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저모로 어색한 결혼 피로연의 단상

결혼식 1주일전에 치른 큰딸의 피로연

by 노고록

아직도 밖은 캄캄하다.

이른 아침 어제 내린 눈이 녹지도 않았고. 지금도 눈이 퍼뜩퍼뜩 날리는데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낯선 아침 낯선 곳에서 낯선 경험을 해야 한다. 뷰티숍이다.


오늘은 큰딸이 다음 주 서울 결혼식을 앞두고 고향인 제주에서 피로연을 하는 날이다.

제주사람이 육지 베필을 만나는 경우 결혼식은 주로 서울에서 한다. 이런 경우 제주에 있는 친척, 친지분들이 결혼식 참석을 위해서는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된다. 그렇다고 수십 명이나 아니 수백 명이 될지도 모르는 하객들의 항공료를 부담해 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할 수 없이 제주에서 잔치를 해야 한다. 결혼식장을 못 가는 친지분들을 위해서 제주에서 하는 피로연이다. 내용은 실제 결혼식날 피로연과 똑같다. 음식을 대접하고, 축의금을 받는다. 보통은 결혼식전주 주말쯤 된다. 어찌 보면 꽤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나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때 마침 불어 닥친 강풍과 폭설로 제주는 꽁꽁 얼어서 공항이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 당초 여유 있게 내려오려던 예비부부의 일정은 비행기의 결항으로 하루 미루어져서 어제저녁에야 도착했다. 하마터면 신랑 신부가 없는 피로연이 될 뻔했다. 온종일 카톡이 불나고 당초 예정했던 스케줄이 모두 꼬이는 일이 발생했다.



최근 제주 젊은이들이 육지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경우가 많아졌다. 제주 젊은이들이 육지로의 진출이 많아졌고. 무엇보다도 제주의 부모님들이 육지 사위. 며느리를 얻는 일을 예전과 달리 별로 거부하지 않는 경향이 뚜렷해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결혼식보다는 피로연을 보러 가는 경우가 많다.


제주의 결혼 풍습은 타지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제주의 결혼식은 말 그대로 잔치다. 2박 3일간을 먹고 즐겨야 한다. 그래도 최근에는 트렌드의 영향으로 많아 간소화 됐다. 웨딩홀이나 호텔에서 결혼식과 피로연을 하기 때문이다. 피로연만 하는 경우는 보통 4-5시간, 결혼식을 같이 하는 경우는 결혼식부터 오후 4시까지 한다.


예전 2박 3일을 하던 것에 비하면 줄었다기보다는 아예 안 하는 정도다. 예전 2박 3일 일정에서 도새기 잡는 날과 가문잔치를 없애고 결혼식 당일만 하는 경우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러기에 어른들이나 동네 삼춘들은 할 수 없이 따라 하기는 하지만, 동네잔치가 없어지는 데에 대해서 많이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한다. 잔칫날 모든 일가친척들을 보고 소식을 전부 들을 수 있는 기회인데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와 정이 있기에 제주 조캐들이 육지사람과 결혼을 하더라도 피로연인 제주잔치를 할 수 없이 해야 한다. 이중의 경제적 부담이고, 몇 배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다행히도 피로연이 결혼식 전주에 이루어진다면 8~10일 정도 속앓이를 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한 달간을 결혼식과 피로연에 매여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 제주의 잔치인 2박 3일이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스트레스다.


뷰티숍과 피로연 장소까지는 10분여, 예약시간보다는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도착을 했다. 도내에서 가장 넓은 주차장과 피로연홀이 있는 곳이다. 휑하니 비어있는 주차장에는 어제 온 눈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늘 오는 하객들의 오가는 길이 걱정이다. 주차장 요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혼주석에 주차를 했다. 낯선 경험이다.


동시 착석 240명이라는 피로연 장소는 한창 세팅 중이었다. 뷔페음식이 준비되고, 테이블이 세팅되는 사이 우리는 예복과 한복으로 갈아입고, 주위를 살폈다.


누가 요즘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지, 오늘도 4층까지 피로연 장은 만원이다. 미리 1년 전에 식장을 예약해야만, 결혼이 가능하다는데 뭔가는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한다. 좋은 날을 선택해서 결혼식을 하는 게 아니고, 식장이 비어있는 날이 결혼식 하는 날이라니 웃기는 세상이다. 우리도 결혼식 날자는 본 게 아니고 식장이 예약 가능한 날짜를 택했다.


이쯤 되면 정부의 저출산 정책은 뭔가는 맥을 잘못 잡고 있다. 엉뚱한데 수조 원을 뿌릴게 아니고 동네방네 결혼식장, 피로연 장소를 만들어서 장소 때문에 결혼을 미루는 청춘, 결혼식 비용 때문에 결혼을 못하는 청춘들이 언제라도 부담 없이 결혼을 하게 해 주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11시가 될 때쯤 첫 손님이 찾아왔다. 아내의 고모부와 사촌들이다. 이어서 나의 사촌누나들도 들어왔다. 반갑다. 이런 날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분들이다. 이른 시간에는 나와 아내의 친족들이 찾아왔다. 보통 이런 날은 친족들이 와서 제일 먼저 와서 자리를 잡고, 잔심부름도 해주고 분위기를 잡아주는 게 제주의 전통모습이다. 집안에서 제일 윗어른은 좌정을 하고 일을 지휘했다. 물론 이제는 볼 수 없는 빛바랜 사진속의 모습이 되었다.


시간이 되면서 차츰 하객들이 늘어났다. 오후 1시쯤 되자 자리가 부족해서 좌석 때문에 서로 눈치를 살피는 현상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단체나 모임에서는 1시를 약속시간으로 정해서 오기 때문에 동시간대 폭주를 한 것이다. 그래도 이런 현상에 항상 익숙한 분들이라 먼저 일어나 주기도 하고, 눈치를 보면서 합석하기도 한다. 앉고 보면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라 예정치 못 했던 만남이 되기도 하면서 피로연 장소는 시끌벅적이다. 가장 재미있는 일들은 서로가 만나보니 어색한 친지나 친족의 경우로 밝혀지는 경우다.


몸이 불편한 관계로 거의 5년 이상 장거리 여행을 하지 않던 96세의 어머니가 큰손녀의 결혼식이라고 어려운 걸음을 했다. 지팡이를 짓고, 동생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숨을 헐떡이는 모습이 괜히 안쓰럽고 죄송하기까지 하다. 어머니는 집안에서 나이도 가장 많고, 항렬도 최고 높은 어른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위의 친척들과 친지분들이 모두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손이라도 잡아보려고 대기줄이 이어였다.

피로연장 분위기 모습
제주에서 대소사 음식의 대명사인 몸국, 빙떡, 순대

어머니의 출현과 오후 1시 피크타임으로 혼란을 겪던 피로연 장소는 2시가 넘어서면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오후 4시까지 피로연을 하지만 3시가 넘어가면 정리가 된다는 게 담당 매니저의 안내다. 그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2시가 넘자 예상인원을 채우면서 피로연은 정리되는 분위기다.


처음 해보는 낯선 행사에 손님맞이로 긴장하면서 쫄쫄 굶고 있었던 나와 아내, 신랑, 신부도 자리에 앉았다. 수십 가지의 뷔페메뉴로 도내에 피로연홀 중에 가장 맛이 있다는 맛집으로 알려진 음식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차려서 먹는 것은 눈치가 보여서, 눈에 들어오는 몇 가지 음식을 챙겼다. 게우 볶음밥, 전복버터구이, 등갈비 구이가 손에 잡힌다. 춥고 눈이 오는 날은 어묵도 한 사발 해야 한다.


예약 마감시간인 4시 30분 전이 되자 모든 손님들이 자리를 뜨고 우리 가족만 남았다. 오늘 찾아주신 하객들을 정리해 보는 시간이다. 이런 날은 꼭 기대감을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왔으면 하는 사람은 안 보이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분들이 찾아오는 경우다. 나의 평소 인간관계가 조금은 정리되는 시간들이다.



오후 4시, 시간이 돼서 정산을 하고 나오니 상황종료다.

참 간단하고 깨끗해서 좋다. 이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예전 동네잔치였으면 1주일 정도는 뒤처리와 마무리를 해야 했었다.


나는 오늘 하루 종일 금주를 했다.

예전 동네잔치를 하는 날, 혼주인 동네삼춘들은 이 시간이면 비틀거리면서 S자 주행연습을 하거나, 모두가 떠난 빈 구석에서 혼자 잔을 기울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특별한 날 보내고 맞이하는 기분이 일상적이지는 않음이다. 술잔마다 보태지는 지난 세월의 희로애락과 자녀들을 키우면서 품어왔던 회한, 그리고 이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우려만큼이나 술잔의 수가 많아졌다. 소맥이전 우리가 이름 없이 마셨던 소주+마음의 칵테일이었다. 이제야 그 삼촌들의 모습이나 기분이 이해가 된다.


내가 갑자기 그런 기분이 되고 싶음을 느끼니 말이다.

진한 소맥한잔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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