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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창석 Oct 02. 2024

비 오는 날 해 먹는 텃밭 즉석 부추전

유심재에서 부추전을 먹는 날

텃밭에서 방금 수확한 부추와 고추로 만들어 먹는 부추전은 별미다.

유심재를 찾은 날, 멀쩡하던 하늘이 심술을 부린다. 갑자기 폭우가 내린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비는 반가운 일이다. 특히 올해같이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경우는 더 그렇다.

평소에도 유심재에서 내리는 비는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기에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텃밭에 심은 배추가 벌레 때문에 난리다.

벌레들이 숭숭 모든 잎을 갉아 먹고 있다. 배추를 이대로 두었다가는 겉절이는 고사하고 된장국도 해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배추를 덮었던 한랭사를 걷어 젖히고 배추벌레 사냥을 하기로 했다. 나무젓가락을 가지고 배춧잎을 하나하나씩 뒤집어 가면서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배추벌레를 잡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보호색이라는 게 벌레들에게는 유익한 수단이지만 벌레를 찾아나서는 농부에게는 자욱한 안개와 같다.  


한참 부지런히 작업을 하고 있는데 머리에 뚝뚝 신호가 들어온다. 무게감이 느껴진다. 큰 모자를 쓴 상태라 세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떨어지는 게 강도를 더하면서 비가 온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오늘 일기예보에 오후쯤에는 비가 온다고 하길래, 오전에 가서 상추를 심을 예정이었다. 작물을 심고 바로 비가 와준다는 것은 다수확을 기약하는 일이다. 따로 물을 주지 않더라도 작물이 뿌리를 내리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하늘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는 당찬 생각으로 유심재로 오는 길 모종 상에 들렸다. 요즘 채솟값이 천정부지로 오른다는 언론보도가 나간 후부터 모종 상을 찾는 이가 엄청나게 많아졌다고 한다. 가져다 놓는 모종마다 완판이라 채 자라지도 않은 모종까지 진열장을 채우고 있었다. 몇 개 남아있는 상추 모종이 상태가 안 좋았다. 할 수 없이 상추 심는 걸 포기했다. 대신 택한 일이 배추벌레를 잡는 일이었다.

비 오는 날 유심재



요즘에는 비가 한두 방울 오다가 그치는 날이 많았다.

"얼마나 비가 오겠어? 일단 하는 데까지 해봅시다.."아내와 둘이 비를 맞으면서 부지런히 배추벌레 잡기를 했다. 비는 오다가 멈추고, 다시 오기를 반복하기에 지나가려니 하고 계속 작업에 몰두했다. 그런 우리를 본 하늘이 괘씸함을 느꼈는지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금세 옷이 흠뻑 젖을 정도가 되었다. 급히 일을 정리하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후드득후드득 내리는 비는 여간해서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인 듯 싶었다.


방에서 창문 사이로 텃밭을 보니 며칠 전 수확했던 부추가 꽤 자랐다.

부추는 무정하기도 하다. 물만 제때 주면 쑥쑥 자라주니 말이다. 요 며칠간 비가 왔던 게 주요했던 모양이다. 갑자기 배가 고파온다. 사실 오늘 아침을 먹고 유심재에 와서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다. 지금 시간이 16시를 넘고 있으니 배가 고플 만도 하다. 지금에야 여유를 찾다 보니 허기를 느낀 것이다.


"우리 요기할 게 있어요? 배가 고픈 것 같은데.."나의 얘기에 금방 아내의 답변이 돌아왔다.

"부추전을 몇 장 해 먹고 갈까요?" 부추는 며칠 전 수확을 해서 모두 나눠준 상태라 먹을만한 부추가 없다.


나의 궁금함이 보였는지, 아내가 창가로 오더니 텃밭의 부추와 그 옆에 청양고추를 가리킨다.

"저 부추에 청양고추 몇 개를 썰어 놓으면 부추전이 되죠.."

그렇게 해서 비 오는 날 유심재에서 부추전 파티는 시작되었다.


부추전을 만들기 위한 아내의 작전이 곧 실행되었다.

아내는 빗줄기를 뚫고 텃밭으로 가더니 부추를 용감하게 가위로 한 움큼씩 몇 번을 싹싹 자르고 들어왔다. 부추를 씻다가 "아차, 고추.."라는 소리를 지르고는 텃밭으로 다시 가더니 청양고추 몇 개를 따가지고 왔다. 농촌에서 텃밭은 이래서 좋다. 싱싱한 식재료, 필요한 식재료를 필요한 만큼 즉시 조달할 수 있다. 이렇게 재료가 준비되고, 슥싹슥싹 반죽이 만들어졌다.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부추전이 익는 소리가 들려온다. 빗소리와 하모니를 이룬다.

싱크대 앞 작은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빗소리가 feat를 한다. 이내 부추전 부치는 소리는 잦아든다. 냄새만이 집안을 진동한다. 몇번의 뒤집기를 반복하더니 부추로만 가득 채워진 진한 녹색의 바싹한 부추전 한 접시가 만들어졌다. 파란 부추전에 고명인 빨간 고추는 유독 눈에 들어온다. 저것은 분명 매운 맛의 폭탄일 것이다.


창가에 테이블을 하고 앉았다. 이중창 문을 뜯어내고, 통창으로 원히 보이는 텃밭에는 여유로움과 넉넉함이 가득하다. 비에 음뻑 젖은 모습이 더 맑고, 청량하게 보인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뚝뚝 시멘트 바닥을 때리면서 비 오는 날의 멜로디를 연주 해준다.  

비 오는 날의 부추전에는 농주인 막걸리가 있어야 제맛이라고 한다. 조금은 느끼하고, 목에 걸릴듯한 부추전을 감고 넘겨주는 맛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모든 것을 갖추고 하려면 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있는 대로 즐겨보는 것도 없는 것의 중요함과 맛을 깨닫는 일일 수도 있다.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이다.

유심재 냉장고에서 부추전을 기다리다가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막걸리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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