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늘도 호박잎 국을 먹는다

내가 호박을 심는 이유는..

by 노고록

호박잎 국은 매년 이맘때쯤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제철 음식이다.

제주에서는 예로부터 호박잎을 손으로 잘 비비고 밀가루나 메일 가루를 풀어서 만든 수제비 호박잎 국을 만들어서 먹었다. 호박잎을 쪄서 먹기보다는 되직하게 국으로 만들어서 먹는 제주 전통 방식이다.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 호박잎 국에 밥 한 수저를 말아서 먹으면 한 끼 대용으로 충분하다.


(* 제주에서 늙은호박으로 통용되는 호박은 맷돌호박 또는 청둥호박으로 한식에서 사용하는 늙어서 겉이 굳고 씨가 잘 여문 호박이다. 동양계 겨울 호박으로, 봄에 심어 가을에 수확한다. 동그랗게 크고, 선명하게 갑이 갈라지는 호박을 주로 노랗게 익혀서 먹는다. 익기 전 파란 색상을 비교해서 늙은호박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놎은 여름 돌담을 타고 자라는 노란 늙은 호박을 본다는 것은 고향의 맛과 그리움이다.

제주의 농촌집 마당에는 눌이나 텃밭이 있었다. 이곳에는 항상 늙은 호박이 하나둘씩 자란다. 초가집과 현무암 돌담을 타고 자라는 노란 늙은 호박은 제주 농가를 그려주는 대표적인 이미지다. 호박은 모종을 심은 게 아니다. 작년에 호박을 따고 다듬는 과정에서 나오는 씨앗을 아무렇게나 뿌려둔 것이 올해 제대로 자라는 것이다. 호박은 버릴 게 없었다. 호박잎은 호박잎 국으로 호박은 호박대로 부족한 농촌의 중요한 부식 재료였다. 어릴 적 할머니댁을 가는 길 마을어귀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초가지붕과 돌담위에 걸터앉은 호박들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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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처음 호박을 심었을 때 혹독한 추억이 있다.

호박을 심어서 늙은호박을 만들어서 즙도 해 먹고, 주위에 나누어 주기도 하고, 호박잎 국도 해 먹고 싶었다.호박은 줄기 작물이라 이리저리 덩굴이 뻗어나갈 텐데, 어느 정도의 면적을 차지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고민하다 2번에 걸쳐서 10개 정도를 심었다. 간격도 엄청 넓게 심었다. 작물을 심고 남는 면적을 전부 차지할 수 있도록 배치했다. 한 200여 평이 족히 되는 공간이다. 남는 공간 그대로 두면 무엇하겠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자라는 과정에서도 순자르기나 적과를 하지 않고 말 그대로 자연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방치했다. 비료나 농약, 영양제를 주지도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200여 평의 넘는 밭은 온통 호박밭이 되어버렸다. 줄기는 슬금슬금 영역을 넓히더니 제멋대로다. 다른 작물을 타고 올라가고, 비닐 터널, 돌담을 덮었다. 호박꽃들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더니 호박은 왜 그리 잘 열리는지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널린 게 호박이었다. 늙은호박은 크기가 꽤 큰 편이다. 호박 1개면 음식을 몇 번은 해 먹어야 할 정도로 크다. 그러나 호박으로 해 먹을 음식은 사실 그리 다양하지가 않다. 할 수 없이 호박즙을 내서 먹기로 했다. 1번에 10개 내외가 소요된다. 가장 큰 호박의 소비처였다. 그렇게 한번 즙을 내면 200개 내외가 나왔다. 하루에 3개씩 먹더라도 2달분이다. 매번 하루에 3개씩 먹을 수도 없다. 100여 개를 넘는 호박은 따서 처리하는 게 일이었다. 아마 당시는 호박 재배가 잘 되어서 풍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트에 내다 팔수도 없는 상황이라, 주위에 나눠줄 곳은 모두 나누어 주더라도 소비량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아내가 아는 곳에 즙을 내는 데 사용하라고 공짜로 실어다 주고야 매듭을 지었던 기억이 있다. 주위에 인심을 베풀면서 무료로 가져다주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 호박은 꽃이 나면 그대로 둘 게 아니고 꽃을 몇 개만 두고 모두 따 주어야지, 그렇치 않으면 감당을 못해"

훗날 주위에 얘기를 했더니 아느 지인이 어이없어 하면서 하는 말이다. 호박을 소비하거나 팔 목적이 아니라면 호박이 열리는 것을 사전에 차단해 주어야 한다는 얘기였다. 특히 호박잎을 사용할 목적이라면 반드시 꽃을 적과해주어야 한다는 진리를 나중에야 알았다.



"호박잎만 먹을 걸로 생각해서 모종은 몇 개만 심고, 꽃은 나는 데로 모두 따버립시다."혹독한 시련을 겪고 난 후, 우리 부부가 낸 결론이었다. 그리 하자고 약속하고 매년 4~5개의 호박 모종을 심는다. 어머니나 내가 워낙 호박잎 국을 좋아하기에 심는 것을 거를 수는 없다.


호박잎이 열릴 만하면 유혹의 손길이 바쁘다.

"야, 호박잎 안 나시냐?" 여기저기서 호박잎의 안부를 붇는다. 어머니, 누나네, 우리 집에서 먹을 걸 따다 보면 어린 호박은 제대로 자랄 수도 없을 정도다. 얼마 전 부터는 동서까지 참가해서 난리다.


호박밭을 가보면 잎들은 자라서 먹을만하면 모두 따버리니까 앙상한 덩굴만 남아있다. 바로 먹을 호박잎은 부지런히 따는데, 호박꽃에는 신경을 쓰지않았다. 호박잎을 따는 계절이 더운 여름이라 요즘 같은 뙤약볕에 잎을 따는 목적 외에 부가적인 일을 할 생각이 안 나는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호박은 줄기와 잎속에 숨어서 무럭무럭 자랐다. 호박은 어릴 때는 파란색을 띄고 있기에 주위에 풀이나 호박잎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어느정도 자라서 노란색을 뛸 때 부터 보인다. 그렇게 눈에 보일 정도면 이미 상황은 종료된거라, 호박이 익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올해도 그런 과정과 현상은 반복되었다. 이미 밭은 다 익은 늙은호박 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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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잎은 철이 지나면 먹을 수 없다. 이제는 요령이 생겼다. 제철이 지나면 호박잎 국을 먹을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방법이다. 호박잎이 한창일 때 미리 수확을 많이 한다. 다듬고 비벼서 한번 해먹을 정도의 분량으로 소분해서 냉장고 속에 보관한다. 그럼 제철이 지나더라도 별미로 한 번씩 호박잎국을 해먹을 수 있다. 철 지난 호박잎 국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다. 쪄서 먹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다.


"여보, 오늘 호박잎 국 끓여줄 수 있어?"

"질리지도 않아요?" 아내의 무심한 답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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