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창석 Sep 29. 2024

내가 힐링하는 방법

텃밭에 스프링쿨러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주말 내내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어댄다. 

유심재를 찾았다. 모퉁이를 돌아서려는 순간 잔디밭에 안 보던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날카로운 주둥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곤충이다. 엉금엉금 어렵게 앞으로 나가는 모습, 방해꾼의 출현에도 부지런히 제 가는 모습을 방해수가 없어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모퉁이를 돌아섰다. 장수풍뎅이 줄 알고 가족 단톡에 올렸는데, 사슴벌레라고 한다. 이름과 모양이 언밸런스다.     


텃밭에 새로 심은 모종들이 갈증을 얘기하는 것 같아서 스프링쿨러를 틀었다.

쿨러에서 뿌려지는 하얀 물줄기를 보자니 나도 갑자기 갈증이 생겼다.  

오늘은 달달한 커피믹스가 제격일 것 같았다. 오랜만에 종이컵에 키피믹스를 탈탈 털어놓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익숙한 향기가 내 후각을 자극한다. "그래 이 맛이야"

    

커피 한잔을 손에들고, 오랜만에 창가에 않아서 스프링쿨러가 돌아가고 있는 밖을 보고 있다. 

스프링쿨러를 돌리다 보면 텃밭은 바빠진다.


잠시 햇빛을 맞고 혼절해 있던 작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선다. 

참 희한한 일이다. 아무리 쳐져 있던 작물들도 물을 맞으면 벌떡 일어나니 말이다.

갑자기 훈련소 시절이 생각난다. 

훈련받느라고 쳐져서 누워있다가도, 조교의 일어서 한마디에 벌떡 일어서고 그랬는데..

그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다. 


스프링쿨러가 잠시 휘청거리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가느다란 스프링쿨러가 가능한 한 멀리, 강하게 물을 뿌리려고 세차게 회전하면서 생기는 원심력에 의해서 휘청거린다. 늘 이런 모습이기에 휘청거리는 스프링쿨러의 모습은 정상이다.     

다른 경우도 있다. 불청객이 찾아와서 샤워하는 경우다. 비가 오지 않다 보니 새들도 오랜만에 물줄기를 만나면 신나는 모양이다. 이름 모를 새들이 스프링쿨러의 꼭대기에 앉아서 물장난하는 경우다. 무거운 새들이 가느다란 스프링쿨러의 꼭대기 앉고 있기만 해도 휘청거리는데, 기쁨의 표시인지 새는 물을 맞으면서 연신 몸을 흔들면서 춤을 추어댄다. 고개를 저어대고, 날개를 푸덕이기에 스프링쿨러는 한참이나 휘청인다. 때로는 쓰러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스프링쿨러에게 새는 반갑지 않은 방해꾼이다.


물을 뿌리고 있노라면 나비들도 찾아온다. 텃밭에 꽃들이 있기에 나비들은 항상 있는데 물을 뿌리기 시작하면 더 많이 찾아오는 것인지 유독 눈에 띈다. 


물을 맞으면 자연은 더욱 초록빛을 발산한다. 작물들도 초록이 푸르러 좋지만, 잔디는 더욱 그렇다. 물맞은 잔디는 촉촉하고 짙은 초록이다. 그 위를 맨발로 걸어 다니는 촉감은 푹신푹신한 스펀지 위를 걷는 기분이다.


요즘 유심재에서 나는 신발을 잊어버렸다. 

맨발로 다닌다. 맨발 걷기가 우리 몸에 좋다는 생각에서다. 일부러 찾아가서 걷기도 하는데, 집에서 맨발로 걸을 수 있다니 행복이다. 

텃밭 한 구석에는 텃밭을 정리하다가 나온 맷돌로 짧은 걷기 코스를 만들었다. 잔디밭과 뜨거운 맷돌 위. 그리고 텃밭의 흙 위를 걷는 기분은 색다른 경험이다. 발바닥을 자극해 주는 쾌감이 색다르다. 


"발바닥 다칩니다.."언제부터인가 맨발로 유심재를 돌아다니는 나를 보면서 아내가 하는 말이다. 텃밭에 돌이나 유리 등 날카로운 것에 찔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다. 이제는 얇은 양말을 신고 걷는다.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자다가도 떡을 얻어 먹을 수 있다"는 주변 권유에 따르기 위해서다. 


초록빛 푸르름 속에서 맨발로 자연 속을 걷는다는 것. 스프링쿨러의 시원한 물줄기 뿌려지는 텃밭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힐링이다. 무념무상인 상태로 어제를 정리하고 머리와 마음을 비우는 날이다. 재충전 하는 날이다. 내 마음에도 푸르름을 찾아주는 스프링쿨러를 돌리는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 오늘도 호박잎 국을 먹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