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유심재 오는 길에서
알다가도 모르는 게 자연의 이치인 것 같다.
아침 중부지방에 집중호우로 인한 뉴스특보를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마감 기일에 쫓기는 글들을 마무리하고자 유심재로 향하는 길이다.
현관을 나서니 지금도 빗방울이 하나둘 오가기를 반복한다.
대지는 흠뻑 젖어있다.
비의 냄새는 쾌쾌하고 다소 역겹기까지 했다.
뜨겁던 대지의 열기를 잔뜩 품고 오랜만에 내리는 비라서 그런 것 같다.
냄새를 "훅"하고 처음 마주하는 순간 숨이 멎을 듯싶기도 했다.
그래도 한 발자국을 나서니 비의 냄새는 오히려 향기롭고 반가웠다.
TV를 달구는 인간들의 복합하고 어지러운 삶의 냄새만을 맞다 보니 다른 냄새가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사를 잠시라도 씻어 내리고 싶은 자연의 요구인 듯 상쾌한 단비인 느낌이다.
오는 길 가족단톡도 난리다.
서울에 사는 자녀들이 아침 출근길을 전해주는 메시지다.
우산을 가졌느니, 긴 장화를 신어서 무사히 사무실에 안착을 했다는 인사들이다.
장화를 신어야 될 정도로 폭우가 내린다는 얘기다.
어제 퇴근길부터 걱정이었는데 오늘 아침도 무사히 출근을 했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새 젊은이들은 비 오는 날 장화를 신는다고 한다.
우리도 어린 시절에는 등굣길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다녔다. 단, 그건 좀 산다는 집안애들의 얘기였다.
얼마 전부터 애들이 비가 오는 날 장화를 신고 출근을 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조금은 낯설게 들렸다.
흔히들 얘기하듯이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와닿는 대목이다.
오는 길, 커피 한잔을 사기 위해서 단골 커피가게에 차를 세웠다.
문을 열고 나서려 밖을 보니 여기는 비가 온 곳이 아니다.
그늘진 후미진 곳 다 마르지 못한 곳이 있을 뿐 전체적으로는 거의 말랐다.
길하나 사이로 흑과 백이다.
오랜 시간 전에 비가 와서 다 마른 것 같다.
비가 오는 날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제주도는 진짜 넓다.
집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대지는 하얗게 말라있다.
언제 비가 왔는지 모를 정도다.
대신 하늘은 가면 갈수록 파랗다.
유심재 글방이 앉았다.
창문사이로 보는 텃밭과 하늘은 맑고 청아하기까지 하다.
눈이 부시기까지 하다.
짧은 10분여의 시간에 나는 여러 하늘 아래를 지나왔다.
비가 오는 곳, 비가 오다 멈춰서 다 말라버린 곳, 비가 오지 않은 곳을 지나왔다.
이게 내가 지금 사는 세상이다.
우리는 흔히들 같은 하늘아래 같이 산다고 한다. 동질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그건 틀린 말이다.
꼭 같은 환경은 없다. 차이를 우리가 직접 느끼지 못하고 계산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네가 내가 아니고, 내가 네가 아닌,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이유다.