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석 Nov 28. 2024

제주로 온 초등생 학부모들은 왜 다시 돌아갔나?

제주이주의 열풍 가운데에 있는 제주의 학교

"지금 우리 학교에서 제주 토박이 자녀들은 20% 내외 정도밖에 안 됩니다."


엊그제 마을을 방문하다가 만났던 모 초등학교 학부모회장의 말이다. 

중산간 마을에 있는 학교로 주민들이 많지 않다. 마을에는 학생들을 위한 문화교육시설도 없는 지역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학생 수가 적은 소규모 학교로 학교의 존립이 걱정되던 학교다. 


마을 차원에서 학교 살리기 운동을 전개했다. 마을에서 돈을 모아서 학부모들 유치하기 위한 공동주택을 지었다. 초등학교 학생을 둔 학부모들에게 무상으로 임대를 해주면서 학생들을 마을로 불러 모았다.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현재는 학생 수가 더 이상 감소하지 않아서 학교 존폐의 문제 얘기는 없다. 


그러나 매년 입학생의 수에 따라서 학교의 존립의 문제가 다시 제기될 수 있는 터라 학교의 경쟁력은 늘 확보되어야 한다. 지속적인 학교와 학부모의 노력으로 이제는 학부모들에게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요새 교육청에는 돈이 많은가 봐!" 


갑자기 아침 식사 자리에서 아내가 하는 말이다. 아내 지인의 자녀가 교육청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를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제주도 세금으로 애들 잘 키우면 뭐 해? 대부분이 육지 아이들이라 6학년이 돼서 졸업할 때가 되면 모두 고향으로 가버린다는데..."


이게 아내가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았다. 


올해 초 마을 교육활동가 교육을 받을 때, 농어촌지역 선생님들이 공통으로 한 말이 있다. 마을마다 차이는 있지만,  농어촌학교에서 제주가 고향인 학생의 비중은 20~30% 정도라고 한다. 대부분이 이주민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다. 


제주 토박이 부모들의 자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제주도에서 제주시의 인구 쏠림현상은 가히 기형적이다. 올해 9월 현재 제주도 주민등록 인구는 671,064명이다. 이중 제주시 인구는 488,844명으로 72.8%, (구) 제주시 동(洞) 지역 인구는 376.521명으로 56.1%다. 제주도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이 제주시 동(洞)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공공기관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선호하는 문화시설이 제주시 동 지역에(洞) 편중된 결과다. 


저출산 여파로 학령인구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농어촌지역의 생산 가능연령 인구이자 학부모들은 대부분 동(洞) 지역으로 이사를 가버린다. 생활문화시설이 많아서 본인들이 생활하기 편한 곳,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기에 좋은 지역을 찾아 나선 것이다. 농촌에서 가끔 보이는 젊은이들도 실제 거주지는 동(洞) 지역인 경우가 많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출퇴근을 하는 경우다. 


결국 농촌에는 나이 드신 어른들만 남게 된다. 이는 농촌 일손 부족의 문제뿐만 아니라, 중하위 연령계층이 없는 기형적인 농촌 마을공동체를 만들게 된다. 학교로 보자면 학생이 없게 된다. 학교의 학생 수는 자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고, 농어촌 지역의 학교 통폐합 문제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도내에서는 1992년 이래 24개의 초등학교, 3개의 중학교 총 27개교가 폐교되었다.  


마을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는 마을의 중심이다. 중소규모의 농촌 마을에서는 학교는 유일한 공공기관일 때가 많다. 행정기관이기에 마을에 부수적인 여러 가지 낙수효과들이 있다.  학교는 마을의 오래된 정신적 지주다. 교명은 보통 마을 이름이다.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전국 어디서나 동문을 만나면 마을 이름을 거론하게 되고, 그 마을이 존재함을 입증하게 된다. 그러기에 마을에서 학교는 마을의 존재 이유이자 정체성이다.

 

학교는 마을에서 가장 큰 장소로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다. 모든 마을 행사의 중심은 학교다. 예전 학교 운동회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이고 즐기는 마을 전체의 축제였다. 


마을에서 학교를 중심으로 주변에는 여러 가지 상업적 활동이 전개된다. 학교 주위에는 학원, 문방구, 분식 가게, 놀이방 등이 생긴다. 학교와 학생이 있음으로써 일어나는 여러 가지 유통과 서비스 활동들이 있다. 학교는 마을 경제를 일정 부분을 담당하는 기능도 한다.   


학교 살리기 운동이다.


이러한 학교의 순기능과 중요성 때문에 마을에서는 학교를 유지하고자 하는 강한 몸부림이 있었다. 1990년대 후반기부터 시작된 학교 살리기 운동은 마을이 소유한 부지에다 주민들과 동문, 출향인들의 성금으로 공동주택을 지었다. 마을의 빈집을 리모델링하기도 했다. 학생을 가진 학부모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자녀들이 학교에 다니는 기간 동안 주택을 무상이나 저렴한 가격으로 빌려주었다. 마을에서 거주하는 데 각종 편의도 제공했다. 낯선 마을에서 주민들과 어울려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배려도 했다. 마을 자체의 노력으로 하는 활동이기에 규모나 운영 방식은 마을마다 다르다.  애월읍 납읍리, 봉성리, 수산리에서는 공동주택을 지었다. 마을에서 빈집을 리모델링해서 학생을 유치하기도 했다. 금악리, 하가리, 송당리, 가마리, 토산리, 덕수리, 서광리 등이다.  

학교살리기 운동으로 지은 납읍리 금산학교와 하가리 공동주택


이런 가시적인 성과에 힘입어 제주도교육청은 지난 2015년 ‘작은 학교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통해서 제주형 자율학교 지정·운영 및 건강 생태 학교 IB 교육프로그램 운영 등 농어촌학교 및 작은 학교를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지원했다. 납읍초, 애월초, 수원초, 법환초, 서호초, 보성초, 한마음초가 작은 학교에서 벗어났다. 특히 아름다운 학교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더럭 분교장은 추가적인 다세대주택의 공급으로 2018년에 본교로 승격했다. 제주도청도 조례에 따라 임대용 공동주택 건립, 빈집 정비 사업 추진으로 정주 여건 개선을 통한 소규모학교 육성 지원에 힘쓰고 있다.  


농어촌지역 학교는 학년마다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다양하고 집중적인 특기적성교육이 가능했다. 농촌에서는 그동안 엄두도 못 내던 예체능 프로그램까지 무료로 진행되었다. 학교 건물이나 운동장 시설은 어린이들의 성향과 동선, 안정성을 반영해서 리모델링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울긋불긋한 총천연색 동화 속 건물들도 많다. 관공서 냄새가 풍기던 예전 사각형 학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동화 속 건물 같은 더럭 초등학교, 이제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주해 온 학부모들의 말을 들으면 학생들에 대한 지원과 혜택이 "최고"라고 한다. 이들의 입소문은 고향에 있는 친지들이나 친구들을 제주로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런 행정당국과 마을의 학교 살리기 운동은 때마침 불기 시작한 제주 이주의 바람과 맞물려서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인위적으로 추진한 일이라 부작용도 있다


마을에서는 주민들의 부담으로 편리한 거주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노력은 했으나, 막상 마을에 들어와서 혜택을 받으면서 살고 있지만 마을에 동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입주 조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거나 위반함으로써 마을과 갈등을 하는 경우도 있다. 초등학생인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서 친구들과 정을 붙이고 생활할 만하니까 다시 이주를 가버리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애들이 헤어지면서 울며불며 난리를 친다고 한다. 어른들의 섣부른 욕심에 아이들이 희생당하는 경우다.  


자녀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마을의 공동주택에서 거주할 권리는 상실한다. 초등학교 살리기 운동으로 초등학생 부모를 가진 주민들한테 입주권이 보장된 주택이기 때문이다. 거주의 지속 여부에 대한 학부모들의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기는 것이다. 


농어촌지역에 이주해 온 학부모들이 선호할만한 중학교, 고등학교는 없다. 눈높이에 맞추려면 동 지역으로 이사를 와야 하는데 거주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니 초등학교를 마칠 6학년 말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졸업하기 전에 전학을 가야 중학교를 배정받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제주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졸업장을 가지고 가는 경우는 드물게 된다. 이런 이주민과 학생을 보는 제주 마을의 정서는 "언제가 갈 사람"이다.        


제주는 누구를 위한 인재를 키우고 있는가?


제주도는 제주의 장기적인 발전과 지속성 확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제주가 길러낸 인재들이 공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많은 학생이 서울을 비롯한 육지부의 대학으로 진학한다. 각종 장학금을 주고, 여러 가지 교육 편의 시설을 제공하지만, 졸업하고는 직장과 일터가 있는 육지부에 정착한다. 그러고는 퇴직할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제주가 고향인 인재들도 돌아오지 않는데 누가 제주로 들어오겠느냐는 자책성의 말도 한다.


제주의 재정 자립도는 낮다. 고액의 세금을 내줄 기업이나 법인들이 없다. 그런데도 제주는 인재 양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국제영어 도시를 만들고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서 유명한 외국계 학교를 유치했다. 전국적으로 인재를 모아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제주에 남지 않는다. 농어촌의 작은 학교를 살리자고 마을과 행정, 교육청이 온몸이 되어 큰 노력과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에는 제주에 남지 않는다.


제주의 인재를 키우는 게 아니고 대한민국의 인재를 키운다고 생각하라고 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제주도민으로서는 수긍할 수는 없는 말이기도 하다. 제주의 학생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고, 정부의 국고보조나 재정지원이 그런 면까지 고려해서 제주에 적정하게 배분해 주고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다.

제주도는 제주의 장기적인 발전과 제주의 지속성 확보를 위한 커다란 고민이 있다.


제주의 교육환경에는 학부모들이 원하는 답이 있다.


통계자료를 보면 제주 이주 행렬에는 30~40대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입 인구도 많았지만, 전출 인구 역시 많다. 사회 구조상 30~40대면 학부모들이다.


자녀가 있으면 이사를 피하려 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넘어서고 있다. 그 정도로 제주의 교육 환경은 호불호가 분명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초등학교 이전의 교육환경은 매력적이지만, 그 이후의 교육과 거주 환경은 제주를 떠나야 할 정도로 불편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제주에서 좋은 교육 환경을 경험한 후, 그 혜택을 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결과적으로 볼 때 제주에서의 교육 환경은 제주 이주의 열풍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령대별 제주지역 인구 유입 및 유출 (출처: 헤드라인제주)


최근 제주에서는 이주민 유출이 많아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이러한 교육 환경의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는 것 같다. 


제주의 학교에는 누가 있는지, 그리고 좋다고 찾아왔던 그들이 왜 떠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주 이주의 열풍 한가운데에는 학교가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