. 미리 제초제를 뿌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땅속에 숨어있던 잡초새싹들이 올라왔다. 잡초는 최근 몇 차례 비를 맞으면서 훌쩍 자라더니 고구마줄기와 동거를 하기를 원한다. 지금 제거를 해야 할 시기다.

20리터 분무기로 재빠르게 제초제를 뿌렸다. 넓지 않은 면적이라 금방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제 5시간 정도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된다.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결과는 내손을 떠났다.

"고생했어요. 이제는 하늘에 맡깁시다.."  말려도 고집대로 하고 온 나를 보면서 아내가 하는 말이다.


밤시간부터 온다는 비는 밤에도 이튿날에도 오지를 않았다. 다음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내가 신의 한 수라고 한 것이다.

오늘 밭에 가보니 제초제가 약발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잡초들이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제초제가 약발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누렇게 변한 잡초



들판에 아름답게만 보이던 풀과 야생화들이 잡초로 보인다.

그냥 하루하루 주어지는 날씨를 걱정하고 탓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농부가 게을러지기 시작했다. 내가 자연을 이길 수 없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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