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동안 지속되던 제주로의 이주 열풍의 가운데는 사람이 있었다. 이제 그 사람들은 제주가 싫다고 슬슬떠나고 있어서 제주는 또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사람이 사는 사회이기 때문에 주인공은 사람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가 있을 수 있을 뿐이다.
아직도 제주의 마을에서는 오가는 사람들과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많다.
리사무소에서 이장님과 이런저런 마을에 대한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웬 멀쑥한 사람이 손에 음료수를 들고 들어왔다.
“얼마 전에 이쪽에 이사를 왔는데요,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장사를 하고 있는데 마을에 현수막도 달고 싶구, 겸사겸사 왔습니다.”
제주에 이사 온 지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다른 마을에서 장사를 하다가 얼마 전에 이곳으로 영업장을 옮겼다고 한다. 아직 집까지 옮기지는 못했는데, 집이 구해지는 데로 이사를 올 예정이라고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마을 일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테니 어떤 일에 어떻게 참여해야 하는지도 알려 달라고 이장님에게 물었다. 이제 제주에 온 지가 10년 이상이 되다 보니 어떻게 해야 마을에서 장사를 잘할 수 있는지를 안다고 스스로 입을 열었다. 이장님은 연중 행사표와 주민들이 참여해야 할 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그분은 마을 일에 참여도 하고 필요하면 스폰도 할 것이라고 시원시원하게 해주었다.
이주민들에게 핫이슈인 리정세에 대해서 마침 사무장이 얘기를 꺼냈다. 용도를 듣고는 납부하겠다고 계좌번호도 메모해서 주라고 했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웃는 얼굴로 나갔다. 자리에 있는 마을 분들은 흔치 않은 이주민이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그분이 그렇게 마을과의 연계성을 가지고 공동체 일에 참여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능동적으로 리사무소를 찾아와서 인사를 하고, 마을 일에 관심을 표현하는 경우는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마을에서 리정세는 마을과 이주민들과의 사이에 골칫거리다. 어느 마을에 가든지 공통 사항이다. 오죽하면 더 싸우기 싫어서 아예 폐지하는 마을도 있다. 1년에 몇만 원이지만 십시일반으로 모으면 제법 많은 돈이 되는 경우라 마을의 재정에는 큰 보탬이 된다고 한다.
제주에서 행정 계층구조의 맨 아래인 리의 규모는 제법 크다. 인구가 1~2백 명 단위인 곳도 있지만 몇천 명을 넘어서 이제 1만 명 단위에 거의 다다른 마을도 있다. 타지에 비하면 거의 읍면 급의 인구를 가진 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제주의 리사무소들의 규모는 제법 크다. 이주민들은 대부분 제주의 리사무소의 규모를 보고 놀란다. 그리고 전입이나 행정업무를 리사무소에서 처리하는 줄 알고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어떤 리사무소 입구에는 "여기는 관공서가 아닙니다"라는 팻말을 붙여 놓기도 한다. 리사무소는 마을의 자치 기구다. 마을에서 리장을 선출하고, 사무장을 채용해서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리사무소운영에 따른 재정 운영도 마을에서 해결해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을에는 리정세가 필요한 부분이다.
어느 리사무소 입구에 걸린 안내문
마을의 의사나 주민들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인 경우는 리사무소를 경유해서 오기를 바라고 있다. 행정에서는 마을의 의사가 중요해서 한다고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마을에서 주위 민원을 해결하고 오라는 뜻이기도 하다. 귀찮고 주민들의 민원이 많을 것같은 사안을 마을에 위탁하는 경우다.
“마을 일에 전혀 관심도 없고, 협조도 안 하더니만 이젠 자기네가 필요하니까 찾아왔네..“
알마 전 방문한 마을에서의 일이다. 이장, 총무님하고 한참을 얘기하는데 젊은이가 손에 뭔가를 들고 들어왔다. 빈손으로 오기가 거시기해서 간식꺼리를 사 왔다고 했다. 3시가 넘은 시간 배가 출출할 때라 예기치 않는 방문객의 제공하는 빵 몇조각은 반가운 일이었다.
”아직, 개발위원회에서 결정이 안 났어요? 결정이 되면 알려드릴께요?“라는 이장의 말을 듣고 그분은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무사 마씸?“ 궁금해서 이장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마을 안 사거리에 펜션을 홍보하는 안내판을 세우겠다고 마을의 허락을 요구하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마을 내에서 영업하면서 살고 있었지만 마을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고 한다. 영업장을 확장하려다보니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니까 이제와서 직접 찾아와서 읍소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해줄 수도 없고, 거부할 수도 없어서 개발위원회의 의견을 모아서 결정하려 한다고 이장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참 답답한 노릇이다.
한참을 얘기하고 있자니 방금 다녀간 젊은 사람이 다시 찾아왔다. 펜션 인근에 가로등이 필요해서 읍사무소를 찾아갔는데, 그건 마을을 통해서 요청이 들어와야 설치를 할수 있다기에 다시 마을을 찾아왔다고 했다. 얼마전 다른 마을을 방문했을 때도 이런 건이 있었다.
이제는 주민들의 민원이 있을 것 같은 경우에는 모두 마을을 통해서 들어오도록 한다고 했다. 농촌에서 가로들의 설치는 가로등만의 문제가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니다. 농작물들이 어둠을 타고 자라야 하는데, 주위에 가로등이 훤하게 밝혀져 있으면 작물들이 낮인 줄 알고 성장을 못한하고 한다. 그래서 농사가 실패하기에 이제는 주위 농부들의 동의를 요구하는 모양이다.
”펜션 주위에 있는 밭들의 주인을 전부 파악해서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사무장한테 서류를 받아 가서 동의를 받아오시기 바랍니다..”더욱 난감해지는 대목이다. 마을에 살지만 마을과 교류없이 나 혼자 살고 있는 주민인 걸 아는데 어느 분이 자기 농사를 망치면서 동의를 해줄지 걱정이라고 이장님은 혼자 중얼거렸다.
한 달에 몇 번씩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비슷한 경우는 자주 부딪힌다. 리장이나 사무장이 늘 하는 말이다. 협조는 안 하고 요구만 한다고, 오시라고 할때는 안 오고, 필요할 때만 온다고 하소연이다. 리정세는 안내면서 리의 서비스는 받고 요구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한다.
그건 로마법이 우리가 사는 상식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일 것이다.
관습이나 로컬리즘은 어떤 측면에서 이방인들에게는 덜 상식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 깔린 가치는 마을과 지역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이다.
어느 것을 따를 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그러기에 같은 마을에사는 같은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사람들수 만큼이나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